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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 살리기

이광형

1985년 11월 15일,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중앙 현관)에서 미술관 신축 상량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하지만 당시 미술계 안팎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나선형 공간을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램프코어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을 흉내 낸 것 같고 독창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구겐하임과 차별화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작품을 설치하되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를 다는 방안이었다. 백남준은 삼성전자가 모니터를 제공하는 것을 추진했다. ‘다다익선’은 이렇게 탄생했다. 

백남준의 설치작품 중 세계 최대 규모(기단부 지름 11m, 전체 높이 18.5m)를 자랑하는 ‘다다익선’은 24년간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모니터 노화로 작품 보존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미 고장이 난 상태이거나 당장 고장이 날 가능성이 높은 모니터가 100여대에 달한다고 미술관 측은 최근 밝혔다.<본보 11월 23일자 2면 참조> 

1998년에 모니터를 대대적으로 교체한 이후 2003년에 다시 전면 교체했으나 모니터의 내구연한(10년)이 다가옴에 따라 잇단 고장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최근 2년 동안에만 250대의 모니터가 고장 나 교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만든 이 모니터가 2009년부터 아예 단종되고 예비 모니터마저 없어 작품의 보존 및 수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작품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달 23일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다익선 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슈는 “꺼져 있는 모니터를 해체할 것이냐” “LCD로 교체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백남준 작품 설치와 수리를 담당한 기술전문가 이정성씨는 LCD로 대체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2003년 모니터 교체 당시 백남준이 ‘다다익선 애프터서비스에 관한 한 전권을 이정성에게 일임한다’는 내용의 친필 메시지를 전한 사실을 언급하며 “현재 상황에서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대안은 모니터 교체”라고 주장했다. 전체 외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작품 훼손이 아니라, 원형 보존과 품질 향상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피쉬’(1975)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크리스틴 반 아쉬 뉴미디어부 학예연구실장은 “아직 성능이 좋은 모니터를 꽤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언젠가 교체해야 한다면 평면 스크린을 어항 뒤에 놓아 모니터와 유사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체 시 작품의 본질과 개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니터 생산은 완전히 끊어지고 예비 부품도 고갈된 상황에서 LCD로의 교체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 최첨단 모니터가 포함된 ‘다다익선’은 아무래도 원래 모습을 잃게 될 것은 분명하다. 정녕 해법은 없는가. 제품의 생산자였던 삼성전자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본다. 

백남준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원래의 모니터를 재생산한다면 어떨까. 인력과 비용이야 많이 들겠지만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다다익선’을 되살린다면 “예술을 사랑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홍보 효과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 국민일보 2012.12.08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700333&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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