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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3> 바네트 뉴먼, 색면 추상으로 빛의 길을 그리다

최태만

창조 순간 여명과 빛


많은 사람들은 추상미술이 어렵다고 한다. 특히 어떤 대상도 표상하지 않고, 아무 것도 재현하지 않은 텅 빈 캔버스를 보면 당황하기조차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 상설전시하고 있는 바네트 뉴먼의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를 보면 가로 길이가 5m가 넘는 넓은 붉은 색 화면에 5개의 선만 수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에 '왜 이 작품을 1950년대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경향의 작품에 대해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색면 추상 회화(Color-field painting)'란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이고, 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이다. 화면을 장악하고 있는 붉은 색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아니면 몇 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수직선이 나눠놓은 구성이 멋있기 때문일까. 많은 추상미술은 작품의 미적 특징이 문자에 의해 제한되지 않도록 제목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불친절한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관객과의 소통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뉴먼은 작품에 '14처', '단일성', '유일성', '창세기-여명' 등의 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그나마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그는 단색 색면 위에 줄띠(strip)를 그려넣기 시작한 1948년에 '숭고는 지금부터'란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의 관심이 숭고에 있음을 간파하기란 어렵지 않다. 숭고는 고대 로마 철학자 롱기누스로부터 근대의 버크, 칸트 등에 의해 정의된 미적 개념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거대하고 압도적인 대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낼 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의지에 의해 발생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뉴먼의 거대한 색면을 좌절과 고통, 상실이란 비극적 상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붉은 색으로 채워진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보다 초기의 작품을 보면 뉴먼은 하나의 흰색 선이 검은 색 바탕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유태 혈통으로 태어난 뉴먼은 특히 창세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많이 얻었다. 구약성서는 창조의 순간을 '땅은 형태가 없고 공허하였으며, 어둠이 그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는데 주물주가 빛이 있으라 하자 빛이 생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형용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공허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뉴먼의 그림에서 검은색을 창조 직전의 깊은 어둠으로 본다면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흰색 띠는 태초의 빛일 수도 있다. 이 두 요소는 그가 말한 숭고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이 유럽 여행 중 중세의 성당을 방문하였다고 상상해 보자. 로마네스크든 고딕이든 성당은 돌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실내가 어둡다. 그 어둠을 뚫고 성당 정면의 장미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제단 위에 걸린 십자가를 향해 비추는 것을 본다면 '이 빛이야말로 신으로 향한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뉴먼의 작품에서 붉은 색면은 창조 순간 세상을 붉게 물들인 여명이며, 그 사이를 가로 지르는 줄무늬는 그 어슴푸레한 공허 사이로 뻗어나가는 빛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뉴먼의 그림에서 줄무늬는 빛의 길인 것이다.

-국제신문 2011.10.30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1031.2202119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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