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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2> 국가보안법과 미술가 2

최태만

이적표현물이란 굴레로 예술인들 옥죄
1948년에 수립된 제1공화국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여수·순천사건을 겪은 후 남한에서 반공 이념을 실천하는 장치로서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에 한민당의 소장파 의원과 무소속 의원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당시 노일환 의원은 '국가보안법은 일제 치안유지법의 재판일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위반되는 입법이며, 비민주주의적인 파시스트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법안을 국회에서 제정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출판·결사의 자유가 박탈당하며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입법이 될 것'이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 제정은 물론 좌익세력의 탄압과 체포,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등을 통해 반공주의를 강화하였고, 자신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일민주의란 이름을 붙여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불과 6개월 만인 1949년 5월에 이르러 정권이 규정한 정치범의 수감인원은 3만5000명에 이르렀으며 1950년 1월에는 4만8000명으로 늘어났다.
이승만 정권은 전후의 폐허 위에 독재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구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활용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으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고 반공주의의 사슬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김보현과 같은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하인두(河麟斗·1930~1989)는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 붙들려가 처형 직전에 살아 돌아왔으나 북에서 온 친구를 재워주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에 걸려 1960년 10월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체포되기 직전 김창열, 백선보, 김서봉, 김충선, 김영환, 문두식, 장성순, 전상수, 조동훈, 나병제 등 전쟁에서 살아남은 젊은 작가들과 의기투합하여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뜨거운 추상미술운동'에 앞장섰다.
하인두는 몇 개월 뒤 집행유예로 석방되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그의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16년간 공민권을 박탈당했고 주변으로부터도 소외받고 경원시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심지어 동료 화가들조차 그와 만나기를 기피했기 때문에 한동안 그는 비록 몸은 창살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무거운 벽 속에 갇혀 지내야만 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연좌제가 있는 한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거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거대한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의 반공주의는 더욱 격렬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1967년에는 서독, 프랑스 등 유럽 지역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유럽에 있던 윤이상(尹伊桑·1917~1995), 이응노(李應魯·1904~1989) 등의 예술가를 비롯하여 107명에 이르는 학자, 유학생들을 대거 체포한 이른바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 발생했다.
1970년대의 긴급조치는 아예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국가보안법은 이들을 징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수단이었다.
국가보안법의 사슬은 1980년대에도 작동했으니 대표적인 예로 신학철이 그린 '모내기'를 들 수 있다. 유죄와 무죄 선고를 거쳐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까닭에 이 작품은 여전히 압수된 상태이다.
1991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이 신설되고, 1997년 개정되기는 했으나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국가보안법의 존폐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국제신문 2011.8.1
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0801.2202120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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