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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4> 문총구국대와 부산의 미술가들

최태만

6·25전쟁은 많은 예술가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몰았고, 부산에 거주한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중 기억되는 작가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결성한 '문총 구국대'에서 활동한 우신출을 들 수 있다. 문총 임원들은 전쟁발발 다음날 문학평론가 조연현이 운영하던 문예지의 사무실에 모여 비상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그날 밤 고희동과 모윤숙이 중앙방송을 통해 시민들을 진정시키는 강연을 하였고, 6월 27일 다시 모인 조지훈, 서정주, 이한직 등의 문인을 중심으로 '비상국민선전대'를 조직했다.
얼마 후 서울이 함락되자 수원에 모였던 문인들은 종군문인이란 포목 완장을 달고 정훈국 일을 맡아 했다. 대전으로 피란갔던 김광섭, 이헌구, 조흔파, 구상 등의 문인들은 김광섭을 대장으로 한 문총 구국대를 결성하고 대구, 부산, 전주 등지에 문인들을 파견하여 구국대의 취지를 알리고 지방의 문화예술인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동시에 문총 구국대는 대적전단(對敵傳單)과 국민들의 궐기를 호소하는 벽보를 제작하여 부착하기도 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틀 후 다시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에서 다시 부산으로 쫓겨 갔던 예술가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진격하는 국군을 따라 북으로 종군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경남, 부산출신이거나 부산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군대를 따라 종군했다. 서울수복 후인 1950년 9월 30일 문총구국대 부산지대장이었던 유치환 시인을 비롯하여 소설가 오영수, 미술가 우신출, 이준, 김재문 등이 부산에서 출발하여 포항과 영덕으로 이어지는 동부전선에 종군하여 원산까지 갔다.
경남 남해 출신인 이준은 1949년부터 부산 미공보원에서 근무하며 그림을 그리던 중 전쟁을 맞았다. 군용트럭으로 부산본역을 출발한 이들은 소설가 선우휘와 함께 정훈 2기생으로 임관했으며, 입대 이전에는 유치환과 경남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김봉룡 소위의 안내를 받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종군 스케치 중에서 우신출의 것은 동부전선 종군 체험을 기록한 중요한 사료에 속한다. 경상남도 문교사회국 학무과 장학사 겸 문화계장으로 근무하던 우신출은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전국학생체육대회에 선수단을 이끌고 참여했으나 전쟁발발 소식을 듣고 6월 28일 새벽차로 급히 서울을 빠져나왔다. 우신출을 포함한 동부전선 종군예술가단이 부산을 출발한 것은 9월 30일이었고, 유치환이 원산에 도착한 것은 10월 10일이었으므로 우신출의 스케치 중에서 주민을 선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은 포항이나 영덕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틈틈이 스케치하는 한편 주민이 모이면 선무활동도 펼쳤다.
원산 도착 직전에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되돌아간 우신출은 10월 13일 서울에 도착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보신각 주변풍경을 스케치로 옮겼다. 이때 그린 스케치는 11월 1일부터 5일까지 부산의 미공보원에서 '종군보도스케치전'이란 이름으로 전시됐다. 이처럼 초기의 미술가들은 전투지역을 찾아갔으나 본격적인 전쟁기록화를 제작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정황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국군으로서도 민간인인 이들을 전투가 치열한 현장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우신출이 남긴 스케치는 보도사진과 함께 전쟁 당시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신문 2011.6.5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0606.2201720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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