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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세상]자전거도로의 예고된 실패

반이정

시작부터 불안했다. 잘 안되리라 예상했고, 결과적으로 잘 안됐다. 2009년 5월 오세훈 전 시장이 제 머리로 아이디어를 내어, 그림까지 손수 그렸다며 애착을 보인 ‘서울 순환 자전거 전용도로 구축’ 계획 말이다. 서울 도심 거의 전 지역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생활형 라이더의 눈으로 볼 때, 서울 도심 자전거도로 사업은 실패했다. 전 시장의 포부가 만든 이 위대한 과오는 현 시장에게 과제로 남았다.

실패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간단하다. 세종로 일대에 ‘연결이 듬성듬성 끊기며’ 한 차선을 차지한 자전거도로를 보라. 그 위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없다. 자전거를 몰고 거길 지날 때면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차도 위로 빼곡한 정체 차량에서 한적하게 이격된 곳에 텅 빈 차 선 하나가 자전거도로의 이름을 달고 있으니, 교통 정체의 일부가 마치 자전거 라이더의 책임인 양 느껴진다. 하지만 버젓이 그 위에 차량을 주차하고 주행하는 차량이 있기에 나의 무안함이 무게를 던다!

유튜브에 올려진 중국 교통사고 영상을 보면 경악할 수준이다. 차끼리의 충돌과 보행자나 자전거를 ‘덤덤히’ 치는 영상이 수두룩해서다. 영상만으로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 짐작된다. 결코 중국 수준은 넘보지 못하나, 한국도 차량 우선주의 정서는 두텁다. 경험상 서울보다 지방 도시일수록 더하다. (문화)후진국일수록 차량 우선주의 정서가 공동체를 지배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는 어디까지나 말뿐 몸은 인본주의적 구호와 반대로 움직인다.


차량 소유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정서의 뿌리는 대중을 수단방법 불문하고 장비(군사력)를 동원해 지배한 자에게 특혜가 주어진 역사의 선례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런 선례를 답습한 국가 지도자는 ‘세계에서 제일 길지도 모를’ 자전거도로를 강 따라 짓는다며 자랑한다. 아마 지난 시정에서 서울시는 탄탄한 자전거 문화를 구축한 서구 유럽을 벤치마킹하려 했을 것이다. 이해하고 공감한다. 자전거 문화의 도입을 위해 인프라스트럭처부터 깔려는 발상을.

하지만 유럽과 차량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의 시공간은 근본부터 다르다. 유럽은 자전거도로도 있지만, 오랜 자전거 문화와 생활형 라이더의 인구가 탄탄하다. 한국은? 뒤의 둘이 취약한 상태에서 토건 마인드로 자전거도로부터 깔았다. 결과는 보나마나다. 유럽 자전거도로는 검은 아스팔트에 자전거 기호 하나만 달랑 그려놨지만 잘 운영된다.

한국은 전시행정을 티내려는지, 차도와 대조하려는지 빨간 도색을 해놨고 그도 모자라 차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에 징까지 박아 놨다(그러면 뭐하나, 당당히 넘어와 주차 내지 주행하는 차량이 넘쳐나는데). 중국에 버금가는 차량우선주의 문화를 전제하지 않고, 유럽식 인프라스트럭처부터 깔았다. 자전거 주행자가 적으면, 자전거도로는 보행자와 차량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고(현재 상황), 자전거도로로는 물론이거니와 도로나, 인도로도 부적격한 ‘공란’으로 남았다.

현실성 없는 4대강 자전거도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자전거 문화는 실제 삶과 이격된 위치에서 격리된 채 있어왔다. 레저 문화의 일환이지, 생활 밀착형 문화는 아니다. 자전거가 차량과 대등한 도로 사용권이 있다는 공감대가 없다. 차도 위의 라이더에게 “인도로 올라가요!”라고 고함치는 운전자가 그래서 많다(현행법상 자전거는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다). 현재 ‘텅 빈’ 도심의 자전거도로의 실패를 인정하고 차와 자전거가 동거할 수 있는 문화 정책부터 고민해야 맞다. 유럽처럼 되고싶으면 유럽식 자전거 문화부터 이식해야 한다. 그리고 전시행정 소리 듣기 싫으면 부디 관료끼리 고민하지 말고, 상시적 자전거 이용자들의 의견부터 접수한 후 집행하라. 늦지 않다.

-경향신문 2011.12.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08205509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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