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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18> 화가에게도 필요한 저작권

김형진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화가가 되면 춥고 배고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자녀가 앞으로 미술가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말리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부모들이 미술가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는 생전에 프랑스 최고훈장을 받을 정도로 존경받는 화가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다. 그가 1875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더욱더 어렵게 되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이 고급 화랑에서 무려 100만 프랑이라는 거액에 팔리고 있었을 때 밀레의 가족들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품 하나의 가격이 수백억원이 넘는 반 고흐는 생전에 한 장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동생에게 의지해서 지독한 가난을 견디던 고흐가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고 나자 그의 그림값이 마구 뛰었다. 그러나 고흐도 그의 동생도 고흐의 그림을 제대로 팔아보지 못하고 힘든 인생을 끝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중섭 화백은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적인 화가이지만 그 자신이 지독히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의 가족들도 엄청난 고생을 하며 흩어져서 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예술가의 삶이란 그렇게 힘든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같은 예술가의 길을 걷더라도 작곡가와 화가의 처지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 국민이 가수 수준이라서 그런지 매일 밤 전국의 노래방이 북적이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의 노래방에서 손님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 노래를 만든 작곡가는 일정한 돈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작권료다. 이 저작권료 때문에 작곡가는 자기가 수십 년 전에 만든 노래에 대해서도 계속 돈을 받을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도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저작권료라는 커다란 선물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어서 남은 가족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고마워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화가는 다르다. 화가는 일단 그림을 팔면 나중에 아무리 그 그림이 비싸게 거래되어도 아무런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다. 화가 자신이야 마음껏 예술혼을 불태웠으므로 그다지 불만이 없을지 모르지만 창작에 몰두하여 생활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커다란 희생을 해야 했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가장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집안의 어려운 형편 탓에 화가는 작품들을 얼마 안 되는 대가를 받고 내다 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설사 나중에 화가의 그림값이 폭등하더라도 가족들은 가지고 있는 그림이 얼마 없으므로 그다지 혜택을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화가의 유족들이 그만 유혹에 넘어가서 가짜 그림들을 가지고 나타나 그 그림들이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슬픈 일도 가끔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라도 추급권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추급권이란 화가가 그림을 판매한 후에도 그 그림이 매매될 때마다 화가에게 매매 금액 중 일부를 주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의 언론들이 고생하는 밀레의 유가족들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1920년부터 추급권을 도입했다. 지금은 독일·이탈리아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추급권을 모두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주는 1977년부터 추급권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추급권 문제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추급권을 실시하도록 EU가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추급권을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술 시장이 위축된다거나 추급권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논란 끝에 추급권 문제는 EU와의 자유무역협정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은 물론 필리핀이나 페루를 비롯한 60여 개 나라에서 이미 추급권을 인정하고 있듯 추급권이 확산되는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추급권이 실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화가의 삶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화가의 가족들은 더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언젠가 추급권 제도가 생긴다면 화가는 물론 그 가족들의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므로 화가의 가족이 그동안 고이 숨겨온 작가의 미공개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위작을 들고 나타나는 일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미술 시장이 계속 성장한다면 추급권으로 얻어지는 추가 소득 때문에 어쩌면 화가나 그 가족의 삶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혹시 자녀가 나중에 유명한 화가가 되면 화가의 부모도 인기 아이돌 가수의 부모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아이가 미술학원 보내 달라고 조를 때 너무 인색하게 생각하지 말자. 훗날 우리 아이가 유명해지면 우리의 인생도 활짝 필지도 모르니까. 얘야, 아빠가 적어도 그런 기대는 가지고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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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7.17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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