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그루터기> 서예와 글씨 예술

이동국

“서예는 외딴 섬 같아요.” 오래 전에 어느 타이포그래피 작가가 무심코 던진 말인데도 늘 나의 뇌리를 맴돈다. 그는 같은 글자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서예의 고립된 현실을 이렇게 빗댄 것 아닌가 싶은데, 나한테는 이대로 가다가는 ‘서예의 죽음’을 목도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변화를 모르는 서예의 고립이나 대중의 외면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글씨환경을 보면 자명해진다. 한자는 물론 지필묵이 현실생활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컴퓨터에 관한 한 거의 문맹의 수준인 나조차도 이 원고를 펜도 아니고 자판으로 두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글씨만큼 현실적인 놈도 없다. 한자만 하더라도 문자 발명 이래 정보량의 증가나 도구·재료가 바뀌면서 서사(書寫) 속도의 필요에 따라 전서에서 예서로, 다시 해서와 초서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서예는 이 과정에서-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후한대(23~222) 말에 서사로부터 예술적 자각이 일어나면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한자가 종래의 칼과 돌을 대신하여 지필묵과 만나면서 서예, 즉 붓글씨는 동양예술의 꽃으로 군림하고 문인·사대부들의 교양과 수신의 방편으로 절대적인 위치를 굳혀왔다.

그러나 서예의 사활에 관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컴퓨터로 말미암아 과거 붓과 종이의 발명이 가져온 이상으로 문자환경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서예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정지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미술대전에서조차 설치나 영상장르의 도입을 공론화하고 있는 판이고 보면 문자·재료·도구 등이 비현실적인 서예 판은 증가 일로에 있는 수백 개의 공모전으로 볼때 암담한 현실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예의 생명인 서법은 물론 교양이나 수신이라는 서예의 고전적 가치까지 정면으로 도전을 받는 것도 지금이다. 요컨대 작금의 서예 위기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데 후한대의 ‘서사에서부터 예술로’의 자각만큼이나 기존 서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잠시 붓을 놓고 한번 생각해보자. 현대 기술문명과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여전히 ‘서예=붓글씨’ 또는 ‘서예 > 붓글씨’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서예=글씨예술’인지를. 더 이상 문인·사대부도 존재하지 않고,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큐레이터〉

- 경향신문 2004. 8. 9<<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