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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밖 미술비평_ ② 김화영

홍지석

역동적 상상력과 심미안 … 난해함은 미덕이 될 수 있을까
20세기 이전의 우리 지성사에서 詩와 書, 그리고 畵는 서로 분리시켜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 무렵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이 詩와 書와 畵의 기량을 모두 갖춘 ‘三絶’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때로 이 가운데 하나에 특출한 기량을 갖춘 자가 있더라도 그가 다른 두 가지 기량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른바 근대화의 진행과 더불어 시와 서, 화의 강제적인 분리가 진행됐다. 먼저 시와 書畵의 분리가 일어났고, 다음으로 서와 畵의 분리가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시인, 서예가, 화가라는 근대적인 직업이 등장했다. 물론 최초에 그것은 명확한 분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시인과 서예가, 그리고 화가의 상호 얽힘은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어진 경계는 단단한 장벽으로 변해갔다. 이제 서와 화를 모르는 시인도 대가가 될 수 있고, 또 시와 서를 모르는 화가도 대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


김화영(맨 아래)의 미술 비평은 그의 글쓰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에두아르 부바(맨위), 미셸 투르니에(가운데)의 사진과 에세이를 통해 사물을 자신의 그물로 깁어 올린다. 오른쪽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작품 ‘Nu, Paris, 1974’을 읽어내는 ‘미셸 투르니에’를 김화영은 그의 문체 안으로 녹아들게 한다. 이 글쓰기의 통로 안에서 유난히 빛나는 것은 ‘낯섦’이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다차원적으로 살필 주제다. ‘좋다’, ‘나쁘다’를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러한 분리가 우리 문학,
예술의 상상력을 크게 위축시켰다는 사실이다. 화와 멀어진 시는 관념적인 것이 됐고, 또 시와 멀어진 화는 피상적인 것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 문학, 예술이 분리를 모르던 시절의 상상력이 지녔던 크기와 부피, 질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해 구체적인 것에 다가가지 못하는 관념성, 보편적인 것에 다가가지 못하는 피상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문학과 미술의 장벽을 넘어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과 번역서, 그리고 산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융, 바슐라르, 그리고 알베르 카뮈, 미셸 투르니에 등과 더불어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문학 상상력의 연구)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과 번역서, 그리고 산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융, 바슐라르, 그리고 알베르 카뮈, 미셸 투르니에 등과 더불어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문학 상상력의 연구)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구체적인 경험공간”(공간에 관한 노트)에 대한 탐색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경험공간을 탐색하는 이에게 이미 그어진 경계들, 곧 문학과 미술, 시각과 청각, 시각과 촉각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란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될 수 있는 가능성, 가령 물이 돌이 되고 불이 흙이 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르네 위그의 『예술과 영혼』역자 후기에서 밝혔듯 그에게 미술이란 “예술 일반을 관류하는 어떤 공통된 상상력의 형식화라는 지평 속에서 보다 거시적으로 파악되어 마땅한 대상”이다. 아마도 영화, 건축, 음악, 문학이 다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공통된 상상력의 형식화라는 지평에 선 사람에게 미술에 대한 발언이 문학에 대한 발언과 서로 얽히고 건축에 대한 독해가 어느 순간 문학에 대한 독해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령 우리는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문학동네, 1996)에 실린 한편의 글에서 하나의 색채가 운동으로 전환되고, 그 운동으로부터 ‘시적인’ 것이 돌출되는 아름다운 구절과 만날 수 있다.
『뒷모습』에서 김화영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과 교류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을 다음처럼 번역한다.
물론 젖가슴은 참하고 팔은 통통하고 흘러내리는 등의 선은 조화롭다. 그러나 이 초상에서 눈을 끄는 것은 단연, 목이다. 앙드레 지드는 전쟁 전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당시 유행에 따라 드러내놓은 사내아이들의 목을 보고 “외설스럽다”고 평한 바 있다. 왜냐하면 몸의 이 부분 - 둥글게 휜 허리와 더불어 몸의 가장 확고한 받침점 중의 하나 - 은 보통 머리털에 덮여 있는데 이처럼 드러내놓은 것은 몸에 대한 일종의 폭력행사니까. 게다가 사진의 모델이 여자라면 더욱 자극적인 폭력이다.

이렇게 되면 한가지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 이 별난 헤어스타일로 인하여 아무나 쓰다듬을 수 있게 노출된 이 목덜미보다 더 사랑스럽게 여성적인 것은 없으니 사내같은 인상은 여기서 자취를 감춘다.

“어렸을 적에 나는 처음으로 튜브에 든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연두색에 홀렸던 기억이 있다. 실제 물감을 풀어 색칠을 해보면 도무지 그 아름다움이 마음같이 실현되지는 않으면서 머릿속에서는 항상 가볍게 떠오르는 연두색이 내게는 행복감의 색채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시작, 출발의 색이 연두색이다. 아니 연두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색이 아니라 초록을 향해서, 푸르름을 향해서 가고 있는, 솟아오르고 있는화살표의 색채인지도 모른다.

이 솟아오름의 순간 속에서 모든 ‘구슬’들은 그 산문적인 무게를 버리면서 ‘하나’가 된다. 새삼스럽게, 인위적으로 꿰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연두색은 한줄기로 솟아오를 뿐이다. 이 솟아오름은 시적인 순간이다. 솟아오름은 순간의 통일이다.” (연두색에 대한 명상)
이렇게 연두색으로부터 시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경계 내부를 단속하는 내부적인 강령(가령 문학적인 것, 미술적인 것)에 얽매이는 일은 거북한 일이다. 그는 오히려 내부가 외부가 되고 외부가 내부가 되는 상호 얽힘의 순간을 즐거워한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과 에두아르 부바의 흑백사진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뒷모습』(현대문학, 2002)을 번역하면서 그는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이러한 상호 얽힘 내지는 상호대화의 순간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는 그가 예술의 성을 찾아, 예술가의 방, 집과 마을을 향해 떠난 여행의 체험을 늘어놓는 순간이다. 그에게 있어 ‘방’또는 ‘집’은 강렬한 구체성을 가지고 공간을 환기해내는 단어다. ‘방’이라는 말은 ‘인생’이라는 말보다도 그에게 더 많은 감동을 준다. 그는 “내가 타인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은 언제나 방,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이고 한 두 개의 문과 창이 나있는 그의 방에 대한 호기심과 혼동되곤 한다”(공간에 관한 노트)고 말하고 있다. 또 그에게 ‘여행’이란 “변화와 공간의 접촉, 즉 내게 구체적인 삶의 살과 그 변화를 만지고 있다는 실감”이다. 그에게 프랑수아 라블레의 生家 라 드니비에르를 경험하는 일은 라블레의 문학을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르누아르가 만년에 살았던 레 콜레트를 방문하는 일은 르누아르 만년의 작업에 ‘구체적으로’ 접촉하는 일이다.

다시 『바람을 담은 집』의 구절을 인용하자.
“카뉴의 ‘레 콜레트’로 상징되는 만년에 이르면 지중해적 고전주의로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북쪽 지방이 젊은이들의 고장, 운동과 투쟁에 골몰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머지않아 남쪽의 태양은 그들을 매혹하고 그들의 신경을 나른하게 만든다. 그들은 ‘영원하고 찬란한 빛’에 눈뜬다. 화가 자신도 남불을 이렇게 찬양했다. ‘이 황홀한 고장에서는 불행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것만 같다. 여기서는 솜처럼 편안한 분위기에 안겨서 산다.’”

그는 이어 르누아르 만년의 작품에서 솜털같이 포근하고 가는 붓자국이 바람에 날리듯 캔버스 전체에 퍼져가는 모양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의 집 앞 수백년 묵은 올리브나무에 기대어 빛나는 햇빛과 그가 노래했던 삶의 기쁨을 더불어 만난다.
‘다소간 낯섦’의 의미 혹은 가벼움

그러니까 김화영은 사람들이 폐쇄된 영토를 구축하고 그 영토 내부의 강령을 구축할 때 그 바깥으로 물러나 매순간 “내 몸이 허공 속에서 꼭 그 용적만큼만 차지했다가 다음 순간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비워놓은 내 몸의 용적만큼의 허공과 그 허공의 연속인 터널을 상상하는”(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글쓰기를 해왔다. ‘탈영토화’니 ‘탈경계’니 하는 화두들이 거의 강령처럼 쇄도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탁월한, 김화영 만의 성취다. 하지만 오랜 시간 폐쇄된 영토의 구축에 몰두해왔던 우리 문학과 예술에서 이러한 글쓰기는 별다른 것, 또는 난해한 것으로 치부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김화영의 글쓰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소간 낯설게 느껴진다. 이‘다소간 낯섦’이야말로 김화영 글의 매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김화영은 사람들이 폐쇄된 영토를 구축하고 그 영토 내부의 강령을 구축할 때 그 바깥으로 물러나 매순간 “내 몸이 허공 속에서 꼭 그 용적만큼만 차지했다가 다음 순간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비워놓은 내 몸의 용적만큼의 허공과 그 허공의 연속인 터널을 상상하는”(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글쓰기를 해왔다. ‘탈영토화’니 ‘탈경계’니 하는 화두들이 거의 강령처럼 쇄도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탁월한, 김화영 만의 성취다. 하지만 오랜 시간 폐쇄된 영토의 구축에 몰두해왔던 우리 문학과 예술에서 이러한 글쓰기는 별다른 것, 또는 난해한 것으로 치부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김화영의 글쓰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소간 낯설게 느껴진다. 이‘다소간 낯섦’이야말로 김화영 글의 매력인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보편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詩와 書, 그리고 畵의 상호얽힘은 충만한 것일까. 언젠가 그는 김원숙의 회화작품을 다룬 글에서 이 작가의 “획득된 순진함과 단순함만이 그냥 그리움처럼 다가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바람을 담는 집』에 실려 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은 ‘그리움’ 곁에 있는 단어가 아닌가!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원본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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