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문화와 세상]예술대통령

고흐에게 테오가 있었다면 내겐 어떤 ‘언니’가 있다. 이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가서 자식 크기 전까지는 책임을 다하겠다며 가족 ‘뒷바라지’에 전념한 사람이다. 폭력적인 환경 때문에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면 현 한국 사회 누구나의 언니, 이모, 친정 엄마와도 비슷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 언니는 내게 아주 각별하고 중요한 예술 관객이다. 돈도 없고 수줍음이 심해 어떤 종교적 공동체에도 속할 수 없었지만 내게 그녀는 감성 덩어리다. 작품과 공감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말하고자 노력할 때 그녀는 더욱 신중 모드로 변하면서 여느 아줌마의 정체성을 벗어난다.

 그녀는 예술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대중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소통할 것을 요구한 적도 없지만 탈정치적 예술을 전제하는 정치적 인간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작품이 단 하나의 해석으로 축소되거나 추상적으로 도피하는 것을 질타해왔다. 어떻게 창작에 대해 그런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일 뿐이다. 

그저 뒤따라가다 보면 그녀는 아픔을 많이 겪었고, 보통 사람이면서 보통 사람의 잠재력을 폄하하지 않는 곳으로 통하고 있는 건널목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름 없는 것, 모호한 것, 속하지 않은 것에 강렬한 친밀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언니는 업적을 거래하는 대통령의 미술관과는 거리가 먼 ‘바깥에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상상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대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정치와 예술의 영향력에 관해 질문을 접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술 잡지는 ‘내가 만약 예술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작가들에게 던지며 어떤 공약을 내걸지를 물었다. 또 다른 잡지는 ‘미술계만 유독 조용한데 후보들에게 어떤 공약을 기대하고 어떤 문제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나는 이 두 개의 메일에 너무 오래 고민했고 침묵으로 답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더 길게 상상하고 싶다. 나는 어떤 미술관을 꿈꾸는가. 그 미술관은 어떤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향하는가. 미술관이 된 국가. 예술은 정치의 어떤 ‘바깥’인가.

경력자 우대를 외치는 선거 패러다임에서 안철수를 틈새로 밀어올린 어떤 열망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으며 신중하고 모호했다. 추상적 언변들이란 비판에 부딪혀 결국 퇴장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뒷모습에서 ‘예술대통령’이란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예술이 보호하고 출발하는 ‘신중’ ‘모호’. ‘비권위적’인 것들이 안철수란 존재를 통해 투영되었다. 

특정 질서를 존립시켜야 하는 것이 정치이고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한다. 안철수는 퇴장하면서 정당정치를 구태정치로 몰아붙였고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변화는 이제 물 건너간 듯 재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자리는 그의 등장만큼이나 변화를 열망하는 실험의 가능성으로 존속시켜야 한다. 기존의 방식 바깥으로 나가라는 정치적 요구를 하며 등장했던 것처럼.

그는 이제 정치적 현실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대통령이 된 것은 아닐까. 비평적 주체로서의 예술대통령, 신중히 자신을 지우며 창작의 틈을 열어주는. 보통 사람의 존엄을 저버리지 않는 나의 예술대통령은 적어도 미술관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글로벌 운운하며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 ‘목소리’를 돌려주고 말을 건넬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떤 구원도 약속하지 못하는 예술대통령의 얼굴. 빨강, 노랑, 보라 각 후보들 현수막 옆 빈자리에 나부끼는 그의 얼굴을 그려본다. 그 앞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실험하는 예술가이며, 나의 예술대통령은 이미 여기 바깥에 서 있다.


- 경향신문 2012.12.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2042119065&code=99010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