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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고흐와 崔北

김태익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스스로를 자해(自害)할 정도로 자기 세계에 미친 사람은 예술사에서도 드물다. 조선시대 한 세도가가 화가 최북(崔北)에게서 그림을 한 장 얻으려다 거절당했다. 이 세도가는 주리를 틀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최북은 '네깟 놈들 손을 내 몸에 대게 할 수 없다'며 제 손으로 한쪽 눈을 찔러버렸다. 후기 인상파 화가 고흐는 친구 화가와의 다툼 끝에 발작을 일으켜 칼로 한쪽 귀를 잘랐다. 우연히도 두 미치광이 화가의 전시회가 지금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용산 국립 중앙박물관의 최북 전시회는 그의 탄생 30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최북은 이름 '北'을 반으로 쪼개 자(字)를 '칠칠(七七)이'라고 했다. 애꾸눈에 거지 행색이었지만 술 석 잔 들어가면 붓 놀림이 거리낌 없어 이름 높던 안견(安堅)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잘된 그림인데 주는 돈이 적으면 '그림을 모른다'며 화폭을 찢어버렸다. 좀 모자라는 그림인데 값을 많이 쳐주면 '그림 값을 모른다'며 돌려보냈다. 금강산 구룡연에 유람 갔을 때는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물속에 뛰어들기도 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고흐 전시회는 그의 예술 활동 초기인 파리 시절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이 무렵 고흐는 신경과민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화가를 세상은 광인(狂人) 취급한다. 내가 돌아버릴수록 더 진정한 예술가로 가는 줄 모르고…'라고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100점의 유화와 700점의 데생을 그렸건만 생전에 팔린 것은 '붉은 포도밭' 딱 한 점이었다. 

▶최북은 마흔아홉 되던 해 열흘을 굶은 후 그림 한 폭 판 돈으로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 눈길에 쓰러져 죽었다. 고흐는 서른일곱 나이에 권총으로 자신을 쏜 지 이틀 후 죽었다. 그는 죽기 직전 '나는 왜 이렇게 모든 일이 서툴지? 총 쏘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니…'라고 중얼거렸다. 

▶최북이나 고흐의 인생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고흐의 구겨진 구두 그림 만큼이나 남루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비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를 밀고 나가 신화가 되었다. 이승에서의 찌들고 구겨진 삶은 예술적 성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두 전시회는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에서나 예술 세계에서나 우직한 신화는 나오지 않고 자잘한 계산만 오가는 시대다. 최북과 고흐를 보며 미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볼 만하다.

- 조선일보 2012.11.2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5/20121125012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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