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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주연화 갤러리 현대 기획차장

윤동희

열정, 전략적 마인드, 그리고 나를 아는 것
미술을 비롯한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활자 대신 아이폰으로 ‘접속’하는, 이미지에 능수능란한 젊은이들일수록 예술을 향한 사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들로부터, 아니 이들의 부모로부터 나온 물질로 드넓은 캠퍼스를 유지하는 대학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언제부턴가 미술경영, 큐레이터학, 예술경영 등의 이름을 건 학과가 앞 다투어 생겨났다. 예술을 향한 짝사랑에 노심초사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목표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이른바 ‘문화의 세기’로 불리는 21세기적인 현상이라는 이야기가 함께 생겨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각이미지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언어와 인문학적인 담론을 연구하는 학문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고등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닌 대학이 앞장서고, 그러한 학문을 외면하는 교육 소비자들이 여기에 동조했다. 나 또한 그러한 이름을 내건, 즉 실용적인 학과의 학생들을 상대로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미술을 변주하는 실용적인 학문의 현실도 마냥 밝지만은 않다. 미술의 아우라를 탐색하고, 동시에 미술현장에서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여겼던 장밋빛 미래는 그야말로 백일홍에 불과했다. 미술을 한다는 이유로 막막하게만 보였던 예술가들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미술에 기생해서 생존한다는 미술계 내부의 시선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서자(庶子)’론이었다. 그리고 지금 미술계는 이러한 학문을 공부하는 수많은 ‘88만 원 세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문화의 시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젊은 미술인들5년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해외 미술시장을 책임지다가 올해 3월 갤러리 현대로 자리를 옮긴 주연화 기획차장은 그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척박한 현실을 딛고 자신만의 포지션을 지켜왔기에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였다. 질문의 시작부터 암울한 현실에 처한 젊은 미술인들을 위한 해답을 강구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해답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이었고, 냉철했다. 그렇기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은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마음만 앞서 있다는 거예요. 그때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그럼 미술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라고요.”
이야기는 이렇다. 미술계에서 일하려면 당연히 그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역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며 언어와 이미지에 담겨 있는 의미를 탐색했다. 현장에서 바로 경험을 쌓으면 금상첨화다. 그는 미술시장이 욱일승천할 때 국내의 대표적인 상업화랑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라리오 갤러리가 프라이빗 컬렉션에서 뉴욕에 전시 공간을 갖출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성균관대 국제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더했다. 이곳에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미술현장에 접목시키는 법을 배우며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모두 그가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며 지향점과 지양점을 동시에 고민한 결과였다.
지향점과 지양점을 동시에 고민하며그러던 어느 날, 주연화 차장은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5년간 내 집처럼 여기며 밤낮없이 일했던 아라리오 갤러리를 나와 자신만의 비영리공간을 꾸리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 그가 늘 후배들에게 들려주었던 질문 때문이었다. 바로 자신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였다.
“지친 거죠. 갤러리에서의 5년은 엄청난 추진력과 지구력을 요구하거든요. 당연히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지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작가들을 해외 미술시장에 포지셔닝 하며 보람도 있었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내가 진짜 원한 건 무엇이었지, 나,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비영리 독립공간을 열었다. MBA와 비영리 독립공간을 병행하며 또 다시 열심히 일했다. 미술시장에서 아직 눈여겨보지 않은 유학파 작가들과 젊은 작가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계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커미션은 어떻게 되는지 등 작가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며, 그들이 좋은 갤러리로 들어갈 때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작가 프로모션과 미술시장을 잘 아는 그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아라리오에서 번 돈을 모두 털어 넣었지만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자신이 찾아 헤맸던 ‘내가 원하는 나’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난 갤러리에서 작가 매니지먼트를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비영리기관에서 일할 것이냐, 영리기관에서 일할 것이냐,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우선 이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죠. 명확한 기준 없이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양쪽을 오가는 사람도 많고요.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에요.”
그렇게 그는 올해 3월 갤러리 현대로 새 일터를 정했다. 우선 갤러리 현대와 함께하는 작가들의 라인업이 좋았다. 최근 1년간 갤러리 현대 윈도우 갤러리를 빛낸 젊은 작가 28인을 한데 모은 《윈도우 갤러리 연례보고전 - Vol. 2》처럼 대형 화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젊은 작가들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도형태 대표의 비전도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갤러리 현대는 미술시장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젊은 작가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미술대학 졸업예정자 15인 그룹전 《클래스》를 개최하고, 신진작가 전용 전시 공간 ‘16번지’를 오픈했다. 과거 갤러리 사간에서 특유의 스킨십으로 젊은 작가들과 좋은 전시를 일구었던 양찬제 실장의 존재도 든든하다. 여기에 국제 미술시장과 미술 비즈니스에 정통한 주연화 차장의 합류는 갤러리 현대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많은 학생들이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예술기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본인이 미술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리고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단순히 전시를 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를 지속적으로 프로모션하는 갤러리에서 일하는 건 어떨까요. 작가와 고객 모두에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갤러리에서의 경험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트 3.0’ 시대, 작가와 함께하는 아트 매니지먼트인터뷰가 있던 날, 주연화 차장이 기획한 《POWERHOUSE》전이 오픈했다. 8월 24일부터 9월 19일까지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故 백남준, 故 박현기, 전준호, 문경원, 최우람, 오용석, 박준범 등 국내 미디어 아트의 주요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는 8명의 작가들을 한데 모은 전시다. 최근 평면회화 일색인 미술계에서 흔치 않은 미디어 아트 전시이기도 하다. 국제 미술시장에서 사진에 이어 새로운 컬렉션 대상으로 부상한 미디어 아트가 국내 미술시장에서 어느 정도 선전할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천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9. 1~30),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9. 7~11. 17) 등과 함께 한동안 주춤했던 미디어 아트의 현재진행형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갤러리 현대로선 9월 3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국내외 작가들과 미술 관계자들을 다분히 의식한 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8월 말과 9월 초 사이, 뉴뮤지엄 관계자들이 이 전시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연화 차장은 갤러리가 한 작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기업 경영으로 따지면 R&D(Research & Development)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자신의 저서 『마켓 3.0』에서 오늘날 지구촌은 ‘3.0 시장’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그는 개인과 기업, 정부가 소비자들의 ‘영혼’을 감싸 안아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의 혜안은 미술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하다. 만약 필립 코틀러의 생각을 빌린다면, 21세기는 ‘아트 3.0’ 시대가 될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개인과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에 예술이 갖는 가치는 무한할 것이다. 비록 미술을 업으로 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연화 차장의 단호한 한마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갤러리에서 일을 한다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일입니다. 이곳은 열정 넘치는 사람을 여전히 필요로 하니까요. 국내 미술시장이 성장했다지만 아직 멀었어요. 선진국에 비해 시장 사이즈도 작고, 시스템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곳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겁니다.”
열정과 애정 그리고 꼭 필요한 마지막 한가지주연화 차장은 갤러리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미술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한다. 작가를 매니지먼트한다는 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과 같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아직까지 비영리기관보다 갤러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운 우리나라에서 열정과 애정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를 갖춘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열정을 가지세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끝없이 고민하세요. 그리고 도전하세요. 여기에 전략적인 마인드를 더한다면 금상첨화겠죠?”
필자소개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미술] 기자, [아트인컬처] 편집위원, 안그라픽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서울대 대학원, 세종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광주비엔날레 계간지 [눈(noon)]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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