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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미술 비교]한국 일본 도자기 속의 암향부동(暗香浮動)

선승혜

선승혜 클리블랜드박물관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
봄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도도하게 피어난 매화로 시작된다. 나무 둥지는 겨울을 이겨내듯 그로테스크하게 뒤틀려 있지만 그 꽃봉오리는 작고 우아하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작아서 번잡스럽지 않고 향기는 은은하게 표류하여 고혹적이다. 이 매화가 동아시아 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병(梅甁)’ 도자기는 풍만한 어깨 위에 작은 구연부(口緣部·아가리)가 있다. 원래 매화 가지를 한두 송이를 꽂아 둘 만하다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매병의 둥그런 상단부에서 하단부로 부드럽게 가늘어지는 유려한 곡선미는 숨이 멎을 만큼 고혹적이다. 그 용도는 술병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멋스러운 문인의 취미는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다.

조선 문인들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한국 문인들의 매화 사랑은 각별하다. 조선시대의 대유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은 매화를 ‘절군(節君)’이라고 칭송하여 수양과 학문정신의 벗으로 인격화시켰다. 그의 ‘매화시첩(梅花詩帖)’(1573년 간행·개인소장)에는 퇴계가 고르거나 지은 매화에 관련된 시 91수가 들어있다. 그가 정원의 매화와 매화 분재를 주고받으면서 곁들인 편지글들이다. 퇴계 선생의 시 속의 매화는 지금도 봄이 되면 도산서원의 앞뜰에서 수려하게 우리를 반겨준다.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철화 백자 매화 대나무 문양 편병’(17세기)은 보름달처럼 하얗게 둥그런 모양의 편병(扁甁)이다. 아마도 술병으로 사용되었을 법한데 과음하지 않도록 편병의 크기가 알맞게 적당하다. 앞면에는 매화가, 뒷면에는 대나무가 철화로 그려져 있다. 철화란 성분이 들어간 유약으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구워내면, 짙은 밤색으로 그림이 완성된다. 편병의 동그란 형태에 올곧게 뻗어 오른 매화 가지는 보름달을 연상시킨다.

이 편병의 둥그런 달 속에 피어오른 매화는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의 ‘산속 정원의 작은 매화나무(山園小梅)’라는 시에서 ‘그윽한 향기는 달빛 서린 황혼에 떠돈다(暗香浮動月黃昏)’라는 시구를 연상시킨다. 조선의 문인들은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고(梅妻鶴子)’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에서 은거했다는 임포의 은일(隱逸)에 대한 동경을 담아 이 편병으로 한 잔의 술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러한 조선 문인의 매화 사랑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매화를 좋아하여 초봄에 나귀를 타고 설산에 들어가 매화꽃을 찾아 다녔다. 맹호연의 ‘탐매(探梅)’ 일화는 겨울이 상징하는 어려움을 이겨낸 순수한 본심으로의 회귀로 우리를 인도한다. 매화는 조선의 신잠(1491~1554)·김명국(1600~1662)·심사정(1707~1769)이 좋아한 그림의 소재이기도 하다. 눈 내린 겨울날 서재에서 학문에 매진하는 학자를 시각화한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가 낯익다.

일본 유럽 수출 도자에도 매화 그림

매화는 일본인에게도 각별하다. 한여름 장마 즈음이면 매화나무에는 초록빛의 토실토실한 매실이 열린다. 장맛비에 매실이 우두둑 떨어진다고 해서 일본어로 장마를 ‘쓰유(梅雨)’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의 ‘채색 백자 매화 문양 육각병’은 일본의 에도시대에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육각형 모양의 채색 도자기다. 일본인은 17세기에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으로부터 고온소성이라는 자기 제작 기법을 습득하고 중국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 때 유럽으로 도자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되자 채색도자기법을 발전시켜 유럽 도자 시장의 주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 육각병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유럽 수출용 도자에 매화와 같이 동아시아 문인들이 애호한 모티브를 이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매화를 손에 들고 있는 젊은이는 헤이안(平安)시대의 시인이자 학자로서, 학문의 신으로 숭배되는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845~903)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왕의 친애를 받아 일찍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많은 사람의 시기와 질투로 규슈(九州)의 다자이후(太宰府)에 귀양을 가게 된다. 그가 죽는 날 매화가지가 교토(京都)에서 규슈로 날아와 하룻밤에 6000그루나 꽃을 피웠다는 ‘날아온 매화(飛梅)’의 전설이 있다. 지금도 그를 모시는 다자이후 덴만구(太宰府天滿宮)에는 매화가 한창이다.

홍매와 백매를 손에 든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자태가 눈에 띈다. 그의 ‘아름다운 붉은색의 매화, 내 얼굴에 물들이고 싶어라(うつくしや紅の色なる梅の花あこが顔にもつけたくぞある)’라는 시처럼 매화는 절개의 상징을 넘어서 가녀린 꽃의 유미(唯美)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하얀 매화의 고고함과 붉은 매화의 유혹에 마음이 절로 녹아내린다.

홍매와 백매를 곧잘 어우러지게 그린 전통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1658~1716)의 ‘홍매와 백매 그림 병풍’(일본 MOA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다. 기하학적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붉은색과 흰색 두 그루의 매화 나무가 음양을 상징하듯 양쪽에서 뻗어오른다. 일본의 문인화가 야마모토 바이이쓰(山本梅逸·1816~1867)는 매화를 사랑한 나머지 이름도 ‘매화의 은일’이라고 바꿨을 정도였다.

오늘은 작년 여름에 담가 놓은 매실주를 기울이며 매화와 같이 청아하면서 강직한 삶을 추구한 동아시아 문인의 세계에 흠뻑 취해 보고 싶다.  


-주간조선 [2153호] 2011.4.25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53100025&ctcd=C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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