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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정용도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

윤동희

쿤스트독은 서울 사대문 안쪽, 그중에서도 ‘서촌(경복궁 서쪽 지역)’이라 불리는 동네에 숨어 있다. 통의동과 창성동, 효자동, 옥인동 등 서울의 가장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어떤 곳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시간을 되돌린 듯 한 기시감마저 안겨준다. ‘장소성’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걸까. 본래 이 지역은 예로부터 화가, 의관, 음악가 등 전문직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쿤스트독을 비롯해 브레인 팩토리, 갤러리 팩토리, 옆집 갤러리, 팔레 드 서울, 워크룸, 가가린, MK2, 고희 등 갤러리와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헌책방, 카페 등 문화적인 에너지를 은은하게 풍기는 장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통의동과 딱 어울리는
그중에서도 쿤스트독은 2006년 설립되어 통의동 예술 골목의 한 축을 점유하고 있는 곳이다. 쿤스트독은 독일어로 예술을 뜻하는 ‘쿤스트(kunst)’에 ‘독(documentary, doctrin, dock, dog, poison, pot 등이 연상되는 단어)’을 붙인 합성어이다. 김준섭 대표와 열 명의 운영위원이 전시 공간 ‘쿤스트독 미술현장’과 연구공동체 ‘쿤스트독 미술연구소’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모두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자원봉사 개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70여 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2006년 9월 재건축 결정으로 폐허가 된 여관에 13명의 작가가 8개월간 숙식하며 일상에 깃든 역사성을 끄집어낸 ‘통의동 프로젝트’처럼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대미술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도 공공미술 영역에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운영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쿤스트독이 최근 그 발걸음에 조금씩 속도를 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올해 1월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으로 부임한 미술평론가 정용도가 있다. 정 소장은 2007년 운영위원으로 쿤스트독과 인연을 맺었다. 미술 현장을 글과 담론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천성을 숨기지 못한 걸까. 올해부터 미술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쿤스트독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쿤스트독은 전시와 미술연구소가 한데 어울려 소통을 꿈꾸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정 소장이 꾸려가고 있는 미술연구소는 연구원들이 매년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공동 연구’를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구원들이 주제별 팀원들과 공동연구자의 이름으로 하나의 논문을 발표하고, 개개인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견을 조율하고 하나의 논문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연구자의 개별 리서칭과 공동 스터디, 그리고 토론을 통해서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를 공동 연구의 형태로 다듬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시스템 속에서 연구소는 「비미술관형 전시미술공간 연구」(2008년)와 「이미지 연구」(2009년)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기업형 미술관 큐레이터에서 비영리기관 연구소장까지
삼성미술관 큐레이터에서 비영리기관 연구소장까지. 미술평론가 정용도의 지난 10여 년은 이렇게 정리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주었지만, 큐레이터의 자율적인 기획보다는 오너의 주문에 충실해야 하는 기업형 미술관의 ‘월급쟁이’ 큐레이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른바 ‘재야’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덕분에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미술계의 변화를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정용도의 눈에 비친 한국미술계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글로벌화’였다.
“지난 10년은 한국미술의 글로벌화가 서서히 자리 잡은 시간이었습니다. 서구 미술계에 ‘노출’된 시간, 그들로부터 경쟁 대상으로 여겨진 시간이었어요.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작품 제작과 표현양식, 개념,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법을 터득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해외 미술담론을 받아들이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 그다운 지적이다. 미술시장이 미술계의 주요한 제도로 기능하게 된 지금, 소수의 작품으로 작가의 가치를 재단하는 옥션보다 작가의 평균 가격을 유추할 수 있는 갤러리가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분명한 건 그가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의 자리를 수락했다는 건 현재 이루어지는 미술계의 상황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한다.
“현장에서 언어로 미술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많은 이야기가 떠돌지만, 정작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미술계의 현실이 답답했지요. 이래선 안 된다,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미술비평, 큐레이터십의 문제를 동어반복으로 논하기보다 구체적인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거죠. 미술시장 전성시대, 한국형 팝아트, 비평의 부재, 큐레이터십의 혼돈… 이러한 화두를 가지고 단순히 공론화하는 데서 그쳤던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해야 합니다.”
옳은 말이다. 마치 도덕 교과서를 보는 듯 미술비평의 위기를 부르짖고, 미술시장 전성시대를 에둘러 비판하는 기존의 움직임은 소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던 게 사실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문제를 목청 높여 주장하는 이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도 결국 제풀에 꺾이고 마는 고질병을 치유할 길은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것밖에 없다는 게 정 소장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쿤스트독이었다. 이곳에서 뜻을 같이하는 미술인들과 함께 일상성과 역사성을 반추하고, 공동연구를 통해 미술계의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9월 15일 개관을 앞둔 쿤스트독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KDL(KunstDoc Residence in Leipzig)은 쿤스트독은 물론 정 소장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라이프치히 레지던스…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기관 교류 통한 작가 인큐베이팅
“쿤스트독이 창성동에 자리 잡아 비영리 미술기관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쿤스트독은 갤러리와 미술연구소,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기반 삼아 한국미술의 새로운 미학적 화두를 만들어냈다고 봐요. 하지만 국내에 국한된 운영과 작가 발굴만으로는 대안공간 등 다른 기관들과 별반 다를 게 없겠죠. 방법은 하나, 글로벌화뿐이었어요. 최근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독일 베를린 인근 라이프치히에 또 하나의 쿤스트독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쿤스트독이 라이프치히에 세우는 KDL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도록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 소장 역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뽑힌 작가(15명)와 이론 전공자들(5명)이 3개월간 자신에게 주어진 스튜디오에서 거주하며 전시와 심포지엄,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미술계와의 소통을 시도”하게 될 거라고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비영리기관으로서 유럽 예술기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강화하는 데에도 KDL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와 달리 그들은 비영리기관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거든요.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울 생각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을 겁니다.”
물론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이 신선한 접근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레지던스프로그램이 대안공간과 함께 미술제도의 권력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쿤스트독의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이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정 소장의 말처럼 국내 비영리 미술기관이 우리보다 앞선 해외의 다양한 예술기관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작가뿐만이 아니라 이론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작가를 위한 환경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어요. 하지만 국내 미술계에서 이론을 둘러싼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어요. 어디를 돌아보아도 이론가를 양성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요. 대학에서 이론 교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KDL은 작가와 이론가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룸으로써 작업에 ‘개념’을 불어 넣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론가들의 재충전을 위한 장소로 기능할 것입니다.”
정 소장은 이론가가 참여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흔치 않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작가들 역시 다양한 국적과 작업 방식을 가진 작가들과 교류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인식의 지평을 만들어 내는 이론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재점검하는 시간으로 삼는다면 KDL에서의 시간이 한층 의미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이프치히를 기점으로 인근 지역의 예술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현지의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들과의 네트워킹을 활발히 만들어 나간다면 한국 작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비영리기관의 생명은 결국 사람”
정 소장에게 2010년 하반기는 무척이나 분주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2년간 라이프치히에 머물며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과 라이프치히의 장소성을 초월해 미술연구소가 지속가능한 연구 공간이 되기 위해 계간지를 통해 단계적 연구 과정들을 집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1년에 한 권의 연구논문집을 출간하는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연구소 자립을 위해 한국아트딜러협회 연구 용역 건도 마무리 지어야 하고, 라이프치히의 KDL과 연계해 ‘신진 비평가, 전시기획자 발굴’ 사업 프로그램도 구상해야 한다. 미디어 아트를 향한 본인의 관심을 미디어 아트 연구소라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한층 숙성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쿤스트독을 위해,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을 위해, 그리고 한국미술계를 위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구상하는 게 즐거워요. 하지만 100가지 프로그램도 한 사람의 창조적인 마인드를 감당할 수 없더군요. 쿤스트독이 저에게 가르쳐준 게 뭔지 아세요? 비영리기관 운영의 핵심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넉넉한 재정도 아닌 결국 ‘사람’에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영리기관 쿤스트독의 미래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전시는 물론 미술연구소,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미디어 아트 연구소, 출판, 국제 네트워킹 등 다양한 미학적 활동을 아우를 수 있는 정용도, 그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미술] 기자, [아트 인 컬처] 편집위원, 안그라픽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세종대 대학원, 동덕여대, 성신여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이자 광주비엔날레 계간지 [눈(noon)] 편집위원이다.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3_data/03_01_veiw.asp?idx=533&page=1&c_idx=37&searchString=정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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