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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화대통령'인가?

이대현

문화대통령. 멋있는 말이다. 문화를 즐기고, 문화를 알고, 문화인과 소통할 줄 아는 대통령이란 얘기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후보시절부터 이를 자처했다. 선거유세 때면 무리들과 우르르 극장이나 무대로 몰려가서는 영화나 공연 한 편 관람하고는 제작자, 배우들에게 덕담 한마디하고 감동스런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니면 어린 아이를 안는 것이 국민 사랑의 대명사라도 되듯, 문화 사랑의 상징인 양 독서하는 모습을 선거홍보물에 자랑스럽게 담는다.

그것으로 문화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문화를 알고, 사랑하고,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책 읽고, 그림 감상하고, 공연 보고, 극장에 간다고 문화대통령이 되는 것 아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문화인들에 둘러싸여 지키지도, 내용도 모르는 온갖 지원을 약속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흉내 내 작가나 감독, 배우를 장관에 앉힌다고 문화대통령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역시 한 표라도 긁어 모으려는 선거운동이고, 정치쇼일 뿐이다.

이런 문화대통령에게는 '창의'도, '문화강국'도, '창조'도 오로지 자기 세력화의 수단이나 돈으로만 취급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그들에 의해 문화는 순수성을 잃고 이념으로 덧칠 되었고, 문화까지도'돈이 최고'인 경제논리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복지가 세상의 화두가 된 지금, 말로는 문화가 미래, 기본권이라고 하면서 그 사은품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다. 문화도 복지다. 그러나 물질적인 혜택에 의한 육체적 복지가 아니다. 문화는 우리의 정신적 삶의 복지다. 그것은 문화의 예술적 아름다움, 감동, 자부심, 보편적 가치와 현실의 확인,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다. 문화복지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억만 금으로도 1,200만 국민의 마음을 울린 영화 <광해>의 가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영화가 준 무형의 복지인 감동과 깨달음의 재미를 무시하고 흥행수익으로만 <광해>의 가치를 평가하고 계산하는 것은 문화장사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한글과 아리랑에 대한 자부심도 마찬가지다.

문화의 힘은 이런 것이다. 작품 하나로 수 백, 수천 만 국민을 웃게 하고, 위로하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럼 점에서 프랑스의 문화정책을 분석한 장 미셀 지앙의 책 제목처럼 <문화는 정치다>. 좋은 정치가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듯, 좋은 문화는 국민의 삶을 따듯하고 풍요롭게 한다.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릴 수만 있다면 문화만큼 보편적인 복지도 없을 것이다. 또 좋은 문화에는 돈도 절로 따라온다.

때문에 무엇보다 어떤 문화인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여전히 문화는 경제다. 문화가 아닌 문화예술인의 일자리와 생활에 대한 약속들이다. 예술인복지법을 손질하고, 창업과 고용을 지원하고,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문화상품 수출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 후보와 달리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는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문화접근성 확대방안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창작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예술인의 생계를 보장하는 일도 물론 시급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복지'일 뿐이다. 결국은 돈으로 선거에서 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다. 그보다는 먼저 '문화는 이래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그것을 위한 정책방향을 내놓아야 한다. 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했다. 적어도 문화대통령을 자임한다면 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방향부터 잡아야 한다. 문화예술인들 역시 어떤 길을 선택하듯 그곳으로 가야 할 책임이 있다.

먹고 사는데 힘들다 보니 문화는 늘 뒷전이다. 그러나 미래 세상과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문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내일(16일)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누가 진짜 '문화대통령'인지 한번 확인해보자.

- 한국일보 2012.12.15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14210821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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