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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1> 국가보안법과 미술가 1

최태만

'막걸리 보안법'에 감옥으로 간 예술
1929년 제주에서 태어나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6·25전쟁 중 육군 통역장교로 근무했던 방근택(方根澤)은 1950년대 말 등단하여 1960년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미술평론가였다. 영어해독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 최신 미술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추상미술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신랄한 비평활동을 하던 그가 어느 날 막걸리를 마시며 떠들었던 말이 빌미가 돼 '북괴를 찬양·동조'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가 취중에 '5·16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시행하고 있으나 계획과 실천에 차질이 생겨 공업성장도가 늦은 편인데 이북은 강력한 경제를 실시하고 있어 중공업, 무기공업이 이남보다 더 성장하였다. 이북은 공장도 많고 실업자가 없다. 북한은 정치를 잘해서 백성이 안전하게 잘 산다. 일본에는 조총련이 더 많다. 인민군은 전투만 하였지 양민은 죽이지 않았는데 대한민국의 군경은 양민을 더 많이 죽였다'란 취지로 말했다가 졸지에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체포되었던 것이다. 당시 방근택이 어떤 근거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폿집에서 한 말로 경을 쳤으니 참으로 살벌한 시대였음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전쟁 중 국군으로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무관한 추상미술을 대상으로 비평활동을 했던 그가 한 발언이라고 믿기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막걸리를 마시고 취중에 체제비판을 했다가 혼이 난 미술가는 비단 방근택만은 아니었다. 미술연구소를 운영하던 윤덕환이란 화가도 대폿집에서 한잔 마시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다 '징역 1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례는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한승헌 변호사의 글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1979년 결성된 '현실과 발언'이란 동인에서 활동했던 조각가이자 미술평론가 이태호는 그것 중에서 추려서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란 작품을 제작했다. 속이 비치는 투명한 아크릴상자 속에 양은으로 만든 막걸리주전자와 잔을 놓고 상자 표면에 수습기자로부터 고물행상에 이르기까지 취기에 북괴를 찬양·고무한 죄로 체포된 사람들의 발언요지와 죄목, 형량을 각인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뚜렷하게 반국가적 행위를 했다기보다 술김에 내지른 객기이거나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심으로 그렇게 말했을 개연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술집에서 말 한 마디 잘 못했다고 잡아가서 혼을 내는 사회라면 양심의 자유 자체를 구속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긴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에야 전혀 문제될 것도 없는 책 몇 권을 소지한 혐의로 대학생들이 하숙집에서 느닷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잡혀가 바로 군에 입대하기도 했으니 막걸리에 취해 체제를 비판했던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것이야말로 불온세력의 발본색원을 위해 공안당국에게는 당연한 임무였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들과 어울려 한잔 마시더라도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대한민국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절대금기이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이 이상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인권은 내팽개쳐지고 감옥은 양심수로 넘쳐났다. 국가보안법이 인권보다 우위에 있고, 조금만 비판적인 언사를 해도 고무, 찬양, 동조 등의 혐의로 징벌하는 체제 아래에서 사는 국민에게 양심과 표현의 자유 따위는 구두선에 불과했다. 미술에서도 많은 양심수를 생산해낸 국가보안법은 창작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가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올가미임에 분명하다.
- 국제신문 2011.7.24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key=20110725.2202119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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