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8> 발로 그림을 그린 작가

최태만

日 전위 예술가 시라가 카즈오, 천장 밧줄에 매달려 발로 그려


20세기 미술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방법과 형식의 혁신'을 들 수 있다. 대공황 직후 미국 미술가들은 1930년대 초반 미국으로 온 멕시코 화가 시케이로스가 대형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동차 도장용 도구인 스프레이건을 분사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스프레이건으로 물감을 분사하던 시케이로스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스 호프만의 뿌리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잭슨 폴록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물감을 뿌리는 이른바 '드리핑'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미술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로부터 '액션 페인터'로 불리기도 했다.

프랑스의 이브 클랭은 누드 상태인 모델들이 몸에 물감을 바르고 바닥에 깔아놓은 화면 위에 자신들의 신체를 찍게 했다. 이제 신체 자체가 붓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두화(指頭畵)라 하여 손가락이나 손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전통이 있었다. 그렇다면 발로 그리는 화가는 없었을까.

우리는 팔을 쓸 수 없는 장애우 중에서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발가락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지가 멀쩡한 화가가 노끈에 매달려 공중부양하듯 허공을 가로지르며 발로 물감을 짓이기고 밀쳐내 그림을 그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의 전위예술가 시라가 카즈오는 1940년대 중반부터 물감을 뜨거나 개는데 사용하는 화구인 나이프나 손가락을 이용해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추상표현적인 그림을 그리다 1954년부터 아예 발로 그리기 시작했다. 1925년 효고현 아마카사키에서 태어난 시라가는 교토시립미술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웠으나 1948년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서양화로 바꿔 1949년에는 오사카시립미술연구소를 다녔다.

그의 발로 그린 그림은 1954년 오사카의 소고백화점에서 열린 제로그룹전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1954년은 요시하라 지로를 중심으로 오사카에서 구타이(具體)미술협회가 창설된 해로서, 그룹의 지도자인 지로는 젊은 후배작가들에게 '남을 모방하지 말고 지금까지 아무도 안했던 것을 하라'고 독려했다.

1955년 자신이 속한 제로그룹의 카나야마 아키라, 무라카미 사부로, 타나카 아츠코 등과 함께 구타이그룹에 가입한 시라가 카즈오는 그해 7월 효고현의 아시야시에 있는 아시야공원에서 열린 '깊은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의 도전적 야외실험미술전'에서 붉게 칠한 나무막대 아홉 개를 고깔모양으로 세운 설치작품 '들어와 주세요'를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도쿄의 오하라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구타이회원전에서 시라가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신체운동의 흔적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일본에서는 시라가의 이 퍼포먼스를 앨런 카프로의 헤프닝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무튼 1957년 프랑스에서 온 조르주 마티외가 도쿄와 오사카에서 앵포르멜 회화를 시연하고 미셀 타피에가 앵포르멜 미학을 전파하자 구타이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 전위 예술가들이 열광적으로 앵포르멜 회화를 추구했다. 천장에 밧줄을 걸고 그것에 매달려 바닥 위에 깔아놓은 물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발로 그림을 그리는 시라가의 행위는 낯설고 새로운 것임에 분명했다. 전쟁기에 동원되었던 리얼리즘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일본미술계에 그의 난폭하면서 자유로운 행위로부터 출발한 회화가 하나의 돌파구로 비쳐졌을 것이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1.12.5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1205.2202120182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