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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6> 미군정의 전쟁기록화 압류와 반환

최태만

일본은 왜 그 그림들을 감췄나


패전 당시 육군미술협회 회장으로서 연합군총사령부(GHQ) 직속으로 촉탁된 후지타 츠구하루가 꾀병을 부리며 나타나지 않자 '일본의 전쟁기록화 모두를 가능한 한 수집하여 처리한다'는 임무가 야마다 신이치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지난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전쟁기록화 수집을 위한 일련의 작업은 워싱턴에 있는 역사적재산국에서 1945년 11월 태평양육군총사령관에게 보낸 전신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 문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 해 1월 초순'일본정복'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니 일본 전쟁기록화를 수집해 워싱턴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 후 그해 11월 전신을 통해 미국 당국은 공병사령부가 수집할 대상을 지목하며 '후지타의 지휘 아래 일본종군화가들이 그린 전쟁기록화와 그 도판 등을 미국 국립군사박물관에 모은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이를 위해 공병사령부는 후지타를 호출해 면담을 거친 후 그를 수집작업의 공식 고문으로 위촉하고 다음 날 신분증명서를 교부할 것을 일본정부에 요청했으나 후지타가 이 일을 기피하자 야마다가 맡았던 것이다.

연합사 공병사령부에 출두해 전투미술가부대에 배속된 야마다는 도쿄 근교는 물론 센다이, 구마모토 등으로 수집지역을 넓혀가다 최종적으로 서울에 감추어두었던 작품들을 모아 전투미술가부대의 책임자인 앤더슨 대위에게 인계하는 것으로 끝났다. 연합사는 이 작품들을 보관할 장소로 도쿄도미술관의 중앙5실을 지명했다. 작품 수집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맥아더사령관은 미군에서 활동하던 전문가에게 이 작품들이 예술품인지 선전물에 불과한지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심리전 전문가인 참모들은 맥아더에게 이 전쟁기록화가 선전가치를 지닌 것이므로 파괴하거나 일본으로부터 소개(疏開)시켜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맥아더는 1952년 연합사가 일본에서 철수할 때 수집해 놓았던 작품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그 후 몇몇 작가들이 전쟁기록화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많은 일본 미술가들은 전쟁기록화에 대해 기억하기를 거부했다. 전쟁기에 열심히 전쟁기록화를 제작하고 헌납했던 미술가들은 자신의 경력에서 그 사실을 삭제하거나 도록에 자신들이 한때 혼신을 다 바쳐 그린 작품들을 수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전쟁기록화들은 1963년 만화가 오카베 후유히코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고, 1967년에는 사진가 나카가와 이치로가 미군기지 창고에 보관돼 있던 전쟁기록화를 촬영, 소개하면서 전쟁기록화의 존재가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쟁기록화를 가져간 미국은 작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어 창고에 방치했고, 1970년 마침내 153점의 전쟁기록화를 '영구대여' 형식으로 일본에 반환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되돌려 받은 전쟁기록화를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보관했다. 반환작품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이 미술관은 1977년 작품들을 전면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전시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 왜 전격적으로 전시취소 결정을 내렸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설에는 군국주의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작가와 유족의 반대로 무산됐다고도 한다. 현재 이 미술관은 반환된 전쟁기록화 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빨리 이 전쟁기록화의 전면공개를 통해 그 실상을 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야마다가 서울에서 가져간 작품 중에서 한국의 화가들이 그린 작품도 포함돼 있는지 밝히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 국제신문 2011.8.29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0829.2202219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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