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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최소연 테이크아웃드로잉 디렉터

백기영

어둠이 내리고 젊은이들의 저녁 나들이가 시작되는 시간, 정적이 찾아드는 마로니에 공원 아르코미술관 1층 갤러리 공간이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 공간으로 바뀌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부설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아르코미술관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을 프로젝트 카페로 입점 허가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어느 미술관이든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예술적 감각으로 꾸민 카페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필자가 최소연 디렉터를 만나게 된 이유는 이 뮤지엄 카페가 맺고 있는 동시대 예술의 사회적 문맥과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이를 통해 최근 예술의 공공성과 미술관의 확장된 기능이라는 화두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접자!
필자가 최소연 테이크아웃드로잉 디렉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2003년 쌈지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되면서 진행한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미술관 제도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물신화 현상을 비판하고 새로운 예술제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미술관’, ‘벽 없는 미술관’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당시 ‘접는 미술관’이 입주하고 있었던 쌈지스튜디오와 쌈지창고, 리움미술관 등의 공간 외벽에 접지선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드러났다. 말로의 말대로 “예술은 근대의 종교이며, 미술관은 그 사원”이라 한다면, 분명 이 사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의 신성화 전략에 대한 이교도적인 질문은 당연한 것이리라.
2002년 수행했던 인터뷰 작업에서 그녀는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을 찾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예술가들은 뉴욕에 몰려드는 것일까?”. 예술가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은 미술관의 신화적 권력과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권 예술가들에게 서구의 미술관은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높은 장벽과 같았다.
마치 70년대 미국의 제도비판론자들이 행동주의 방식을 통해 동시대예술의 허위의식과 정치적 모순 관계를 밝히기 위해 미술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던 것처럼, ‘접는 미술관’은 미술관을 접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미술관을 향한 공격은 매우 소극적이고 뭔가 미술관 밖으로 테두리 쳐진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의미한 해프닝처럼 보였다. 미술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도 계속되는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이 부모 같은 기성세대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 시대를 자신이 책임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그들은 벽 없는 미술관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확대해 나간다.
삶이 있는 곳, 동네로 들어가다! ‘명륜동에서 찾다’
‘접는 미술관’이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새로운 상상의 미술관을 찾아 나선 것은 2005년 ‘명륜동에서 찾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총 17명의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동네에 숨겨진 삶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찾아내 보여주었던 이 프로젝트는 명륜동 지역주민들뿐 아니라,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 프로젝트는 최소연 디렉터가 강의했던 학교 수업에서 시작된 것인데,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스스로 ‘내가 왜 미술을 하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했다. 놀라웠던 것은 수업에 참여하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왜 미술을 하고 있는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소연 디렉터는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의 생애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예술과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삶의 공간이나 동네를 답사하면서 자기 생애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공간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다.
명륜동 프로젝트의 기초자료는 모두 함께했던 학생들의 동네 조사를 통해 구축되었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참여한 예술가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전개 되었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던졌던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예술은 무엇인가를 다시 짚어보게 해준다. 마을버스와 계단, 옥상 위, 버스정류장, 맨홀 뚜껑, 낡은 담벼락 등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했던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익숙한 일상공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찾게 해주었다. 당시 프로젝트 안내 책자에 실린 문구가 있어 옮겨본다.
무엇보다 길을 잃으라. / 모든 골목을 자신의 것으로 하라! / 그리고는 골목을 질주!
해가 지고 지치면 마을버스를 탈 수 있다. / 복덕방 집 앞에 하차 / 장기를 두거나 새로운 집을 구상해 매물로 내 놓을 수 있다. / 건너편 사진관에선 가장 마음에 드는 자세를 발견하고 만족해한다.
아무런 찻집에 들어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 거울가게 배영감과 동네여인들에 대한 숨겨진 사실들을 알게 되고 놀라워한다. -중략-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시작
하지만, 최소연 디렉터는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프로젝트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일회성 프로젝트의 한계 때문이다. 가급적 지역과 연고가 있는 작가들을 위주로 프로젝트를 꾸렸다 하더라도 한 번의 프로젝트로는 동네 주민들과의 긴밀한 만남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를 매개로 지속적인 연구와 만남을 만들어갈 플랫폼으로서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때마침 한 사업가의 후원으로 삼성동의 한 지하공간에 새로운 동네연구의 근거지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 때 ‘테이크아웃드로잉 Takeout Drawing’이라는 이름의 첫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가볍게 들고 나와서 즐길 수 있는 커피처럼,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문화공간을 상상하며 만든 이름이다.
명륜동 프로젝트가 동네 공간에 개입하는 형태의 프로젝트였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오픈과 함께 지역주민이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카페를 매개로 편안하게 드나드는 공간으로서 동네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성북동점이 오픈 할 당시, 필자는 공공미술 기획자들 중의 하나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었다.
90년대 후반, 한국미술계의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는 많은 기획자들이 대안공간을 오픈하고 전시공간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도했다면, 2000년대 중반은 예술의 공공성을 의제로 한 다양한 공공예술프로젝트들이 중앙정부를 비롯해서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으로까지 확대된 시기다. 정부 중심의 공공미술 지원사업이 가지고 있는 계몽적 한계 때문에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재원의 다양성이나 자율성에 대한 필요도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 공간이자 일상적인 소비의 공간으로서 대안적인 성격을 나타냈다. 전시행사와 공연행사가 함께 이루어지고 새로 소개되는 음식의 메뉴와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설명이 함께 등장한다. 공간에 배치된 테이블이나 인테리어의 중요한 소품들은 작가들의 손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공간 구성에 참여한 안규철, 박우혁 등 많은 작가들은 명륜동 프로젝트에 함께했던 이들이었다.
커피를 매개로 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오픈하면서 최소연 디렉터는 카페의 역사와 카페에서 판매하는 모든 음식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동네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연구하던 방식으로 카페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해 나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카페는 동네처럼, 다양한 삶의 요소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카페에서는 커피를 비롯해서 다양한 요리도 제공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음식의 향유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테마로 대두되었다. 최근 우리 식단에 오르는 음식물의 식품첨가물과 웰빙에 관한 문제, 똑똑한 소비, 착한 소비를 위한 공정무역, 커피, 차, 과일 등에서 원산지를 고려한 카페운영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렇듯 카페에는 많은 요소가 있었다. 커피와 음악이 있고 아기자기한 내부 인테리어를 통해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만남을 제공한다. 이런 카페의 장점을 활용해서 전시도 하고 대중적인 언어로 소개해야 했다. 난해한 예술을 커피, 차를 매개로 지속해서 보여주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골목에 작품을 배치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이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아르코미술관의 1층 갤러리 공간에 입점하면서부터이다. 미술관 카페가 없었던 아르코미술관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들어오면서 이 공간은 미술관을 찾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전시 관람을 위해 잠시 들르던 공간이 머물러 이야기도 하고 책도 보며 음악을 듣는 공간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술관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카페공간으로 진화해 나갔다.
최소연 디렉터는 처음에는 프로젝트 형태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경영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경영진 3인과 11명의 스태프가 함께 운영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빠듯한 운영에 적자를 면하고 있는 상태지만, 적은 소득이나마 예술가들에게 작업지원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기업체로서 운영될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생업의 터전이기도 한 것이다. 최소연 디렉터는 이제 예술적 고용을 이어나가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의 모델을 상상하고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문화예술지원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자가발전''하는 예술공간
최소연 디렉터는 꿈이 있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일반 커피전문점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과는 다른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실험을 지속하는 것이다. 현재 공공미술은 정부, 지자체의 욕망을 프로그램화 하려는 계획과 만나, 도시 환경미화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일종의 공공근로로 전락하고 있다. 단순히 공공공간을 장식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삶의 문맥을 읽고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매일같이 접촉하고 있는 일상은 자본주의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소비하고 욕망하며 충돌하는 것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조언이 있다면,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미술관을 새롭게 구성하는 상상력이다. 삶처럼 변화무쌍한 새로운 예술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미술관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뮤지엄 카페와 갤러리 공간이 자리를 바꿀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필자소개
백기영은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영상미디어 작가로 정원&이주 프로젝트(2002), 생명의 땅 프로젝트(2004), 파프리카 프로젝트(2008) 등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또한, 2004년 2기 창동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거쳐 광주비엔날레(2004, 2008),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2004),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APAP(2005)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걸쳐,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고, 현재 올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경기창작센터 TF 팀장을 맡고 있다.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1_issue/01_01_veiw.asp?idx=271&c_idx=&page=&searchString=최소연&newsYear=&newsMonth=&newsCategory1=&newsCategor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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