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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13>예술과 퍼블리시티권

김형진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구미에 세워질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모습이 처음과는 달리 대폭 수정된다고 한다. 당초에는 박 전 대통령이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는 모습이었는데 이 모습이 공개되자 시중에는 이 자세가 북한 김일성 동상의 자세와 닮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자세는 김일성 동상이 처음 취한 자세도 아니고 동상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자세도 아니다. 이렇게 주인공이 오른손을 들고 서있는 자세는 옛날부터 개인의 동상에서는 아주 흔한 자세다. 이런 자세를 한 동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도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동상일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이 오른손을 들고 왼손으로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자세는 원래 고대 로마에서 연설하는 자세였다. 이는 지도자가 국민에게 축복을 내리고 희망찬 미래를 가리켜준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나라에서 이런 자세의 동상을 볼 수 있게 됐다. 가령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같이 유명한 동상들이 바로 이런 자세다.
하지만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는 동상일수록 자세를 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설치된 지 40여 년이 지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만 보더라도 아직 작품의 고증이나 미적 평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미술 작가의 관점과 친숙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반인의 관점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저 지나가면서 작품을 잠시 보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작품의 소재가 된 개인은 자기를 묘사한 미술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1991년 뉴욕 메츠 야구팀 선수들이 어느 인형회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 회사에서 판매하는 성인용 인형의 얼굴이 선수들의 얼굴과 닮았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판례가 없지만 이처럼 어느 사람을 묘사한 동상이나 그림이 너무나 수준이 낮아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라면 작가에 대해 당연히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수준이 그 정도로 낮지 않다면 비록 그 작품이 당사자가 싫어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우리 헌법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자기의 얼굴이나 모습을 가지고 상업적으로 사용할 때 당사자들은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을 가질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법제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법원에서는 점차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당사자들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인기 아이돌 그룹의 인형을 만들어서 판다면 바로 퍼블리시티권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퍼블리시티권은 보통 상업적 제품에만 적용되는 이론이다. 동상과 같은 예술 작품은 비록 시중에서 활발하게 매매되고는 있더라도 예술 작품들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런 작품들을 상업적 제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앤디 워홀과 같은 현대미술가들이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 같은 그 당시 인기 연예인들을 자기 작품의 소재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미술 작품들에 대해서는 이런 이유로 퍼블리시티권을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좋아하는 연예인들과는 달리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물일수록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제각기 엇갈리고 또 그 인물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사뭇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동상을 세우는 것도 이제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다. 가톨릭을 이끌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6년여가 되었지만 그를 기리는 마음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난달인 2011년 5월에는 로마의 중심지인 테르미니 기차역 앞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거대한 동상이 건립되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교황이 모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미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이 동상이 교황과 전혀 닮지 않았을 뿐더러 작품이 전체적으로 마치 군용 텐트나 참호를 닮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을 철거할 법적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하늘나라에서 교황이 스스로에게조차 낯설 것이 틀림없는 모습의 자기 동상을 내려보면서 과연 좋아하실지 알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 중앙선데이 2011.6.12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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