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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전시회의 의의와 방향

박래경

블록버스터 전시회의 의의와 방향


박래경/ 이인성아트센터 회장,한국큐레이터협회명예회장

 


1. 우리의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린 블록버스터형 미술전시회


과거에 대형 전시회 하면 주로 근대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서양 국가들이 그들의 수도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신기술과 산업발전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게 위해서 마련하였던 만국박람회 형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거기에는 물론 새로운 기술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박람회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고유문화, 특히 대표적인 미술 분야의 소개가 세련되게 잘 포장된 매력적인 모습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전혀 다른 영역의 자랑거리를 한자리에 모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알리고 나아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는 박람회를 과거형태의 한 대형 전시회 형식으로 생각 할 수 있다. 박람회 개최 기념물로 에펠탑이 건립되었던 파리 박람회 시기에 우끼요에를 소개 하였던 일본의 노력은 그 후에 일본미술이 끼치게 되는 서양에의 영향을 지켜 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와같은 노력은 말하자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에 와서 대표 문화행사로써 개최된 “모던아트와 세계문화” 라는 대형전시회에 중심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는 토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런 일은 한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서 세계인들과 그것을 공감하고 이해시키는 일에 얼마나 진지한 의미를 두었던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신축하여 재개관 했을 때가 1986년 8월의 일이다. 개관 전시로써 4가지 큰 전시회,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전>, <와이즈만컬렉션전>, <프랑스20세기미술전>, <86서울아시아현대미술전>이 동시에 개최 됐다. 그 이전에 대형 전시회라고 하면 주로 한해 한번씩 개최되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같이 대형의 미술공모전이 대표적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이 열린 바로 뒤에 열린 것이 88 서울올림픽경기다. 특히 이전에 참가 하지 않았던 공산권국가의 대거참여라는 이 세계적 스포츠 행사의 문화부문에 그야말로 대형의 미술행사를 열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기념전시 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제현대회화전> 과 함께 동서진영의 현대 조각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작품제작에 임하는 조각 심포지움이 중심이 된 올림픽조각공원의 <국제야외조각초대전>이 여기에 해당된다. 


80년대 후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형미술전시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미술관 재개관이나 세계적 스포츠 행사와 같이 큰 틀의 행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90년도에 들어서게 되면 상항은 좀 더 다른 쪽에서 촉발되며 이후 시대의 추이에 따른 사회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우리사회에도 어느 사이에 대형 폭탄과 같은 위력으로 충격을 주는 대형전시인 블록버스터 전시회가 증가하게 된다. 그 하나의 예가 되는 것이 <휘트니 비엔나레 서울전>(1993, 7.31-9.8) 이다. 휘트니 비엔나레는 뉴욕에 있는 휘트니미술관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행사로써 그곳의 장소를 벗어나서 타 지역에서 비엔날레 행사를 개최한 적이 없는 미술관의 미술행사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로쓰 (Ross)관장과 함께 그 전람회를 국립미술관에서 개최하자는 논의와 배경이 있어서 결국 서울전이 실현 되었다. 여하튼 미국의 여러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깊히 있게 다룸으로써 현대의 미국사회문제와 그것을 문제제기한 현대예술가들의 활발한 표현전달의지는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대형전시회로 기억되는 전시회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미술과 연계되는 중요한 대형전시가 같은 해에 열리기도 하였다. 다름아닌, 조선일보사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 아! 고구려 1천5백년전-집안고분벽화 전>(1993,11.18-12.26, 20일 연장과 지방 여러도시 순회전이 이어짐) 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구려벽화의 사진전을 대형으로 열었다는 일의 적합성 여부를 두고 염려하는 분들도 계셨다. 왜 하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냐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길 수 있다. 벽화 사진의 허가 이용 문제라던가 고미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등의 이유가 있다. 시대특성적인 유물이나 작품으로 미술관의 소장품이나 전시를 성격 지울 때에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현대 미술관에서 개최하게 된다면 어떤 의미나 관점을 새롭게 가질 수가 있을까 그런 점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해석과 결론이 나면 주저없이 과감하게 실행 시킬 일이다. 현대미술이라는 성격에 시대구분이라는 인위적인 시차에 얽 메일 필요없는 전시회 개최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또 그 때에 그것을 다수의 사람이 한꺼번에 본다는 일 자체가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에 이것을 현재 시간대로 끌어낼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함부로 관찰하고 실사할 수 없는 집안고구려벽화를 그 사진자료 전시나마 놓지지 않고 봄으로써 현재의 눈 앞의 미술로 환기 시킬 수 있게 된다면, 적합한 전시공간은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이같이 대형 전시들이 점차 횟수를 늘려 갈 즈음에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는 비로소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시책이 발표 된다. 누구든지 대다수의 나라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이전에도 외국여행 목적과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는 허가를 얻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령 1953년 6. 25전쟁 정전과 전후사태 수습시기 이후 화가를 비롯한 많은 예술계나 학계의 사람들이 연구나 시찰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1957년이 어쩌면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의 해라고 보는 관점도 이렇한 그간의 사정들이 최소한도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나 서구등지에 여행하면서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과거미술까지 한정된 시간에 돌아 보고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거기에 대한 배가 되는 갈증이 오히려 증폭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수십년간을 거치면서 이와 같이 근대기 문화선진국의 예술에 대해 갈증이 계속 쌓여 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혹시 당시 최신 월간 외국미술잡지를 구했다면 그 쪼가리가 너덜거리는 형상에 이르기 까지 돌려보았다는 시대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당시 현대미술의 흐름을 포착 하고져 하는 열망과 함께 과거미술의 명작들에 대해 확인 해 보고싶은 욕망이 끝이 없었다. 한편 해외 주요미술 선진국에서는 그동안 세계미술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해당 국가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을 그들 개인미술가나 집단적인 미술사조에 해당하는 미술품들을 미술관이나 소장가들의 도움을 얻어 강점이 있는 자국미술 중심의 잘 짜여진 기획으로 다년간에 해당하는 해외 순회 전시형식으로 내어 놓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전전의 미술이었던 독일의 1989년 <바우하우스> 전이나 60년대 말 유럽학생혁명의 여파로 날것의 재료를 표방하고 나서 큰 반향을 이르킨 바 있는 1988년 이탈리아현대미술전 <아르떼 뽀베라(Arte Povera)>전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바 있다. 그렇한 성격의 대형 해외 미술 한국 소개는 80년대, 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더욱이 이름있는 미술관들의 수복 보수 기간동안 해외로 해외로 자국미술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삼는 주요국가들의 미술품 해외소개는 더 없는 매력의 기회로 수요자들에게는 비추일 수 있는 대형전시회의 이점이 되었다. 이와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형미술전시회 개최는 서서히 하나의 확실한 전시회 형태로 틀 잡아 가게 되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정보도 빠르고 홍보의 효과도 있고 특히 자체 내의 전문적인 전시기획요원들의 치밀한 조사 연구를 밑바침으로 외국미술 특히 근대서구미술의 본령인 근대프랑스미술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그에 따른 실체적인 확인으로서의 미술전시를 내어 놓는 주요신문사의 활동에 탐복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주요 신문사가 관계하는 대형미술전시회도 일단은 긍정적인 눈으로 보게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우리나라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대형전시회 개최의 무리가 들어 나기 시작하고 이것의 양면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2. 대형미술전시의 명과 암


오늘날 대형미술전시가 하나의 대세를 이루면서 그동안 생겨나는 문제점들을 개괄해 볼 때에 몇가지 질문이 생긴다. 먼저 왜 이 형태를 선호 해 왔느냐? 가령 1970년대의 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된 바가 있는 에집트의 <투탄카멘>전시가 우리나라 대형전시회의 시효라고 한다면(주1) 그것은 그 전시회의 내용상 성격에 맞는 전시형태가 아닐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지금까지도 아직 끝나지 않는 세계의 문명사적인 차원에서의 외국 전시 유치를 하나의 기본 입장으로 견지하면서 박물관 전시계획에 분명히 넣고 있고 그같은 맥락은 아마 한때 관장 차원의 전문가다운 지식에서 울어나온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 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역사와 문화를, 특히 특정문화와의 상호관계들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그 흔적과 근거를 가시화 시켜가는 박물관 전시에서 그에 걸맞는 전시 형태상의 규모와 방법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자체가 필요에 따라 대형의 전시 형태를 취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최신식의 기술계발이나 계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기획의도를 확실하고 참신하제 살려서 좋은 전시를 실현시키는 일이야말로 오히려 바람직 스러운 일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가령 관객 동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경우로써 소장미술품의 성격에 따라서 고미술이나 근대미술 나아가 현대미술에 해당되는 전시의 예를 들면, <금은보화 전> 이나 <조선화원 전>, 혹은 근현대사를 새로 보려는 <코리언 랩소디> 나 최근의 <알렉산더 칼더> 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산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운 특정 사립미술관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가능한 일도 그것이 힘이 드는 개인 또는 일반 사립미술관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립, 시립 미술관,등 공립미술관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당장 재원의 확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재원 조달방법을 개발 하느냐 아니면 기획된 전시를 못하느냐, 특히 외국의 대형 전시유치는 불가능한 것이냐, 이러한 구체적이고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노력 없이 화려하고 그럴듯한 대형 전시에 현혹되어 가고 있다면, 대형전시 자체의 실현 가능성을 넘어 어두운 면을 스스로 초래하는 결과가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듣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전형적인 부정적 측면의 노출에 해당된다 하겠다. 문제는 적어도 미술관이 관련 되어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라면, 일반적으로 대관 형식에서 볼 수 있는 경우와 같은 안이한 태도는 당장 지양돼야 할 것이다. 미술관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망각하거나 배제되는 차원에서 대형전시회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원작을 본다는 일의 중요성 


미술사적으로 평가된 작가의 예술작품들을 전시회를 통해 만난다는 일은 이 세상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술가의 생각이 조금씩 다른 형식과 방법을 통해 담겨져 있는 현장을 찾는 일로써 마음의 평화와 행복감마저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욱이 전시회를 통해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작가의 창의적인 생각에 깊숙이 접근 하여 그와 같은 세계를 공유해볼 수 있고 거기에 공감해 볼 수 있는 정신적인 집중의 자리라는 뜻에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싶허 하거나 재차 다시 보러 오는 일이 빈번하게 생기게 된다.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축복 받는 순간을 경험 하는 일과도 같은 흐믓한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전시장의 적절한 환경이나 분위기가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날의 대형전시의 경우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다니기 쉬운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에는 해당 안되는 관람 환경이어야 할 것은 재언 할 필요가 없다. 


미술관들이 가끔 시도하는 설문조사에서 역시 많이 차지하는 방문객의 유형에 아이들을 동반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높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교육적 목적에서 미술관을 찾는다는 뜻이다. 미적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반드시 프리드릿히 쉴러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요하고도 필요하지마는 그리 간단치 않는 교육으로 치부된지 오래이다. 그러니 특히 창의성이 강조되는 요즘의 세태에 조금이라도 일찍이 아이의 창의성을 기르고 계발해서 생각의 힘을 길러 주려는 어미들의 간절함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 혹은 여러 작가들의 여러 다른 예술세계를 비교 관람 하는 일은 어떤 이유나 목적에서였던지 간에 전시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형 전시 형식도 여건만 된다면 계속할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특히 대형 전시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만일 본질에서 벗어난 과대 포장에 의한 내용물을 가지고 흥행성위주나 앞뒤 가릴것 없는 수익성 목표가 제일의 목적이라면 반대로 대형전시회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편 그러한 문제점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던 전시회 주최당사자들, 특히 행사기획회사들의 당사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할 수 있는 문제가 그런 경향을 가진 대형전시를 공간만 빌려 주어 가능케 하는 다름 아닌 미술관들의 공간대여 행위 이다. 여하튼 예술작품 본질상 그 본질에 위배되는 작금의 우리나라 일반화된 블록버스터 전시회의 사례는 한시 바삐 개선 되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취해있는 현 상태에서 한시 바삐 빠져나오기 위한 우리 모두의 각고의 노력과 일대 각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보다 공익성을 위한 의식의 깨어남이 있어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그동안 미술애호가들이라는 대중을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여 대형 전시회 개최의 경험을 쌓았고 나아가서 부정적인 면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포착하고 있는 행사개최 전문가들이 있다면 앞으로 가야할 방향설정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타개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 특히 국공립 미술관에서 미술관의 관여가 전혀 없는 대형전시회의 유치가 있다면 문제는 그냥 연결 시킬 수 없는 심각성을 띈다. 모자라는 예산을 보충하는 한가지 방편으로, 혹은 국민들이나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꺼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해결의 한 방식으로 빌려오는 대형전시회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으로써 나중에 가서 후회꺼리가 되는 원인이 된다. 한편 이들 미술관의 현제의 애로사항은 사실 전혀 다른 곳에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방문객 수의 절대적인 큰 수치의 달성이다. 이것이 미술관 운영 평가의 바로메터가 된지도 오래다. 사실 늘 분비는 미술관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로 중앙행정관청이나 특히 지자체가 미술관이라는 문화예술적인 중요 실체들이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먼저 숙지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여건이 구비 안된 상태에서 기계적인 수치 적용만 고집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궁여지책으로 패키지화 되어있는 대형전시 유치로 흥행을 북돋우고 방문객 수치를 높혀주지마는 그대신 미술관의 존제이유와 기능과 역할이 날라 가 버리는 결과에 원인 제공을 하게 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입장료로 수익은 어느정도 쌓이게 되겠지만 시끄럽고 번잡한 전시장내의 분위기는 와야할 사람들의 발거름을 결국은 차단하는 꼴이 되고 재방문의 흥미를 식히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창의적인 사고의 힘을 길러 가려는 오늘날의 많은 전시장 방문객들의 성향은 어디까지나 진정한 예술작품과의 진지한 만남을 전제로 미술관을 찾게 된다. 다시말하자면 안목과 수준이 높아 요구사항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 점은 특히 미술관 종사자들의 전시기획과 실행에서 세부에 이르기까지, 설명의 내용이나 글꼴과 함께 동원된 설명기술이나 방식에 이르기 까지 전문성을 발휘 하면서도 친절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여하를 직감적으로 챙기고 알아 차리는 무서운 비평안 소유자의 요구사항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전시 형태의 경우 알게 모르게 수시로 평가 받을 기회를 그만큼 많은 측면에서 가지게 된다는 말이 된다. 특히 미리 짐작이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과 같은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참신한 아이디어에 의한 완벽에 가까운 대형 전시회를 꾸며서 재차 방문을 다짐하는 방문객이 늘어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에 베게 명심하면서 행동할 태도를 미술관 전문 종사자는 길러야 하는 일이 먼저 요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 대형전시 기획자들이 사실 알아두어야 할 문제영역에 포함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일이나 그 일에 전문적으로 종사 하고 있는 사람들의 제대로 된 업무과정을 제대로 아는 일도 자신의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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