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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7> 일본으로 간 앵포르멜 미술가

최태만

마티유는 문제의식이 없었나


전쟁기록화 제작과 봉납을 통해 전쟁에 봉사했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던 일본 미술계는 1940년대 후반 리얼리즘 논쟁을 거치며 자칫 정치에 종속될 수 있는 리얼리즘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서구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추상표현주의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군국주의 시절에 박해를 받았던 초현실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전후 일본사회를 고발하는 '쉬르·르포르타쥬' 회화도 나타났다. 하지만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일본미술가들의 동경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1950년에 열린 '현대세계전'을 시작으로 그 후 매년마다 유럽 거장들의 전시가 열렸고, 1951년에는 볼스, 마티유, 아르퉁, 리오펠, 장 뒤뷔페와 같은 앵포르멜(2차대전 후에 나타난 추상회화의 한 경향) 작가는 물론 드 쿠닝, 폴록 등의 미국 액션페인팅 화가들이 참가한 '격정의 대결'이란 전시도 열렸다.

이 변화무쌍한 시기에 고베 근처 아시야시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요시하라 지로는 아시야시미술협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을 갈망하는 젊은 미술가들을 규합해 1954년 구타이미술협회를 결성했다. 구타이에 참여한 미술가들은 과거와 분명히 다른 실험적 작업을 발표함으로써 일본 전위예술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예컨대 1955년 무라카미 가즈오가 했던 '통과'란 퍼포먼스는 창호지를 바른 여러 개의 문을 관통하며 종이를 찢는 것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이 점에 주목해 그를 서구에 앞서는 행위예술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구타이그룹을 이끌던 요시하라 지로는 1957년에 일본을 방문한 프랑스 앵포르멜의 이론가 타피에를 만난 후 구타이의 맴버들로 하여금 앵포르멜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는 앵포르멜의 선교사가 되었다. 사실 타피에가 일본을 방문한 이면에는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기고, 프랑스에서조차 앵포르멜이 쇠퇴 움직임을 보이자 아시아에서 거점을 확보, 앵포르멜을 부활시키고자 한 의도가 있었다. 파리에서 앵포르멜 화가로 활동하고 있던 일본 화가를 통해 구타이의 활동을 소개받았던 타피에는 구타이의 지도자인 요시하라 지로를 만나자 구타이 작가들을 최고의 앵포르멜 예술가라고 치켜세웠다.

타피에보다 먼저 일본에 와있던 마티유는 도쿄에서 자신이 이미 프랑스에서 선보였던 현장작업을 멋있게 펼쳐보였다. 일본인들이 목욕 후에 입는 유가타에 하카마를 걸친 그는 머리띠를 두르고 양손에 잡은 붓으로 벽면에 세워놓은 넓은 화폭으로 향해 돌진하듯 달려들어 신들린 듯, 춤을 춰 작품을 완성했다. 마티유는 오사카 등지를 돌아다니며 상당수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역사나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난폭한 그림에 마티유는 13세기 몽골·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던 사건을 일컫는 제목을 붙였다. 오사카에서 제작했고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하카타 전쟁'은 몽골의 제1차 일본내습을 가리키는 '분에이노 에키'를 주제로 한 것이다. 마티유가 자신을 초청한 일본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러한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역시 오사카에서 제작한 작품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란 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세계사적 관점에서 전쟁을 이해했다기보다 그저 일본에서 전해들은 바대로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분로쿠노 에키(文祿の役)', 정유재란을 '게이초노 에키(慶長の役)'라고 부르는데 다른 나라를 

침략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국토를 초토화시킨 것이 기껏 '수고로운 싸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다. 마티유에게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모양이다.

- 국제신문 2011.9.5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key=20110905.2202119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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