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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8> 서구 추상회화와 서예

최태만

지난 글에서 소개한 조르주 마티유는 소설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서양 최초의 서예가'라 부를 만큼 순간을 포착하는 동양예술의 시간성 문제에 착안한 서체적 작품을 많이 제작한 미술가이기도 했다. 이처럼 서구의 많은 미술가들이 동아시아의 예술 중 특히 주목했던 것이 서예였으며, 그것에 대한 탐닉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의 몽마르트에 있는 물랭루즈의 무희와 이곳을 드나들던 남녀의 삶을 그렸던 툴루즈 로트렉은 일본에서 수입한 붓과 먹을 즐겨 사용했다. 그가 필묵으로 구사한 서체적 드로잉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에도(江戶)의 선승이자 서도가인 센가이 기본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선화가인 센가이 기본은 임제종, 고월파의 선사로서 20년간 하카다의 성복사 주지로 있었으나 에도 중기의 봉건적인 사회 속에서도 권세에 기대는 일 없이 글씨와 그림을 즐기며 소박하되 자유롭게 산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선화로 이데미츠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를 들 수 있다. 먹선으로 기하학적 도형만 단순하게 표현한 이 작품에 대해 서구에 일본 선불교를 소개한 철학자 스즈키 타이세츠는 '우주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툴루즈 로트렉 뿐만 아니라 마네, 모네, 드가 등도 먹에 의한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직관적 필묵은 20세기 초기 추상미술은 물론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특히 1949년 7월에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율리우스 비시에, 에른스트 빌헬름 네이, 테오도르 베르너, 프리츠 빈터 등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화가들이 '젠(禪)' 그룹을 결성하여 '초월적이며 명상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서구 예술가들이 주로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의 서예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나 오히려 서체적 추상이 일본의 현대서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동양의 서체적 표현을 구사한 앵포르멜 작가로 조르주 마티유 외에도 한스 아르통, 장 포트리에, 볼스, 피에르 술라주 등이 있다. 특히 앙드레 마송은 동양의 '추획사(錐劃沙)'론을 읽은 듯 선의 흔적을 표현한 모래그림과 선불교적 묵적(墨跡)에 가까운 드로잉을 일과처럼 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체추상을 연상시키는 추상회화를 추구했던 서구의 미술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작품과 서예를 연결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프란츠 클라인은 '작품에서 검은 선만큼이나 흰색도 중요하며 궁극적으로 그린 것이지, 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에르 술라주 역시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작품과 서예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동양의 서예와 하등 상관없는 서정적 추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서예와의 연관성을 부정한 것은 예술은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자신들의 작품을 이국취향으로 몰아갈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서예가 문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그것이 지닌 이념과 의미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반면, 추상회화는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을 화면 위에 표현한 것이므로 서구 추상회화와 서예를 단순히 대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작품에서 서체에 대한 관심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국제신문 2011.9.19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10&key=20110919.2202119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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