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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4>예술과 아동 포르노

김형진

만약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처럼의 사진전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급습하여 아동 포르노라는 이유로 사진들을 모두 압수하고 작가와 문화회관 관계자들을 모두 연행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예술가들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개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다.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 메이플소프가 1989년 중서부의 도시 신시내티 한복판의 미술관에서 아이들의 누드 사진 전시를 하던 도중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메이플소프뿐만 아니라 미국 출신의 유명한 사진작가 터니 거런이나 샐리 맨도 어린 자녀의 누드 사진을 찍어 문제를 일으켰다. 작가가 자기 자녀의 누드를 찍는 경우 경찰은 보통 예술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작가를 기소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성년자인 작가가 스스로의 누드를 찍어 작품이라고 주장하면서 배포하는 경우에도 이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만드는 아동 누드 작품들은 비록 예술의 이름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하나는 어린아이들이 하기 싫더라도 부모의 지시에 따르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동의는 진정한 동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평생 느끼게 될 심리적 상처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어릴 때 찍은 사진 작품이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미 배포가 끝난 후라서 너무 늦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 대법원은 1982년 성인도서 사건에서 미성년자의 성적 행위를 나타내는 작품에 대해서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또 1984년 제정된 미국 아동보호법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들에게 성적 표현행위를 일절 시키지 못하게 규정했다. 이 법은 미술 작품의 예술적 가치 여부에 관계없이 미성년자에 의한 일체의 성적 행위를 금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 미국 각지에서는 아동 포르노물에 대한 법률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아동 포르노물을 보거나 가지고만 있어도 당사자를 엄중 처벌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법들이 당사자의 목적에 관계없이 모두 처벌하는 데 비해 우리 법률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국 쪽 기준이 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엄격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는 ‘사춘기’라는 작품도 남겼다. 이 작품은 청소년기의 불안과 걱정, 공포를 잘 묘사한 명작으로 사춘기를 맞은 어린 소녀가 누드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뭉크가 ‘사춘기’를 그릴 때에는 분명히 미성년자인 모델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므로 지금의 아동 포르노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이런 명작은 세상에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고전을 보면 사또 댁 자제와 동거하다시피 한 춘향은 그때 나이가 불과 16세였고 로미오와 사귀었던 줄리엣은 겨우 만 13세였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16세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 이몽룡과 성춘향은 모두 미성년이다. 고전 작품에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이 지금 쓰인다면 작가가 아동 포르노를 묘사하거나 조장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을 것이다. 또 설사 원전에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더라도 미성년 배우들을 시켜 예술행위로 원전에 충실하도록 성적 표현을 재현하는 것은 모두 법률 위반이 될 것이다.
옛날보다 요새 아이들이 더 조숙하다는 데 도대체 기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 어디를 가나 법원도 사회도 아동 포르노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보수적인 도시 신시내티에서 곤욕을 치른 메이플소프는 몇 년 동안 재판을 하며 고생한 끝에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가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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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중앙선데이 2011.4.10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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