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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열풍, 과연 미술에서도

정준모

서바이벌 열풍, 과연 미술에서도


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서바이벌 프로그램 바람은 열풍을 넘어 가히 태풍수준이다. 방송사들마다 앞 다투어 가수, 디자이너. 요리사 등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더니 급기야 미술 분야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고 이미 대부분의 방송분량의 녹화를 마쳤다는 소식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찌 모두 장점만 또는 단점만 지녔겠냐만 이 프로그램도 분명 장단점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왜 일까.

 

우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특성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 모아 방송사가 말하는 것처럼 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술이라는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폄훼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전통’이라던가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지혜’, ‘앎’ 그리고 ‘예술’과 ‘정신’에 대한 태도나 이해는 심각할 만큼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예전에 비해 좀 살만 해졌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의 오만함 때문이다. 모든 가치,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배금주의 또는 황금만능주의로부터 기인한다.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인문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인문교양수준으로 전락하고 미술은 기호와 취미에 봉사하는 수준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천만 관객이 든 영화는 모두 명화일까. 예술영화한편 변변하게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요즘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림들을 보면 과일가게나 디저트 가게에 온 것 같다. 울긋불긋하고 고만고만한 장식용 그림이 그 의미도 불분명한 코리안 팝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버젓이 존재한다. 이태원이나 삼각지 매장 또는 신규 입주하는 아파트 정문 옆 노점에 있어야 할 기호와 취미에 봉사하는 그림들(?)이 화랑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앞으로 50년 100년 뒤 우리시대를 증거 할 미술품의 수준을 상상해보면서 가위눌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절박한 한국미술의 처지에 대중화란 토끼를 잡겠다고 예술성이라는 토끼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야 될까.

 

경제적 성공과 실패가 예술적 성취 아니 성공과 비례한다고 믿는 현실에서 과연 이에 편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장식용 그림도 필요하지만 한편 고민과 진지한 자기성찰 끝에 나온 미술품도 필요하다. 당대의 미술이 ‘현상’을 넘어 ‘역사’가 되려면 후자여야 한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한국미술도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아 결국 하향평준화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하향평준화를 통해 얻는 미술의 대중화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술이라는 예술적 속성 특히 현대미술이라는 특성을 외면하고 일주일 만에 새로운 과제를 받아 오직 생존하기위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이는 마치 양계장의 산란용 닭의 처지와 무엇이 다를까. 미술은 많은 시간 숙성시켜야 맛을 내는 간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물론 반짝하는 아이디어로 순간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쫒기 듯 만든 작품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진기명기에 가깝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대중화에는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만 더하는 꼴이 될 것이 자명하다.

 

사실 십 수년이상을 신진 작가발굴을 위해 존재해온 공모전들이 있다. 하지만 그 공모전의 대상을 수상했던 작가들 중 역량 있는 작가로 성장한 경우는 1%에도 지나지 않는다. 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될 작가들의 미래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음악, 패션, 음식 중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파워브랜드로서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즉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출연자들이 데뷔할 경우 이들 음악의 소비주체는 시청자였던 대중이 된다. 이는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장점이다. 하지만 미술 특히 현대미술의 속성상 시청자가 곧 바로 소비자로 이어질 수는 없다. 이 프로그램은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아마추어가 프로로 나아가기위한 수단이자 방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 분야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미 미술대학을 나와 작가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모두 갖춘 이들이 경연에 참가하고 있다. 또 회화작품의 경우 경연의 속성상 TV에서는 볼거리가 별로 없어 자연스럽게 회를 거듭하면서 대열에서 낙오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경연프로그램의 룰은 엄정하고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TV 프로그램, 시청률을 거부할 수 없는 속성상 미술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누구나 시도하고 도전한다는 면에서, 그리고 프로그램이 회를 거듭해가면서 경쟁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갑남을녀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것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각광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프로로 진출한 자격과 자질을 갖춘 이들을 방송에 불러내어 어쭙잖은 아마추어 흉내를 내게 하는 것은 방송을 만드는 이는 물론 시청자들을 속이는 일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에게는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미술문화 저변확대를 위한 대중 소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토리 온 채널이 준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파이널리스트 3인전’을 3주간이나 개최할 것이라 한다. 국제박물관협회 전문직 윤리강령(ICOM Code of Professional Ethics)의 기관윤리에 의하면 이는 미술관이 할 일이 아니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특정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공공재인 미술관이 지원하다는 것은 형평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ART STAR KOREA 공식홈페이지

 

세상에는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그 원칙이 무너진 사회의 미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묵묵하게 세상을 지켜나가는 스테디셀러는 더욱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시간에 차라리 제대로 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하나 신설하면 안 될까. 미술의 대중화와 문화 복지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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