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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5>전쟁과 문화재

김형진

총 대신 작품 챙긴 미군들... 2차대전 때 미술품 관리 부대 운영
#사례1. 2008년 개봉한 할리우드 전쟁 영화 ‘세인트 안나의 기적’은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 미군 병사들은 계속 되는 전투 속에서도 로마시대 조각상의 머리 부분을 자루에 넣어 다니며 결국 이 조각품을 미국의 집으로 가져간다.#사례2. 한동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온라인 게임 중에 ‘메달 오브 아너’가 있다. 미국에서 제작된 이 게임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하는 전쟁 게임이다. 그중 2007년 출시된 게임은 이탈리아 전투를 다루었는데, 놀라운 것은 미군 병사들이나 폭격기들이 적을 공격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유적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을 파괴하거나 심지어 마구 폭격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 전쟁이 끝난 후 65년이 지나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에서조차 미군이 문화 보호 문제에 대해 이처럼 둔감하게 그려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땠을까?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35년 미국은 전쟁 중에도 전쟁 지역의 문화유산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 로리치 협약에 가입했고, 유적이나 미술품 보호에 대해 외교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갑자기 외국의 전쟁터에 투입된 미군 장교들은 유럽의 문화 유적에 대한 교육이나 지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현지의 유적이나 미술품 보호에 무심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 유적에 대한 미군의 무신경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는 몬테카시노 사건일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미군은 이탈리아 전선에서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이탈리아 전투는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수도 로마로 진군하려던 미군은 로마 남쪽의 산맥 꼭대기에 진을 친 독일군의 구스타프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자 초조해진 미군 사령부는 독일군이 산 위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치고 있다고 의심하고 이 수도원을 폭격해버리기로 했다. 그 수도원은 베네딕트 성인이 서기 529년에 세운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이탈리아의 중심 종교인 가톨릭교는 물론 인류에게 소중한 문화 유적이었다. 그리고 사실 독일군은 수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원 근처에는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미군 결정에 놀란 지역 주민들조차 미군을 설득하려 했지만 미군은 200여 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수도원 일대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동안 이탈리아의 미술품이나 유적에 일절 손대지 않던 나치 독일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에 활용했다. 미군을 과거 로마 제국을 약탈한 야만족으로 묘사한 포스터를 배포해 이탈리아 국민의 문화적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다.
물론 전쟁 중 유럽에 상륙한 미군도 다른 나라의 군대와 같이 점령 지역의 미술품을 관리할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기념물과 순수예술 보관부대(MFA&A)’라고 불리던 이 부대는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패튼 장군이 이끄는 미 제3군은 1945년 독일을 점령한 뒤 카이저 프리드리히 미술관과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수백 점의 명화들을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로 실어 날랐다.
전쟁이 끝나자 이 작품들의 소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고 다행히 미국 정부는 대부분의 작품을 서독 정부에 반환했다. 나치 독일과는 달리 미국 정부는 전쟁 중에 얻게 된 많은 미술품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듯 미군 병사들이 집으로 가져가 버린 명작들도 꽤 있었다. 그 대부분은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에 행방을 알 수 없으며 설사 행방을 알더라도 원래의 소유자가 작품을 돌려받기는 매우 어렵다. 심지어 행방이 알려진 작품이더라도 미국으로 반출된 유럽 미술품에 대한 반환은 쉽지 않다.
이탈리아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사라진 자코포 다 폰테(Jacopo da Ponte)의 ‘봄날의 씨뿌리기(Spring Sowing)’를 반환해 줄 것을 1966년부터 미국 스프링필드 도서미술협회에 요구했다. 그리고 결국 40여 년 만인 2004년에 돌려받았다.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현재 국제법의 흐름은 구입 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작품은 모두 불법적 약탈품으로 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다른 나라의 미술품을 가지고 있는 소장자는 언제 누구에게서 구입했는지를 명쾌하게 입증할 책임이 있으며 그런 입증이 부족할 때는 작품을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번에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를 계기로, 뚜렷한 설명 없이 일본으로 반출된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돌려받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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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4.17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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