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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세상]군사문화와 예술교육

반이정

지난 SBS 시사고발프로의 심층보도로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인의 학위논문 표절의 문맥이 드러났다. 압축 요약하면 학위논문 표절은 체육계의 암묵적 관행이고 문씨도 문제의식없이 그 관행을 따랐던 것이다. 아마 문씨는 이 문제로 탈당까지 한 자신에게 언론의 집중포화가 멈추지 않는 걸 불공정한 처사라고 느낄 것 같다. 실은 나도 그렇게 느낀다. 그의 처지를 조롱하거나 두둔할 목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스포츠계 기존 관행을 따른 죄밖에 없는 문씨로선 현재 자신이 직면한 비난이 부당할 만하다. 죄질의 경중을 따지면 문씨보다 조직의 관행이 훨씬 무겁다. 잊힐 만하면 녹화된 영상 유출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체대 폭력문화도 가해자 입장에선 억울한 일일 게다. 피해자의 단계를 거친 후 당당히 ‘관행’에 따라 후배들을 ‘교육’시킨 건데 사법 처리라니!

이론보다 실기의 기량을, 원칙보다는 조직의 위계를 중시하는 체육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있다. 지금 쟁점은 원칙보다는 관행에 지배되어 일탈을 꾸준히 양산하는 조직문화에 있다는 점이므로, 조직의 체질 개선을 논할 때라는 것이다. 병원균은 개인이 아니라 문화 속에 있으니까.


출강 나가는 대학의 복도에서 안면도 없는 어린 학생이 내게 구호에 가까운 소리로 인사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15기 아무개입니다!”라며 상체를 90도 꺾어 인사를 하길래 나도 엉겁결에 “아… 네”라고 맞인사를 했다. 연극영화전공 신입생이었다. 그 후로도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 인사를 영문도 모른 채 받거나, ‘습니다’로 끝나는 군대식 어투로 (선배로 보이는) 누군가와 깍듯한 통화를 나누는 어린 학생들을 목격할 일이 간간이 있었다.

지난달 90도 인사를 안 했다고 후배를 샤워실로 끌고 가 폭언하고 얼차려를 시킨 어느 무용과 선배들의 ‘교육 현장’이 단신으로 보도된 걸 봤다. 몸을 쓰는 집단의 교육 철학이 타 단대와 동일할 순 없을 것이다.

2005년 출강했던 또 다른 대학에서 체대 학생들이 선배에게 함성에 가까운 인사를 올리는 장면을 보며 대략 감을 잡았다. 그때 해당 대학 학보에 서열 과시형 선후배 간 폐습을 비난하는 글을 썼더니, 선배로 보이는 학생이 내 홈페이지를 찾아와선 익명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선후배 간 전통으로,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수차례 항의하더라. 항의한 학생은 뭐가 잘못인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군사 문화의 관행을 고수하는 연극영화과건 무용과건 명목상 예술 창작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육체만큼이나 사유의 유연성이 요구되는 예술교육에서 위계를 봉건적으로 확인하는 폐습이 엄존한다면, 졸업 후 제대로 된 성과를 낳긴 어려울 거라고 나는 본다. 요행히 자기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들, 논문 표절 사건에 임하는 문대성씨의 경우처럼, 문제의 본질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주저앉고 말지도 모른다.

위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 살면서 어린 제자들의 교칙에도 없는 복종심을 일사불란하게 발휘한다면 마다할 교수도 적을 것 같다. 고학년 학생들이 기틀을 세운 군기를 교수들이 방임하는 건 그 때문일 게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이런 반예술적 문화 안에서 잉태된 예술이 온전히 생존할 가능성은? 나는 낮다고 본다.

이런 폐습은 큰 사고로 연결되지 않는 한 계속 지속될 터인데, 설령 불미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한들 전공 교수들은 “정말요? 몰랐던 일인데요”라고 해명하면 끝난다. 예술계에 몸담은 이로서 수치심과 자존감의 최소치는 지키자. 거침없고 당찬 예술대생을 보고 싶다.-경향일보 2012.5.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24212105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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