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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신현진 독립큐레이터

편집부

필자가 큐레이터 신현진을 인터뷰한 곳은 암스테르담이었다. 신현진은 네덜란드 몬드리안재단의 펠로우십(Mondriaan Foundation International Visitors Program fellow)으로 지난 3월 20일부터 약 한 달간 리서치 여행 중이었다. 마침 필자가 프레스 투어 초청을 받아 체류하는 시기와 맞물려 ‘글로벌 코리안’이라도 되는 양, 동양 여자 둘이서 시내 곳곳을 활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필자야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가끔 해외 출장이 생기면 황송한 마음으로 관광하듯 쓱 둘러보는 게 전부지만, 신현진은 ‘글로벌 큐레이터’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예술경영, 국제화 감각 익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녀는 큐레이터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1996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물론, ‘예술경영’이라는 개념도 자리 잡지 못했던 당시 상황에서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의 예술경영대학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선 작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실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회화라는 순수예술 세계 안에서 침잠하기보다는 기획이나 정책, 사업 운영 등 예술을 소통시키는 데 관심이 생겼다. 예술이 사회구성원 혹은 사회 그 자체와 좀 더 실질적인 인터랙션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접했던 커리큘럼은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이론가적 입장이 아닌 보다 현실적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방법과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있는 안목을 길러 주었고,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뉴욕의 아시아 아메리칸 아트센터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4년간 몸담았던 아시아 아메리칸 아트센터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디렉터의 리더십이 부족했던 탓에 실무자인 신현진이 맡아야 할 일이 많았고, 덕분에 배운 것 또한 많았다고 회상한다.

그녀가 큐레이터로서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도 미국에서였다. 전시기획 공모에서 당선되어 《WATERwalks》라는 제목으로 아시아의 정체성을 ‘물’의 속성과 연관지어 그룹전을 열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방문했던 김홍희 당시 쌈지스페이스 관장을 우연하게 만나게 되면서 한국으로 들어와 쌈지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김홍희 관장께서 미국에 있던 나를 부르신 이유는 아마도 2000년대 초반 당시 쌈지스페이스는 물론, 한국 미술계가 당면한 과제인 ‘국제화’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미국 땅에서 체류했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국제적 비즈니스의 노하우와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신현진은 한국에 들어와서도 주로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 2006년 대규모로 열렸던 인트라아시아 네트워크 국제레지던시워크숍은 상하이의 비즈아트, 타이페이의 아티스트빌리지 등 아시아 소재의 주요 레지던시 기관 34개의 수장들이 한 곳에 모여 네트워크를 다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물론 신현진 개인에게도 국제적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밖에 신현진은 쌈지 바깥에서도 독자적으로 국제적 활동을 펴나갔다. 2008산타페비엔날레에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싱가포르 ISEA 심포지엄, ASEF 주최 ‘Media Art Mini Summit’ 등지에서 발제 및 패널로 초청 받은 바 있다.
쌈지스페이스의 제1큐레이터로 보낸 8년
《타이틀매치전: 이건용vs고승욱》(2005)의
퍼포먼스와 리허설
쌈지스페이스로 영입되자마자 ‘제1큐레이터’라는 관장 바로 아래 가장 상급의 직책을 맡으며 신현진이 처음 진행한 전시는 2002년 《타이틀 매치: 이승택 vs. 이윰》전이었다. 이때부터 연례기획으로 매년 한 번씩 열리게 된 《타이틀 매치》전은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원로 작가와 21세기 차세대 작가를 대결시킴으로써 대화를 도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가의 미술사적, 창조적 업적에 대한 경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진행형의 작업을 화단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작가와 한 선상에 놓음으로써 세대 간의 인터랙션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취지에서 기획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 신현진이 가장 성공적인 ‘매치’로 꼽는 것은 2004년의 ‘이건용 vs. 고승욱’이다. 원로작가 이건용은 젊은 작가 고승욱의 <노는 땅에서 놀기>를, 반대로 고승욱은 이건용의 <신체드로잉>을 패러디했다. 신체 논리에 근거한 행위에서 인식하는 주체성은 유사하지만 그것을 푸는 세대적 감수성에 따른 차이를 가시화하기 위해 두 작가는 된장과 케첩을 서로에게 발라주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레지던스와 전시장이 함께 운영되는 특징 때문에 신현진은 여타의 기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보다 작가들과 훨씬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관심사는 줄곧 예술과 사회를 잇는 것이었는데, 특히 2006년 열렸던 《ㅋㅋㅋ^^; -재점검! 한국 인터넷 문화!》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기술)에서 도출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을 보여주는 작업을 모았다. 니나노프로젝트, 에밀고, 양아치, 정은영, 진기종 등의 미니홈피, 리플, 메신저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여 커뮤니케이션과 익명성 등 디지털시대에 지적되는 문제점들을 되짚었다.
《ㅋㅋㅋ^^; -재점검! 한국 인터넷 문화!》중
정은영의 ‘사랑밖엔_난몰라’(2006)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전형, 쌈지스페이스여기서 잠깐, 지금은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쌈지스페이스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다. 패션 브랜드 (주)쌈지에서 아트마케팅의 일환으로 1998년 암사동에 레지던스/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2000년 홍대 부근으로 이전해 개관한 쌈지스페이스는 명실공히 ‘청년미술의 산실, 현대미술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IMF라는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운 젊은 작가를 후원한다는 소박한 취지로 시작된 쌈지아트프로젝트가 쌈지스페이스로 거듭나면서 루프, 풀, 사루비아, 인사미술공간들과 함께 국내외 네트워킹을 구축하고 새로운 담론을 창출하는 한편, 한국미술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추동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발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전형이 쌈지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쌈지스페이스는 공모를 통해 입주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라든가, 외국 작가들에게도 일정 부분 열어 놓는다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꽃’인 오픈스튜디오 행사 같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놓았다. 스튜디오에 입주했던 작가들에게는 ‘쌈지 작가’라는 별칭이 붙어 다닐 정도로, 지금까지도 가장 ‘색깔’있던 곳으로 인식돼 있으며 2008년 운영난으로 폐관한 지금도 쌈지를 그리워하는 작가가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 변화하는 예술기관의 역할 모색쌈지스페이스의 폐관이 결정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개최된 ‘Shift and ChangeⅡ : 대안공간의 과거와 한국예술의 미래’는 기획자 신현진으로서는 매우 ‘아픈’ 심포지엄이었을 것이다. “대안공간 및 대안적 활동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미술사적, 시스템(예술경영, 법률)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비평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미술계의 건설적인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을 행사 취지로 내걸었지만, 사실 짧게 하면 “왜 망했나?”로 바꾸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공간의 하향세는 비단 쌈지스페이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미술계 전체가 직면한 문제였기에, 심포지엄 개최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반이정(미술비평가), 구정연(독립큐레이터), 심보선(시인, 예술사회학자), 서동진(계원조형예술학교 교수)이 패널로 나와 지난 10년간 대안공간에서 열린 전시와 행사들을 분석하고, 최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대안공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쌈지에서 나온 신현진은 크고 작은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박사과정에 진학해 ‘신자유주의 영향권 안에서의 예술의 변화양상 연구’라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네덜란드 방문도 이와 관련지어 리서치하기 위함이다. 네덜란드의 주요 미술기관인 비트드비트, BAK(Basis voor Actuele Kunst), 드아펠, 카스코, 마니페스타 저널 등을 방문하고 실무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작년에 집권 정당이 바뀌면서 네덜란드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이 40% 삭감된 배경과 그에 대한 각 기관들의 대처 방식도 알아봤다.

이미 ‘실패’한 대안공간에 대해서 계속 연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승리’했다는 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 일했던 곳도, 한국에서 일했던 곳도, 또한 지금 방문하고 있는 유럽의 수많은 곳들까지 모두 시간이 지나면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마는 모습을 목도하고 나니,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뻗친 작금의 상황에서 예술관계자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궁금하더라.”

그녀는 ‘Shift and ChangeⅡ : 대안공간의 과거와 한국예술의 미래’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미국이 겪은 30년의 역사와 한국 대안공간이 지나온 10년의 역사가 공유하는 미학적 사회적 변천 과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점을 최근 국가적 차원 혹은 기업적 차원에서 구조조정과 예산삭감을 당하고 있는 유럽의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21세기에 들어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현진은 미학적 대안이 아닌, 어디까지나 제도적 대안으로서의 ‘신제도주의’에서 지칭하는 ‘제도’는 일시적인 커뮤니티일 뿐이고 여기서 일하는 실무자들, 즉 큐레이터의 역할 또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오늘날의 큐레이터는 소장품을 관리하고 담론을 생산하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서 “타 장르와 통섭을 시도하는 프로듀서로서, 혹은 지역 커뮤니티와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진행자로서, 아카데미와 실험실의 연구원으로서, 예술기관 안팎의 교육자로서 변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필자소개
호경윤은 동덕여대 큐레이터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전문지 월간 [아트인컬처](art in culture)의 수석기자로 재직 중이다. [ASIANA]에 고정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전시《출판_기념회》(2008, 갤러리팩토리)를 기획한 바 있다.
블로그 트위터 @sayho11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3_data/03_01_veiw.asp?idx=724&page=1&c_idx=37&searchString=신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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