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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이은주 독립큐레이터

윤동희

독립큐레이터(independent curator)에 관한 어느 미술저널을 보며 다시 피어난 궁금증의 씨앗. 큐레이터란 대체 무엇인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수집, 관리하고 조사, 연구하여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부터 ‘문화 매개자, 분석가, 협력자를 뛰어넘은 문화 창조자’라는 희망 섞인 바람 사이로 ‘갖가지 일을 감당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던 어느 큐레이터의 얼굴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독립큐레이터라는 용어를 바라보는 심정도 그러하다. 독립, 인디, 소규모라는 단어가 제법 근사해 보이려면 조직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야 하는 법. [월간 미술](2010년 8월 특집)에 ‘누가 독립큐레이터인가?’라는 글을 남긴 김노암(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의 말처럼 “자본과 학연, 지연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낸 독립큐레이터와 자기 한 몸 둘 곳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독립을 선언한 큐레이터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걸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간 미술]이 이 특집기사를 통해 기관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를 무려 21명(지상 전시를 꾸민 큐레이터 6명, ‘독립큐레이터로 사는 법’을 설파한 큐레이터 15명)이나 소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우리는 분명 ‘독립큐레이터 전성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미술사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전시”독립큐레이터 이은주는 “미술관, 상업화랑, 비영리공간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기획을 담당하는 이들”을 독립큐레이터로 정의한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적인 대답. 하지만 곧이어 “불규칙한 수입을 융통성 있게 견뎌야 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협업과 자신만의 방식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끄집어낸다. 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아니 필수적인 재정을 만들어야 하고, 전시를 꾸릴 때마다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스태프도 바뀐다. 동시대의 미술 지형도를 그리고, 역사적 관점을 갖기 위해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밑줄을 긋게 한다.
“언제부턴가 전시 주제와 내용이 맞지 않는 전시가 많아졌어요. 당대를 고민하고, 제대로 보여주려는 노력보다 전시를 하나의 경력 관리로 여기는 (독립)큐레이터가 많아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술사적 이슈를 제기하고 새로운 문맥을 제시하여 전시문화, 나아가 시각문화를 총체적으로 이끌어가는 큐레이터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는 이은주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래서 물었다. 이은주에게 전시란 무엇이냐고. “작가의 작품이 전시 공간에서 살아 있게 하는 것, 그런 전시가 미술계에서, 그리고 미술사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그의 답변은 담담하면서도 명쾌했다.
이은주는 큐레이터, 그중에서도 자율적인 활동을 펼치는 독립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학구적인 노력, 현장성,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술사 박사 학위를 위해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금산갤러리(1997~2000), 이응노미술관(2000~2001)을 거쳐 브레인 팩토리와 인사미술공간 등에서 작가 인큐베이팅에 전념해온 그의 말이기에 진정성이 묻어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율성. 이은주는 독립큐레이터의 가치란 결국 자율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특정 공간에 속해 있음으로써 그곳의 운영방침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이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미술계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큐레이터의 활동을 통해 미술계에 창의적인 여백이 확장되어가길 기대한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미디어가 세상의 중심을 이루고, 스펙터클이 미학의 핵심 강령으로 여겨지는 이때야말로 큐레이터를 통한 창의적인 여백의 빈 공간이 생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공간에 소속된 큐레이터가 단순히 전시를 고민할 때, 미술계 안과 밖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독립큐레이터는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야를 넓혀야 자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독립큐레이터가 하나의 주요한 ‘제도’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전시란 작가의 언어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작가의 창조성과 미술 현장과 사회를 잇는 역할. 독립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이은주가 스스로에게 되묻는 화두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마저 미술시장을 기준으로 삼는 작금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미술계에 처음 발을 내딛던 90년대와 사뭇 다른 ‘지금, 여기’의 미술을 파고드는 재미를 놓칠 수 없을 것 같다고 웃어 보인다.
“기관에 소속된 큐레이터건, 독립큐레이터건 결국 ‘당대’를 향한 고민이 큐레이팅의 핵심일 겁니다. 당대, 즉 동시대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현란한 어법은 있되 삶은 빠져 있는 전시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벤트에 불과한 소모적인 전시가 많아졌어요. 독립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도 하나의 주제 아래 인지도 높은 작가들을 줄 세우는 전시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자신의 지식을 작가에게 맹목적으로 적용하거나, 작가의 결과물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큐레이터를 보는 일도 왕왕 있습니다. 연구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을 한데 모은 전시보다 시스템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전시가 독립큐레이터의 손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 들어 있는, 작가의 메시지가 보는 이에게 쉽게 전달되는 전시. 미술계와 세상, 그리고 동시대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는 전시. 독립큐레이터 이은주에게 전시란 작가의 작업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이은주는 요즘 ‘AKIVE''라는 이름의 작가 리서치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회성 가십으로 점철된 뉴미디어에 문화적 공간을 창출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감성적, 논리적 메시지가 미술계 그리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우선 미술계 전문가들이 추천한 작가 230여 명의 비주얼 자료를 소개하고, 내년에는 영문 사이트도 구축해서 작가들의 해외 네트워킹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은주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큐레이터란 어떤 존재이냐고. 전시 현장에서, 예비 작가와 만나는 강의실에서, 그리고 곧 우리 곁을 찾게 될 온라인 공간에서 독립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이은주에게 큐레이터란 작가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작가와 협업하는 일을 충실히 하고, 동시대 미술사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그런 존재였다.

필자소개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미술] 기자, [아트인컬처] 편집위원, 안그라픽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광주비엔날레 계간지 [눈(noon)] 편집위원이며 여러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ceohee02@nate.com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1_issue/01_01_veiw.asp?idx=615&page=1&c_idx=&searchString=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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