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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 출향작가 안창홍의 익숙하면서 낯선 그림

최태만

작가 안창홍은 195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나 1966년 부산으로 이주하여 성장기와 청년기를 부산에서 보냈으며, 1989년 부산을 떠나 잠시 서울에 머물다 경기도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때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부산에서 성장, 활동했으므로 부산이 낳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매일 양평 작업실에서 오로지 회화에 전념하고 있는 안창홍은 독특하면서 도발적인 상상력과 날카로우면서 농염한 주제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화가이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에 '49인의 명상'이란 야심만만한 작품을 출품해 자신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선보였던 그는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시대의 초상'이란 이름으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을 통해 흑백의 대형 인물화를 선보인 바 있다. 침대 앞에 놓는 가구의 하나인 베드카우치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모델을 그린 이 그림들은 그 규모의 장대함 때문에 보는 사람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흑백의 무채색이 주는 장중함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일련의 검은 그림을 제작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작업일지에서 '예술은 불규칙과 불면의 산물인가? 아! 그래도 너무나 달콤한, 규율과 원칙과 상식의 전복을 통해 길어 올린 검은빛의 향기'(2007년 8월 7일 작업노트 중)라고 적었다.
그의 작업노트는 도발적이면서 장중한 아름다움을 지닌 누드화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사실적인 재현에 충실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통적인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듯 관람자를 향해 자신의 육체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공격적인 자세도 그렇지만, 누드화의 전통에서 벗어난 포즈와 그들의 시선에서도 '위반'의 혐의가 포착된다. 비록 작가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 모델이 '유혹하는 시선'이 아니라 '노려보는 시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보이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보는 주체로 파악하고 있는 모델의 의식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즉 그들은 그림 속에 다소곳하게 누워있는 양순한 모델이 아니다. 이 흑백회화 속에 모델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가 공을 들여 섭외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림 속 인물들이 나체임에도 에로틱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무채색이 벗은 육체를 훔쳐보고자 하는 관음증적 욕망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물보다 크게 재현된 인체가 관능적 아름다움을 넘어 육체를 경건하게 보이게 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이 누드화는 건강한 육체에 바치는 헌사(獻辭),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세웠다 할지라도 그를 통해 이름 없는 모든 인간,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존경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그는 '우울한 침묵 속에서 그려내는 회색빛 절망'이란 표현을 했다. 그에게 이 그림들은 최악이다. 그러나 이 작품 앞에 서면 그의 검은 그림이 절망의 회색 혹은 최악의 그림이라기보다 더는 곤혹스러울 수 없도록 혹독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좁고 불편한 카우치에 의지해 있으면서도 이들의 도전적인 표정과 자세는 자신의 벗은 육체를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육체'가 된다. 더욱이 이들의 육체가 헬스클럽에서 가꾸거나 성형한 육체가 아닌 까닭에 그 당당함은 이 그림 속에서 더욱 빛난다. 작가가 말한 '검은빛의 향기'란 바로 이 당당함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국제신문 2011.5.22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110523.2201719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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