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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5>'돈 주앙호의 파선’과 법

김형진

들라크루아가 그린 ‘돈 주앙호의 파선’은 난파한 배에서 탈출해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구명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불안한 표정으로 가득 찬 배 안의 사람들은 조금 이상한 모습이다. 이렇게 표류 중이라면 당연히 구조선을 찾아 바다 쪽을 열심히 쳐다봐야 할 텐데 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들의 시선은 온통 배 한가운데에 향해 있다. 자세히 보면 이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 것은 가운데 남자가 들고 있는 모자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팔을 뻗쳐 모자 속에 손을 넣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모자를 차마 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들은 누구 하나를 죽여 다른 사람들의 식량으로 만들지에 대해 제비뽑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사람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은 건졌지만 넓은 바다를 떠돌아 다닌 지 이미 며칠이 지났다. 언제 구조될지 알 수 없는데 비상식량은 벌써 바닥났다. 기진맥진한 사람들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다. 모두 다 죽지 않으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한두 사람을 죽인 다음 그들의 신체를 먹으면서 나머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생존자들이 침묵을 지켜 잘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옛날부터 조난사건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있어 왔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1867년 일어났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에서 선원 4명이 탄 미그노넷호가 영국을 향해 출항했다. 먼 길을 떠난 배는 뜻하지 않게 풍랑을 만나 남아프리카 연안에서 침몰했다. 선원들은 황급히 구명정을 타고 배를 탈출해 대서양을 표류하게 됐다. 하지만 거친 바다를 떠돈 지 보름이 지나자 선원들은 더 이상 갈증과 배고픔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네 명의 생존자 중 17세의 풋내기 선원은 갈증을 못 견딘 나머지 바닷물을 마셔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선원은 그 풋내기 선원이 가족도 없고 어차피 병으로 죽을 테니 너무 늦기 전에 그를 죽여 식량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주저했지만 또 다른 사람은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살인조차 바다의 관습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 선원이 그저 바라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그 선원을 살해했다. 그 후 세 사람 모두가 그 고기와 피를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 그들은 지나가던 배에 구조돼 영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멀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려지게 되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선원 중 두 사람은 살인죄로 기소됐다.

피고인들은 한 사람을 죽이고 먹은 행위는 나쁘지만 다른 세 사람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므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또 죽은 선원의 병이 악화되어 어차피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에게는 아무런 가족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자기들의 그런 행동은 현행법으로는 위법일지 모르지만 바닷사람들 중에서는 오랫동안 인정되어온 관습법에 따른 것이므로 용서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조난당한 구명정에서는 필요하다면 식인행위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관습법이라는 증거로 17세기에 일어난 세인트 크리스토퍼호 사건과 1842년의 윌리엄 브라운호 사건을 들었다. 이 사건들에서 생존 선원들은 표류하던 중 식량이 떨어지자 동료를 죽여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에 구조된 뒤에 살인죄로 재판을 받기는 했지만 법원은 그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선원들의 정황을 참작하였다. 이런 주장을 긴급피난이라고 한다. 해당되는 사람이 위험상태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는 달리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을 때 인정되는 논리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곧 모두의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라고 해도 과연 살인이 용서될 수 있을까. 피고인들의 입장은 매우 딱하지만 법은 법이니까 재판 끝에 살인죄가 적용되어 살인행위에 참가한 두 사람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반 여론은 선원들에게 무척 동정적이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여 결국 두 사람은 몇 개월의 징역형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그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문명사회에는 이런 식인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위법 행위라는 인식이 점차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런 인식은 얼마나 단단할 수 있을까. 2010년 7월 지하 700m에 매몰된 칠레의 광부들은 69일 뒤에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그런데 만약 아무런 구조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식량이 떨어졌다면 그 광부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또 만약 독자 여러분이 미그노넷호의 선원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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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9.4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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