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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심규환 국립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매니저

윤동희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홀름 프리베(Holm Friebe)와 웹 저널리스트 겸 프리랜서 작가인 사샤 로보(Sascha Lobo)는 자신들의 저서 『디지털 보헤미안』에서 “문화산업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업가들은 경제적인 몰락을 겪은 대도시들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폐하게 버려진 산업 지역에 클럽, 밴드 연습실, 갤러리, 작업실이 들어오고, 뒤를 이어 광고와 디자인 에이전시, 건축사무소, 카페, 서점, 음반가게, 호텔 등이 공간을 점유하면서 전혀 다른 창조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낙후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은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정작 이곳에 오랫동안 정착할 수 없다. 투자 가치라는 명목 아래 임대료가 껑충 뛰면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받아줄 ‘가난하지만 매력적인’ 공간을 찾아 또 다시 유랑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수축해가는 도시’에 방치된 쓸모없는 공간을 찾아 ‘임시 거주’하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율성과 커뮤니티를 주 무기로 삼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예술가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 레지던스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990년대 후반 폐교를 활용한 창작 스튜디오로 출발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도심보다는 부심, 혹은 그보다 먼 곳을 기반으로 생겨났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레지던스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산업지대를 무대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로선 불편한 일이겠지만, 낡은 도시 공간이 현대미술을 통해 ‘재생’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기억이었다.
이 과정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 매니지먼트라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영역이 큐레이팅의 또 다른 지점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심규환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공간에서 프로그램으로“작가들이 왜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왜 작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마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유, 결과 등 창작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습니다.”
심규환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매니저가 누릴 수 있는 보람으로 단연 작가와의 밀도 높은 소통을 든다. 2003년 호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매니저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기에 있었다. 도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그리하여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단점을 동시에 지닌 대다수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초기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공간만 달랑 주어진 레지던스가 많았죠. 작업실에 환풍기도 없던 공간도 있었으니까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작 작가들을 위한 배려가 없었던 레지던스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 창작 프로그램이라는 신선한 공기였습니다.”
심규환은 10여 년에 이르는 국내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역사를 ‘공간에서 프로그램으로의 이동’이라는 화두로 정리한다. 1997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공립 미술 스튜디오인 광주 중외공원 내의 팔각정 스튜디오를 필두로 쌈지, 영은, 금호미술관 등 기업형 사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스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뒤이어 국공립 미술기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스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국립 고양, 창동 미술창작 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스튜디오, 청주시립도서관의 청주스튜디오, 서울시 관리공단의 청계창작스튜디오, 경기도미술관의 경기창작센터, 서울문화재단의 금천, 문래, 신당, 서교, 연희 스튜디오, 인천문화재단의 아트 플랫폼 등 전국적으로 15개의 국공립 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각 레지던스마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이어졌죠. 그것을 보약 삼아 지금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창작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어요. 단순히 작업실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제 교류 프로그램, 오픈 스튜디오, 학술 세미나 등은 물론 작가와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지역 주민들을 연결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 거죠. 전시와 교육, 학술, 창작 지원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작은 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교성이 학식보다 더 중요하다”심규환은 기존의 큐레이터 역할에서 벗어나 레지던스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이들에게 예술적인 안목과 더불어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입니다. 레지던스 프로그래머 중 작가 출신이 많은 건 이 때문입니다. 작가의 고충과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창작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없거든요. 레지던스 프로그래머의 필수 덕목은 사교성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기 다른 배경 아래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교성이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 등 예술을 전문적으로 이해하는 학식보다 중요합니다.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능력도 빼놓을 수 없겠죠.”
심규환은 10년여의 시간 동안 국내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어린 티를 벗었지만 여전히 몇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현대미술과 사회를 관찰하는 시선을 지닐 수 있도록 세미나 등 다양한 학술 활동과 아카이브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들의 수많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인력의 공급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과 과제에도 불구하고 심규환은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며 자신의 직업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작가에게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업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입니다. 레지던스에 참여한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는 물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태프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요. 다른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작가도 종종 보게 됩니다. 고양스튜디오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볼 수 있듯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많은 미술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에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일종의 2인 3각 게임과 같습니다. 작가 혼자 고독하게 달리는 과거의 미술이 아닌, 작가와 작가, 작가와 큐레이터, 작가와 프로그램 매니저가 함께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일종의 2인 3각”심규환의 말처럼 통섭, 즉 다른 가치와의 열린 공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게 보편화된 오늘날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장소성, 지역성 등을 화두 삼아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작가라면 그 어떤 제도보다 실험적인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이다. 정헌이 교수의 말대로 “이 레지던스에서 저 레지던스로” 자신들의 처소를 옮겨가며 현대미술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규환은 수년 후면 작가들이 자신에게 맞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했다.
“지금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작가들을 선택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좋은 작가들을 붙잡으려면 각각의 레지던스가 서로 다른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겁니다. 작가들의 해외 프로모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레지던스에 작가들의 관심이 집중될 테니, 국내를 벗어나 해외 거점형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많아질 거예요. 거꾸로 지역 주민과 관람객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 거점형 커뮤니티 레지던스 역시 나름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겁니다.”
창작지원 사업을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것.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한국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 2000년 이후 미술제도의 주요한 화두로 기능하고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심규환의 지적처럼 지금 중간평가라는 과도기를 넘어가고 있다.


필자소개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미술] 기자, [아트인컬처] 편집위원, 안그라픽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광주비엔날레 계간지 [눈(noon)] 편집위원이며 여러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ceohee02@nate.com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3_data/03_01_veiw.asp?idx=641&page=1&c_idx=37&searchString=심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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