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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일 또 바뀐 역사박물관 ‘MB 그림자’ 벗고 재검토를

울림과 스밈

지난 23~24일 국내 최초의 현대사 박물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역사박물관)이 ‘현대사와 박물관’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22일이 애초 박물관이 문을 열기로 한 날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학술회의는 개관을 기념해 기획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박물관 쪽은 개최 일주일 전인 19일 급작스럽게 개관을 12월 초·중순께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관장조차도 아직 선임하지 못한 상태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6일 “(대선 뒤인) 다음달 21일에 맞춰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현대사 박물관 설립을 공표한 바 있다. 그 뒤 역사박물관은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가 됐으며, 2009년 출범한 건립위원회는 토목사업 벌이듯 속도전으로 건립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박물관 설립 과정은 온갖 파행이 난무하는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깝다. 개관 일정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애초 2014년이던 개관 시점은 2013년 2월, 2012년 12월, 11월로 세차례나 앞당겨졌다가, 다시 2012년 12월로 미뤄졌다. 개관에 맞춰 소임을 끝마쳤어야 할 건립위는 ‘개관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파행에는 관장 선임 문제도 얽혀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았던 이배용 이화여대 교수가 이미 관장으로 내정됐다는 의혹이 일었다. 박물관 쪽은 부인했지만 의혹이 불거진 뒤 관장직 재공모에 나섰다. 이 대통령 측근으로 꼽혀 온 이 교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진영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전시 방향, 콘텐츠 준비 현황 등도 문제가 심각하다. 박물관 핵심인 전시 내용 검토, 운영기반 구축 등에 대한 용역보고서들은 올해 상반기에야 모두 나왔다. 그 전까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준다”는, ‘국가성공사관’ 말고는 전시의 구체적 방향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차츰 드러난 전시 내용에 대해서도,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을 강조하고 국가폭력의 역사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 등 편향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총체적 부실을 빚은 근본 원인은 뭘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애초부터 ‘엠비(MB)의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획 자체를 이 대통령이 발의했고, 건립위원회 위원들 모두 스스로 위촉했다. 위촉된 민간위원 19명 가운데 역사 전공자는 4명밖에 되지 않았고, 역사학계·시민사회 전문가들과의 논의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다. 추진 과정에서 단 한 차례 공청회도 열린 적이 없다. 박물관의 한 인사는 “이미 건립위원회에서 짜놓은 틀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정권이 바뀐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이 기이한 유산이 새 정부에 어떤 방식으로 상속될 것인지 지금 예단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상속 형태가 어떻게 되건 우리가 어떤 ‘현대사 박물관’을 가져야 하는지 원점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폭넓은 소통 없이 ‘엠비의 것’으로만 추진되어온 이 박물관 건립을 일단 중단하는 것이 일차적인 전제조건일 것이다.


- 한겨레신문 2012.11.27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624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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