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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4> 예술과 종교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로드코 채플

최태만

미국 텍사스주 남동쪽에 있는 휴스턴은 미항공우주국(NASA)이 있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이곳에 세계 최대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메닐 컬렉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넓은 정원에 수평으로 펼쳐진 메닐미술관 옆에는 기하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왠지 성당을 떠올리게 만드는 팔각형의 벽돌건물이 있다. 1964년 4월 가톨릭 성당으로 계획된 이 건물은 1971년 2월 초교파적 사원으로 완공되었다.


이 로드코 채플을 방문한 것은 2008년 2월이었다. 바넷 뉴먼의 '깨어진 오벨리스크'를 이정표 삼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다소 침침한 조명 속에서 마치 검은 벽처럼 보이는 마크 로드코(1903~1970년)의 색면 추상회화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바넷 뉴만을 포함하여 클리포드 스틸, 아돌프 고틀리브 등과 함께 미국의 색면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로드코는 서정적이면서 명상적인 추상회화를 추구한 화가로서 그가 구사한 색채가 심적 감동을 표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1910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로드코는 예일대학과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대공황의 여파로 설립된 뉴욕 공공사업추진국 회화부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초기에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1940년대 후반부터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로드코를 비롯하여 미국 색면 추상화가들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55년에 쓴 '미국형 회화'란 글에서 이들의 작품에 대해 '뉴만, 로드코, 스틸 등의 작품에서 보는 색채의 어두운 열기는 명암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림의 표면에 새로운 평면성을 부여한다. 이 평면은 살아서 움직이며 숨을 쉰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정작 로드코 자신은 '나는 추상화가가 아니다. 나는 색과 형태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나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것은 비극, 황홀, 운명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일 뿐이다'고 말했다. 결국 로드코는 형식이 아니라 작품을 관통하는 비극적 감정과 심오한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맨하튼의 마천루뿐만 아니라 그랜드캐년이나 요세미티 계곡, 네바다사막과 같은 자연환경을 지닌 미국을 생각할 때 넓은 색면으로 화면을 크게 나눈 그의 작품은 추상으로 표현한 풍경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로드코 채플에 걸린 거대한 색면회화는 순수함과 엄격함의 극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이상학적 진실을 추구한 그의 정신 세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로드코는 사원의 설계도를 입수하여 축소모형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작품을 구상했으며, 작품 또한 뉴욕의 작업실에서 제작했으므로 작품을 벽에 걸 때는 몇 차례 채광창의 설계를 바꿔야만 했다. 더욱이 그는 사원이 완공되기 전인 1970년에 자살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 앞에 선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비극적 감정을 자극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그가 명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가 예술을 종교로 바꿔놓은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 초월적인 세계를 추구한 그의 작품은 사원 내부를 지배하는 묵직한 공기와 함께 침묵의 소리를 듣도록 요구하는 듯했으나 예술을 종교와 동일시한 기획이 과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글에서 로드코가 왜 이토록 형이상학적 주제에 집착했는지에 대해서도 다루도록 하겠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1.11.6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key=20111107.2202119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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