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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세계의 미술 컬렉터 <2> 런던 자블루도비츠 컬렉션과 아니타 자블루도비츠

이지윤

가랑비가 스멀스멀 내리는 전형적인 영국의 흐린 날, 런던 동북쪽에 있는 자블루도비츠(Zabludowicz) 컬렉션을 찾았다. 읽기도 쉽지 않은 이 이름은 컬렉션의 공동 디렉터인 아니타(Anita) 자블루도비츠의 러시아계 핀란드인 남편의 성이다. 반갑게 필자를 맞이한 아니타는 “4년 전부터 한국의 현대미술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시아계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아직은 깊은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작품을 많이 소장하지는 못했다”며 “앞으로 아시아 컬렉션을 공부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들여놓고 싶다”고 덧붙였다.
런던과 유럽의 현대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자블루도비츠 컬렉션은 영국 북부 뉴캐슬 출신의 아니타와 그녀의 남편인 포주 자블루도비츠(Poju Zabludowicz)에 의해 1994년 시작됐다. 현재 500여 예술가의 현대미술작품 5000여 점이라는 방대한 규모로 구성돼 있다. 미국의 영상작가 매튜 바니의 ‘크리마스터(Cremaster)’, 백남준의 ‘로봇 시리즈’, 영국 yBa를 대표하는 대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지난 10여 년간 미술계에서 스타로 대접받고 있는 영국과 미국, 서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주축을 이룬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 컬렉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2007년부터 구입 대상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현대미술 작가와 그들의 실험적 전시 프로젝트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영국 현대미술계에서 막 활동을 시작했거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해 온 사치(Saatchi) 컬렉션의 동선과 유사하다.
2. Gary Webb, Adam or Gary, 2003, Zabludowicz Collection, 39The Shape We are In London, 3월 10일 ~ 6월 12일
이를 위해 이들이 택한 전략은 ‘실험적 제작자(Producer) 성격의 큐레이터’ 영입이다. 2007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176’이라는 비영리 미술공간 형태로 전시와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들은 팔레 드 도쿄 출신의 엘리자베스 닐슨과 엘렌 마라 드 바취터를 담당 큐레이터로 영입했다.
사실 ‘현대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미술사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되거나 미술시장에서 객관적으로 정해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좋은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뚜렷한 작품관과 작품이 지닌 가치를 읽고 또 만들어 갈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눈 밝은 큐레이터나 컬렉션 어드바이저, 시장분석가의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블루도비츠 컬렉션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을 프라이빗하게 수집한다는 개념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런던과 뉴욕, 살비살로(핀란드) 세 군데에 전시공간을 갖춰 놓고 전문 큐레이터의 기획력 있는 정기 전시를 통해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장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아마도 가장 큰 공간인 런던 전시장은 캠든 지역에 있는 19세기 감리교 예배당(Methodist chapel)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했다. 뉴욕에는 타임스스퀘어 33층에 마련된 공간에 지금까지 150여 개의 크고 작은 공공전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펼쳐 왔다.
또 공동 디렉터이자 아니타의 남편인 포주의 고향 핀란드 살비살로(Sarvisalo) 전시장에서는 지난 5년간 수집한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작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살비살로 전시장은 맨 처음 작가 레지던시(작가가 일정 기간 입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로 출발했다. 작가가 지원하고 심사를 통해 선발 입주하는 일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달리 주최 측의 초청으로 진행된다. 초청 작가에게는 갤러리, 주거공간, 섬의 야외공간 등 다양한 공간에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그리고 작품을 소장하게 된 컬렉터는 이것을 연구하고 공개하며 보존한다.
“20년도 안 되는 역사는 짧지만 긴 시간이죠. 그동안 가장 즐겁고 의미 있었던 일은 동시대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눈 대화가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그것을 함께 제작해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블루도비츠 컬렉션이 기존의 유명한 현대미술 컬렉션과는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면 현대미술의 사회적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젊은 작가의 작품 전시를 통한 컬렉션에 주력하고 있는 것 외에도 관객과 작가와의 대화, 그동안 컬렉션과 아트마켓에서 비주류로 치부됐던 퍼포먼스 공연과 각종 페스티벌 등 일반 관객을 위한 무료 이벤트,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예술교육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지역민들과 관람객에게 무료로 진행된다. 이런 점에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예술 공공기관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컬렉션은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 월간지 ‘아트 리뷰(Art Review)’가 매년 선정하는 ‘예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 안에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언급되고 있다.
현재 자블루도비츠 컬렉션은 아시아 컬렉션을 적지 않게 소장하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페이 카오(Fei Cao), 웨 민준(Yue Minjun), 장 휘(Zhang Hui), 장 리우(Zhang Liu), 왕 칭송(Wang Qingsong) 등의 중국 작가들과 노부요시 아라키(Nobuyoshi Araki), 이토다 유키(Itoda Yuki), 후지타 고헤이(Fujita Kyohei), 모리 마리코(Mori Mariko),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 사와 히라키(Sawa Hiraki), 스기모토 히로시(Sugimoto Hiroshi)로 대표되는 일본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아니타는 “지난해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한국 영상작가 박준범의 비디오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앞으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더 가까이 접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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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씨는 런던에서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며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 중앙선데이 2011.5.15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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