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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8) 백제금동대향로

신광섭


백제 관념세계의 이토록 화려한 표현-다양하고 신비로운 圖像 상상력 자극
※ 이미지는 첨부파일 참조
▲ 백제금동대향로, 국보287호, 높이 64㎝, 백제 7세기, 국립부여박물관.

금·은·동·철·청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금속공예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삼국시대 후반 제작된 백제의 ‘백제금동대향로’와 통일신라시기 제작된 ‘성덕대왕신종’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백제의 종교와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백제금동대향로’의 아름다움을 짚어보았다. / 편집자주

백제금동대향로는 사비시대 백제왕들의 무덤인 능산리 고분군에 인접한 백제 능사의 工房址에서 출토됐다. 전체 높이 61.8cm, 최대지름 19cm로 향로 뚜껑과 몸체 두 부분으로 이뤄졌으나 원래는 봉황·뚜껑·몸체·받침으로 만들어 조합한 것이다.

뚜껑 정상부에선 한 마리의 봉황(높이 12cm)이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펴 막 비상하려 한다. 꼬리는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갔으면서 부드럽다. 뚜껑 아래에는 5단의 三山形 산악문양 띠로 장식되어 있다. 삼산의 외곽에는 集線文을 음각했고, 맨 윗 단에는 다섯 명의 奏樂神仙이 있다. 악기를 반주하는 이들은 5악사로 불리는데, 阮咸, 縱笛, 排簫, 玄琴, 북 등 5개 악기가 실감나게 연주되고 있다. 완함, 종적, 배소는 서역에서 전해지는 악기로 보이며, 거문고는 고구려, 북은 남방악기에서 연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악기는 연기비암사계유명아미타삼존석상(국보 제106호), 고구려 안악3호분, 장천1호분, 무용총, 집안 오회분 4·5호묘에도 등장해 그 기원을 짐작케 한다.
그 아래에는 다섯 개의 산을 두었고, 산꼭대기마다 신선의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춤추는 기러기들이 있어 한폭의 아름다운 歌舞像을 이룬다. 5악사와 더불어 뱀을 물고 있는 짐승 등 상상의 동물,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현실세계의 동물 42마리, 주변인물 12명이 74곳의 봉우리와 계곡에 변화무쌍하게 표현돼있어 자세히 볼 수록 그 신비한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머리는 봉황, 다리는 용
봉황은 聖人의 탄생과 임금이 치세를 잘해 태평성대를 이룰 때 출현하는 상서로운 새이다. 天鳥, 瑞鳥, 神鳥로 여겨져 온 이 봉황이 출현할 때는 뭇 새들의 영접을 받으며 내려오는데 이 때, 아름다운 음악으로 불리는 鳳鳴은 5음의 묘음으로서 주악신선으로 상징화 했다. 봉황의 턱밑 여의주 바로 아래에는 2개의 구멍이, 5악의 뒤쪽에는 5개씩 두 줄로 10개의 구멍이 있어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대향로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보면 動的인 자태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향로 뚜껑에 있는 12명의 인물은 말을 탄 2명을 제하고는 발아래까지 내려오는 도포를 입고 있다. 그 중에서 폭포아래 머리를 감고 있는 인물이 눈에 띄는데 그는 산천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말 탄 이 중 한 명은 후방을 향해 활을 당기는 듯 날렵한 몸동작을 보여주며 다른 한 명은 투구와 갑옷을 착용했고, 말은 안장과 각종 장식구로 꾸며졌다. 이런 기마인물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가야 토기의 것과 흡사하다. 또한 상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 얼굴에 새의 몸이나 짐승의 몸을 하고 있는 평화스런 모습들이 눈에 띄는데, 선계의 신선을 묘사한 것이다.

뚜껑에는 또 악귀를 막기 위한 포수도 있고, 여섯 종류의 신령이 깃든 식물이 있다. 뿐만 아니라, 길상, 서기의 상징으로 표현한 博山무늬가 있는데 박산무늬 테두리는 화염무늬로 장식했다. 산봉우리 사이사이에는 바위가 있는데, 2~4개가 중첩되어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형상을 나타내 문양들이 수직으로 쏟아져내리는 듯 향로의 맵시있는 몸체와 연결된다.
마치 활짝 피어난 연꽃인듯
향로의 몸체인 爐身은 반구형 대접모양으로 삼단의 연꽃잎으로 덮여 있어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케 한다. 연꽃잎과 그 사이사이 여백에 27마리의 짐승과 두 명의 인물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무예를 하는 듯한 동작이라 흥미로운데 이는 무용총과 안악1호분 벽화에서 보이는 인물과 유사하다. 27마리의 짐승 중에는 날개와 긴 꼬리를 가진 동물과 날개달린 물고기도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들고 있는 한 마리 용으로 표현됐다. 한쪽 팔은 치켜들고 세 다리와 꼬리로서 표현된 용의 자태는 환상적이며 생동감 있다. 용은 마치 승천하는 듯한 모습인데 주변이 화염·물결·구름모양의 갈기, 연화문등으로 장식돼 분위기를 더한다. 용의 뿔은 두 갈래로 끝이 고사리모양으로 말려있으며 날카로운 이빨, 벼슬, 갈기는 고구려 집안 오회분에 표현된 용의 모습과 흡사하다.
금동대향로는 삼국시대나 그 주변문화에서 찾기 힘든 균제미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온갖 물상으로 인해 단연 압도적 걸작이라 하겠다. 단조로운 향로 받침 기둥을 용의 머리와 몸체로 대체한 것이나 다리 하나를 밖으로 돌출시켜 역동성을 표현한 것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조형에 변화를 준 것으로, 구도상의 안정과 조형미를 추구했다.
이처럼 현존하거나 혹은 상상 속의 다양한 물상이 표현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출토 이후 고고학, 미술사 분야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왔다. 특히 향로의 도상에 대한 사상적 배경을 추정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도교적 관점에서 연구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삼국유사’에 보면 도성에는 일산, 오산, 부산의 三山이 있어, 국가가 전성기일 때 각 산에는 神人이 거주하며 조석으로 왕래했다 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무왕 35년에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리에서 물을 끌어 들였으며 연못의 사방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물 가운데에는 섬을 축조해 方丈仙山을 조성했다고 했다. 방장선산은 영주산·봉래산과 함께 고대인들의 이상향인 삼신산의 하나다. 또한 37년에 무왕은 조정 신료를 거느리고 기암괴석과 기이한 화초가 있어 그림과 같은 백마강의 북쪽 포구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으며, 같은 해 궁남의 연못가에 있는 망해루에서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제 문양전 8종에서 이 향로의 도상들과 일치하는 문양이 보여진다. 이 중 산수산경문전은 삼산형의 산들로 표현됐는데 이는 향로의 몸체와 같고 그 분위기는 향로의 뚜껑 도상과 유사하다. 봉황아래 펼쳐진 산 경치와 주변에 유유히 흐르는 서운과 서기는 향로 뚜껑에 있는 봉황, 그리고 그 주변에 전개된 도상과 의도하는 바가 같다. 대향로에 피운 향연이 피어올라 봉황주변과 뚜껑의 심산유곡으로 흐르는 형상이 산수봉황문에 그대로 나타난다.
‘5’의 상징화로 중국 박산로와 차별화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 향로를 중국 박산로와 관련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좀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봉황 아래 5개의 산, 5인의 악사를 보자.

삼국사기 온조왕 20년조에 왕이 大壇을 세우고 천지의 제사를 지냈는데 이상한 새가 다섯 마리가 와서 날았다는 기사가 있다. 또 이러한 제천의식과 더불어 백제 임금이 하늘과 5제에 대하여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가 출자한 부여도 일찍이 ‘5’라는 수의 개념을 기본단위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제에서도 도성을 5부, 전국은 5방으로 각각 설정해 통치하였다.
이와 관련해 백제 법왕은 불교와 산악사상은 결합하기 위해 성주사 터에 오함사를 창건하고 북악이라 칭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백제는 동·서·남·북에 중을 합하여 국가적으로 5악의 산악숭배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봉황의 주변에 배치한 3산과 5악은 백제 숭천사상, 산악숭배사상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海中神山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도성에 조성하고 그 해중신산을 바라보는 망해정을 건립하고 불로장생의 표상인 여러 신선과 신수, 신목들을 대향로에 표현한 것이다. 요컨대 대향로의 3산과 5악, 산천, 제사는 봉황과 더불어 성군의 출현과 태평성대를 기대하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의 표현이며 궁극적으로 백제관념세계의 복합적 총체로써 이 향로를 이해해야 할 것 이다.
궁남지, 3산, 숭천사상, 하늘과 5제의 개념, 백제문양전등에서 볼 수 있는 도교는 백제의 새로운 통치 체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여겨져 무왕대의 국왕권위의 강화 분위기와 맞물려 있어서 향로는 백제 6세기말~7세기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이다.
이와 같이 발달한 백제의 공예기술은 면면히 이어져 신라에 전해졌고 우리나라 남북국시대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은 금동대향로와 쌍벽을 이룬다. 금동대향로가 출토하기 전만 해도 성덕대왕신종이야 말로 유일한 대표급 유물이었다. 비록 제작시기에 있어 2백여 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과 개별적 특성이 있다. 성덕대왕신종은 현존하는 가장 큰 범종으로 높이 37.5m 지름 2.27m 무게 118.9t이다. 이 종은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제작을 시도하였으나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였다.
통일신라의 문화적 역량의 총 집결된 금속공예품으로 규모, 제작기술, 예술적 표현, 음향적 특성에서 한국 전통 종의 대표작이다. 금동대향로 역시 백제인의 사상과 염원을 담은 백제 최고의 걸작으로 백제 금속문화를 대표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당시로서는 최고의 금속공예기술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또 금동대향로는 백제 27대 위덕왕이 전장에서 전사한 성왕을 追福하기 위하여 지은 백제능사에서 출토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모두 父王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성한 점에서 그 제작 동기가 같다.
그러나 두 문화재간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는데, 외형이 다를 뿐 아니라 내적 상징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성덕대왕신종은 불교적 세계관이 표현된 불교예술품이고 대향로는 불교보다는 백제의 전통사상과 도교적 세계관의 혼합된 백제의 관념체계 그 자체이다. 또 성덕대왕신종은 그 예술적 표현과 함께 오묘한 음향적 특성으로 인하여 청각 예술을 가미한 소리로서 그 가치를 증가시켰다. 반면에 향로는 외연에 베풀어진 시각적 예술성과 향연이 함께 등장함으로써 향로의 停體와 향연이라는 動體가 조화를 이루는 형식이다.
요컨대 향로에 베풀어진 다양한 물상은 백제인의 관념체계를 확실하게 드러낸 걸작으로 앞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의미와 기능과 비교 검토해야 할 것이다. 특히 향로가 출토한 백제능사는 고구려의 능사개념과 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져 고구려문화와의 관련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
※ 필자는 중앙대에서 ‘백제 사비시대의 능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금속공예’ 등의 저서와 ‘백제금동향로의 조형과 편년’ 등의 논문이 있다.
※ 출처-교수신문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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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사: 한국 최고의 금속공예
세련되고 정교한 은입사로 繪畵 연출

※ 이미지는 첨부파일 참조
▲ 청동은입사포유수금문정병, 국보92호, 높이 37.5㎝, 고려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최고의 금속공예 가운데 전문가들은 ‘청동은입사포유수금문정병’를 빼놓을 수 없는 명품으로 추천했다. “형태가 안정감 있고 유려한 곡선미를 보여준다”, “은입사의 풍경이 회화적으로 뛰어나다”, “상감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정교하다” 등이 그 이유였다.
어깨가 약간 강조된 둥근 몸체에는 위아래로 여의두무늬가 둘러졌다. 귀때를 중심으로 양쪽에 회화적인 풍경이 묘사되었는데, 수양버들 두 그루와 갈대가 우거져 있고, 뒤로는 언덕이 있다. 그 사이에 작은 섬들과 갯벌들, 헤엄치는 오리와 날아오르는 물새들이 한가롭게 표현되었으며, 작은 배에선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저기 먼 산에는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철새들이 줄지어 날고 있다. 병면 전체에는 청록색의 녹이 고운 배경을 이루어 문양들이 한층 선명히 나타났으며, 은입사된 문양이 이와 어우러져 한층 두드러져 보인다. 이런 늪가의 풍경은 고려청자에 보편적으로 나타났었다.

귀때에는 연화당초와 연잎이 장식되어 있고, 뚜껑이 덮여 있다. 목부분에는 구름이, 그리고 첨대에는 파초가 입사되어 있다. 또한 귀때의 덮개와 첨대 하단에는 은판을 뚫을새김으로 처리하여 장식효과를 높여주었다.
이 정병은 부처님 앞에 정수를 바치는 공양구로, 특히 이 작품은 고려시대 청동은입사정병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ㅣ성덕대왕신종 ★★★★ㅣ청동은입사포유수금문정병 ★★★

/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 추천해주신 분들: 강경숙 동아대, 김영원 국립중앙박물관, 방병선 고려대,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 최공호 한국전통문화학교, 최응천 국립중앙박물관, 이상 총 6명 가나다순.
※ 출처-교수신문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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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속공예와의 비교
기묘한 형상의 박산향로… 不死의 염원 연기처럼 피어올라
백제금동대향로의 조형적 始原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博山爐는 중국 서한 무제 무렵에 등장한 향로의 일종으로, 청동제가 많으며, 금으로 도금이 되어 화려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다수 있다. 대부분 고위층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바다를 상징하는 承盤 위에 중국에서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박산을 상징하는 뚜껑을 덮은 동체부가 얹혀 있다. 육조시대의 詩에 ‘박산향로’라는 명칭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향로를 따로 ‘박산로’라고 부른다.

박산로에는 중첩된 산들이 배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산악도는 이전의 중국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후에 동아시아 산수화의 시원으로 여겨진다. 이는 특히 승반 위에 얹혀져 우주산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봉우리에 갖가지 기이한 동물과 신선들이 뿐 아니라 식물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조형은 전국시대부터 등장하는 신선사상이나 不死 개념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향로는 봉우리들 사이로 향의 연기가 피어 나오며, 버팀대 아래에는 동물과 용이 배치된다는 점에서 다른 향로와는 차이가 있다.
漢代에 유행한 박산로의 조형과 상징성은 수·당대에 이르러서는 박산향로의 내적 의미의 쇠퇴와 함께 외형도 단순·도식화하고 있어 공예품으로서 이렇다할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산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백제금동대향로가 탄생 계기로 볼 수 있다. 다만 백제에 이르러서 이 향로는 백제의 관념과 왕실을 섬기는 것으로 새로운 조형성과 상징성을 갖고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박산로의 전통이 전달되지 않아 고대국가의 발전기 양상을 대표하는 향로관련 유물은 보이지 않기에 중국이나 한국과 비교해 언급할만한 것이 전혀 없다.

/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
※ 출처-교수신문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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