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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8>북한 유물이 해외 전시된다면

김형진

1997년 9월 4일 예루살렘시의 번화한 거리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범인들은 더 많은 사상자를 내기 위해 화약뿐 아니라 못, 유리조각, 독극물까지 폭발물에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참혹한 후유증으로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배후는 명확했다. 사건이 일어나자 팔레스타인계 강경파 무장 조직인 하마스는 즉시 자기들이 꾸민 일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시 하마스에 대해 무자비한 군사적 보복을 가했지만 사건의 피해자들도 그저 이스라엘 정부만 믿고 있지는 않았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멀리 미국의 연방법원에 하마스와 이란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에 따르면 하마스와 더불어 이란 정부가 소송 대상이 된 이유는 이란 정부가 테러리스트 조직인 하마스에 물질적 지원을 계속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외국 정부는 국제법에 의해 그 주권적 행위에 관련하여 다른 나라의 법원에서 일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고들은 주장하기를 이러한 잔인한 테러 행위는 국가의 주권적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는 이 소송을 무시하고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재판 결과 뜻밖에도 이란 정부가 패소하여 2003년 9월 원고들은 우리 돈으로 무려 1조원이 넘는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 금액을 이란으로부터 어떻게 받아낼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원고들은 고심 끝에 미국 내에서 전시 중이거나 보관 중이던 이란의 유물과 미술품들을 압류하기 시작했다. 가령 유족들은 시카고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이 학교 동양학 연구소에서 보관 중인 페르세폴리스 유물들을 압류하고자 하였다. 무려 1만여 개에 달하는 이 페르시아 왕조시대의 유물들은 약 2500년 전 유물로, 고고학적 연구를 위해 시카고대가 이란 국립박물관의 허락을 어렵게 얻어내어 빌려온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 재판을 비롯해 미국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었지만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도 일절 법적 대응은 하지 않았다. 입장이 난처해진 시카고대가 이란 정부 대신 소송에 임했지만 그만 패소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국제 여론전을 전개, 페르세폴리스 유물들이 단지 이란 정부의 것이라기보다는 이란 국민 전체의 것이며 나아가 세계인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했다. 또 부랴부랴 미국의 저명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응에 나섰다. 자칫하면 이란은 그동안 국립박물관에 있던 나라의 유물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판이었다. 더욱이 일단 유물들이 원고들의 손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원고들은 재판 결과에 기뻐했지만 문제는 그 후 더욱 복잡해졌다. 그동안 해외에서 이란 정부가 관련된 다른 테러 사건들로 희생된 사람들도 모두 페르세폴리스 유물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적지 않은 수의 미국 미술가들은 비슷한 소송으로 인해 해외에 전시 중인 미국 미술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미국 정부에 대해 비슷한 소송을 외국에서 제기할 경우 미국의 미술품들도 비슷한 입장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판결이 문화재의 국제 교류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사건 때문에 앞으로 유물의 국제 대여 또는 전시 행위가 위축되면 선진국의 국민들을 포함하여 인류 모두에게 커다란 손실이 될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를 반영한 듯 2010년 3월 미국의 항소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란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고 많은 이란의 유물들은 아직도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재판에서 만약 이란 정부가 패소한다면 단지 이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란과 같이 테러 국가로 낙인찍혔던 북한에까지도 그 여파가 당장 미칠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납치와 테러를 자행해 왔다. 어느 날 북한이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려고 북한 유물을 해외에 빌려주거나 전시할 때는 피해자들에게 유물을 압류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령 북한이 고구려의 유물을 외국에서 전시하다가 테러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져서 그만 유물들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북한의 현 집권층뿐만 아니라 아마도 우리 민족 전체의 손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에 희생된 아랍의 시민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어느 선진국의 법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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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중앙선데이 2011.5.9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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