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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1> 다비드상과 바바리맨의 차이

김형진

‘바바리맨’은 표현으로부터의 자유 무시 ...예술 행위와 달라


중학교 때의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동대문운동장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근처에서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남루한 모습의 걸인이 통행로 한가운데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 걸인은 유유자적하게 앉아 있었으나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 사람의 아랫도리를 보고 근처의 여학생들이 무척 당황하고 불쾌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나타나 여자들에게 알몸을 보여 주는 일명 ‘바바리맨’들은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사람의 벗은 몸을 표현한 작품들은 돈을 주고 보려고 줄을 서는데, 정작 진짜 사람의 몸을 보여 주겠다는 것은 싫어하고 오히려 처벌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비드상과 ‘바바리맨’의 차이는 결코 가짜와 진짜의 문제가 아니다. ‘바바리맨’ 사건에 적용되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가변적 음란물(Variable obscenity) 원칙’이다. 비슷한 내용을 가진 표현물이지만 누구에게 보여지느냐에 따라 음란물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비드상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해서 일부러 피렌체의 미술관까지 가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바바리맨’의 경우 그다지 그런 몸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데 갑자기 나타나 옷을 벗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보게 된다. 바로 이 대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운전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길가에 있는 커다란 광고판에 눈길을 주게 마련이다. 또 TV의 경우 수동적 입장에서 브라운관을 바라본다. 만약 TV에서 음란물을 방영하면 어떨까.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다가 느닷없이 음란물에 노출되게 된다. 대다수 사람은 뜻하지 않게 음란물을 보게 되면 정신적 충격과 불쾌감이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강제로 음란물을 보여 주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어느 나라나 고속도로의 대형 광고판이나 TV에서 음란물 규제가 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선진국에서도 음란한 표현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설사 예술작품이 비싸거나 저명한 외국 대가의 것이거나 혹은 오래됐다고 해서 그 작품이 음란물이란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신시내티시의 경찰은 1989년 시내 미술관에서 열리던 사진 전시회를 급습해 사진들을 압수하고 작가와 미술관 직원들을 음란죄로 체포했다. 어린이들의 나체를 찍은 사진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였다. 지난해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도 저명한 사진작가 게리 그로스가 촬영한 여배우 브룩 실즈의 사진전이 경찰의 지시로 도중에 중단됐다. 모델인 실즈가 촬영 당시 열 살이었기 때문에 영국 경찰은 이 사진 작품들을 아동 포르노로 봤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세계적 명성에는 약하므로 한국 경찰이었다면 명백한 음란 작품들도 세계적인 작가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 아마 이런 과감한 조치는 쉽게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중학생 때 본 그 걸인이 불쾌해하는 주변의 행인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면 어땠을까. “당신들은 표현의 자유를 모르지? 나는 지금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예술 퍼포먼스를 하는 거라고! 내 모습을 보고 음란하다고 느끼는 당신들이 더 이상한 거야!”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구경꾼 중에 그 걸인을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사로 칭찬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물론 그때의 걸인은 법을 공부하지 못했을 테니까 이런 논리적 주장을 펴는 대신 소스라치게 놀라는 주변의 여학생들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웃고만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흘러 요새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우리나라에도 내가 가진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음란한 표현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린 자녀와 보는 TV에서 불쾌한 장면을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소중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그저 웃으며 넘겨야 하는 것일까? 소수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다수가 ‘표현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면 어느 게 우선하는 것일까? 하여간 점차 ‘바바리맨’들에게는 좋은 시절이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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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8.7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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