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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빛을 찾아 - 정창섭 론

편집부

1. 추상의 본질을 향하여
정창섭은 앵포르멜 형식의 <심문> 이래 닥 작업인 <묵고>에 이르기까지 추상의 세계 속에서만 살았다. 40여 년의 외길 여정에서 그의 추상 세계는 몇 차례의 변신과 도약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존재의 드러남이라는 사건에 가담하는 철학적 탐구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과 서구의 접점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추상을 재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정창섭의 회화는 가시 세계의 존재를 재현하고 있지 않다. 정창섭은 가시 세계의 존재를 그럴 듯하게 모방하기보다 차라리 직접 불러오기를 원했고, 존재를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 오히려 존재를 덮고 있는 껍데기를 벗겨내고자 했다. 그러나 거기에 그렇게 있을 뿐인 존재의 본질은 포착하려는 순간 미끄러지면서 사라져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에 부착되어 있는 인간의 온갖 개념적, 도구적 의미들 때문이다. 정창섭은 일상적인 의미가 달라붙기 이전의 존재의 참모습을 붙잡아내고자 한다. 그런데 존재의 참모습이란 무엇인가? 존재의 본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존재를 ‘그와 같이 있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이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정창섭은 추상을 통해 그처럼 비가시적인 존재의 본질을 포획하고자 한다. 정창섭은 인간의 관념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존재의 참모습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물질의 변화와 생성의 과정에 참여한다. 그것은 존재의 발생 지점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태생학적 탐구이면서 동시에 의식에 드러나는 존재의 현상을 환원해 나가는 현상학적 탐구이기도 하다.
일상적 의미로 겹겹이 포개진 껍질을 벗겨내어 탈환된 존재는 형상이 무화(無化)되어가는 정창섭의 조형세계에서 순전한 속살을 드러낸다. 정창섭에게 추상은 ‘존재의 드러냄’의 다른 이름이었고, 미술가의 할 일이란 존재의 참 모습에 최소한의 손길을 더할 뿐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추상 세계는 소멸에 가까운 절제된 회화적 언어로 현현한 침묵의 세계로 등장한다. 그 속에서 존재는 이따금 고요한 파동을 일으키며 뒤척임을 보일 뿐이다. 그의 추상 세계는 또 하나의 실재가 존재하는 자연세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실재가 변복한 조형세계이기도 하다. 정창섭의 조형 세계에 등장하는 사물은 변함없이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되는 닥이라는 물질이지만 정창섭의 손길에 닿으면서 그것은 무수한 모습으로 변이한다. 더 이상 뭐라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는 상태, 그 때에 이르러 존재는 인간의 사용에 의해 망각된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존재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창섭이 추구하는 추상의 본질인 것이다.
애초에 그의 추상은 서구와 전통의 첨예한 대립각을 벼리는 것에서 출발했기에 그는 추상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나아간다. 그에게 추상 회화는 그저 서구의 회화적 매제로 그들의 형식을 흉내 내거나 추상 과정에 과도한 관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유화물감, 붓을 차례로 그의 조형 세계에서 축출한다. 그렇게 추상회화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정면으로 도전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 언어로 존재의 드러남을 보여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말해 지역적인 고유 언어로도 추상은 가능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구 문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로 향할 때 예술의 의미도 확장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것은 회화의 가능성을 한계 지점까지 밀고 나가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는 회화를 지탱시키는 요소를 최소한으로 환원시키거나 아예 배제시킴으로써 회화의 한계점에서 추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건져 올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창섭은 ‘자연주의 화가’ 혹은 ‘모노크롬 화가’라는 보편적 잣대 너머 어디를 향해 자신만의 조형적 탐조등을 비추는가? 민족적 정통성의 해법 너머 그가 천착한 세계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2. 표면에서 깊이로
정창섭의 추상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한지가 놓여있다. 서구 추상이 정착기로 접어들 무렵,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 따라 고유한 조형 언어의 모색이 가장 급박한 화두였을 때 정창섭은 한지를 만났다. 한국적 추상에 대한 요구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에 침전되어 있는 과거로 시선을 향하도록 추동시켰고, 유화 양식의 두께에 밀려 어둠 한켠에서 화석이 되어가던 한지는 새로운 형식의 조형세계에 편입되었다. 말하자면 한지는 서구 추상이 고유의 전통과 충돌 없이 조응하는 데 있어 요구되는 근본적인 해법을 내포한 캔버스가 되었다.
물론 한지에 대한 관심이 정창섭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모더니즘이 무한한 표현 가능성이라는 축복을 안겨주었지만 그것이 과거를 함몰시킨 대가였기에, 상실되어버린 것에 대한 미학적 관심들이 한지에 집중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동양화의 영역에 머물러 먹물을 머금던 한지는 추상이라는 갖가지 기법으로 치장된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발묵이나 갈필로 실경 산수나 사군자화의 붓질을 담아내던 한지는 다양한 기법을 동반한 추상적인 상징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문화 식민지인이 전통 문화에 대한 향수에 이끌려 회화적인 변용을 모색한 하나의 양상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통의 단절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절박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 감성의 대변자로서 권리를 획득한 한지가 추상 형식으로 도포될 때, 정창섭은 종이의 질료 자체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형식의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물성에 대한 탐색이었고 동시에 추상화의 유입 과정에서 결핍된 정신성을 회복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지가 품고 있던 전통적인 아우라와 서구 추상 사이의 간극이 서구 추상의 조형 어법 속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되었던 것은 정창섭의 관심이 단순히 재질의 표면에 있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다.
동시대의 경향이 대부분 일시적 현상으로 한지에 체류했고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 표면효과를 추구하는 것에 그쳤다면, 정창섭은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한지 혹은 한지의 원료인 닥을 붙잡았고 그것의 표면 너머 깊이로 나아갔다. 정창섭의 추상 기획은 가시적인 존재의 심연에 은폐되어 있는 비가시적인 것을 찾아내어 드러내는 것이었기에 그는 존재의 심장으로 침투하는 것만이 추상의 본질에 근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한지로 작업을 한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물성을 탐구하는 과정에 한지를 정신세계로, 즉 “비물질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로 삼았다면 정창섭은 물질의 본질을 심층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걸러내어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론적인 물음으로 진행하였다.
정창섭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과의 실존적 교류 속에서 자명한 것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우연적 형태 속에 감춰진 본질을 포착하여 조형적 가시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적인 터에서 객관적 의미를 지닌 물질을 물리적인 변형 과정을 통해 조형적 세계로 편입시킴으로써 새로운 존재론적 의미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직접 닥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삶고 염색하고 반죽하는 일련의 물리적인 체험은 그저 화면에 쓰일 닥죽을 얻어내는 데에 필요한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히려 그 과정은 물질의 발생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의 구조와 변화를 온 몸으로 체험하여 발견해내는 태생학적 탐구였다.
이렇게 볼 때 정창섭의 작업은 일상적 대상으로 존재 의미를 갖던 사물이 예술적 오브제로 의미를 갖는 존재론적 전치에 있다. 자연의 물질을 거부함으로써 순수성을 확보하는 것이 서구 추상미술의 기원이라면 정창섭의 기획은 자연의 물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물질 자체의 보이지 않는 내적 실재, 말하자면 물질의 순수한 성질인 물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모더니즘 회화가 평면성으로 한정되면서 그것의 고유한 속성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 고유성을 담보하는 것이 물감의 물성이었다. 하지만 정창섭이 관심을 둔 물성은 유화물감의 물성이 아니라 자연 자체의 물성이었다. 이미 추상 초기 작업부터 그는 물감의 물성을 거부하는 몸짓을 내보였다. 앵포르멜 형식의 두터운 물감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마티에르의 우연성에 초점을 맞춘 작업으로부터(도1) 앵포르멜과 기하추상의 경계에서 캔버스의 바탕이 드러날 정도로 얇아진 물감으로 이행한(도2) 작업 방식이 이를 말해준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의 변화에 따른 물감의 두께 차이가 아니라 자신과 동화되지 않는 서구 문명의 이질적인 유화물감의 끈적거림으로부터의 탈주였다.
서구 추상에서 의미하는 물성과 결별한 작품 <귀>(도3)가 보여주듯이 유화물감을 버리는 제의를 거쳐 간택된 한지는 물질과 물질의 관계 속에서 물성을 드러낸다. 유화물감이 폭력적으로 캔버스를 잠식하는 것과 달리 한지와 연대한 먹은 기꺼이 한지의 물성이 제 몸을 통과하여 그 성질 그대로 드러나도록 한다. 먹은 한지와 태곳적부터 함께 해 왔기에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은 것이다. 발묵 효과로 먹물이 한지에 번지어 퍼지거나 혹은 먹물을 머금은 붓이 만들어 내는 점과 불규칙한 직선의 흐름이 보여주듯이 정창섭에게 한지는 단순히 바탕 재질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의 조화로운 호응을 보여주는 물질인 것이다.
물질의 ‘표면에서 깊이’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한지를 거친 정창섭은 물질 자체의 내부로 향한다. 한지의 뿌리인 닥나무와 마주한 그는 도공의 마음으로 닥의 발생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흙과 한 몸이 되어 태토를 치대고,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구워 마침내 비색의 청자를 탄생시키는 도공처럼 그는 닥나무에서 닥죽을 얻기까지 그 길고 고단한 노동을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다. 닥의 생성과정에 참여하는 과정은 단순한 신체적 체험이 아니라 태생학적인 탐구였으며 나아가 현상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정창섭은 말한다. “종이의 물적 실존성에 나의 감수성을 동화하여 물과 아의 일원적 합일을 체험하는 쪽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정창섭은 어떤 의도로 물아합일 개념을 자신의 작업에 비유하는가? 물과 아가 하나 되는 과정은 현상학의 ‘환원’ 개념에 다름 아니다. 사물의 본질은 일상적인 의미의 껍질을 차례차례 벗겨내는 환원의 과정을 통해 명증하게 드러난다. ‘환원’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물에 대해 내리던 판단을 중지하고 사물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초월하는 현상학적인 탐구라고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물의 표피를 벗겨내는 과정은 물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의식의 태도 변경, 즉 관념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본질을 탐구하는 환원의 과정은 신체적인 체험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창섭의 경우 물아일여는 물질과 신체의 만남이라는 구체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원론적 시각, 즉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존재라는 사유에 토대를 둘 때 이러한 정창섭의 물아일여에 대한 입장은 다소 낯설게 들린다. 서구 추상은 이원론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기에 그것이 아무리 정신성을 강조한다 해도 그 밑바탕에는 여전히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에 정창섭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 불가능한 존재로 간주한다. 정창섭이 언급한 물아일여는 관념적이건 신체적 행위이건 자아의 존재가 일순간 물질과 혼연한 상태가 되어 주객이 일체가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정신에 그 만물의 모습을 밝히고자 하는 ‘격물치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정창섭에게 닥과 함께 하는 긴 시간은 물질과 교호한다는 의미로서도 중요하지만 그 합일이 명상으로 승화된 차원과 다름없는 정신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정창섭은 한지나 닥 작업을 통해 모더니즘이 수반하고 있는 추상미술의 교조적 물성을 얼마든지 변용을 기할 수 있는 개념으로 재편했다. 한지나 닥을 추상의 대각점에 놓지 않을 때 그 물질은 의미 변용이 얼마든지 가능한 물질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의 의고적 속성은 결코 그의 추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30년 넘도록 다양한 변이를 보일 수 있었다. 비록 화면 밖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화면에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개체의 발생 지점으로 돌입해 들어가 그 중층적 구조를 예민한 감각의 촉수로 더듬는 것이 정창섭의 작업 방식이며, 이러한 물리적 접촉에서 이루어낸 결과가 바로 변화무쌍한 변신 과정을 지워내고 화폭에서 새롭게 탄생한 닥의 물성인 것이다.
3. 가능적 의미의 터
자하가 공자에게 묻는다. “선생님, ‘귀여운 입가의 웃음이여, 아름다운 눈의 흑백이 분명함이여, 본바탕 소(素)의 찬란함이여’는 무엇을 뜻합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본바탕 소(素)가 그림 그리는(繪)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정창섭은 바탕보다 그리는 것 혹은 꾸밈에 중심을 두는 조형을 멀리하고자 했다. 더욱이 존재의 본질을 드러냄이 목표였기에 그에게 회사후소(繪事後素)는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회화라는 것이 종내는 무엇인가를 그려내야만 하는 운명이기에 정창섭은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결국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회화를 꿈꾸게 된다.
추상 미술이 아무리 미메시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해도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추상미술은 형상을 갖는 조형세계를 꿈꾼다. 추상미술이 제아무리 정신성을 강조해도 회화적 의미는 대부분 형상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은 추상이 비록 재현과 결별했다고 해도 그 운명은 그것이 직선이 되었건 원이 되었건 형상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창섭은 이러한 추상의 운명을 역전시킨다. 그리하여 형상이 애초에 지니고 있던 표현적 기능은 여백에 밀려 가두리로 물러나고, 색과 색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산출하는 화려한 채색 욕구는 먹물이나 단색으로 갈무리된다.
<귀>에서 보여주듯이 시선을 먼저 잡아끄는 것은 널찍하게 비어 있는 빈 공간이다. 형상은 다만 곁자리에 배치되어 빈 공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과 여백의 역전은 결코 구조의 부조화나 조형성의 미완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닥>에서는 닥 스스로 만들어내는 우연적 형상 이외에 그 어떤 인위적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다.(도4) 닥의 물질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화폭은 다만 즉흥적이며 우연한 효과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닥의 실낱들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주름과 그것 때문에 생기는 황갈색의 색조 차이만 이따금 보일 뿐인 화면은 예술가의 손길을 숨긴 채 오로지 자연의 물질만이 독립적인 존재로 실존할 따름이다.
정창섭은 자신과 물질 상호간의 긴밀성을 화폭에서 조형화하는 과정에 지워버린 것이다. 그 지움은 동시대 한국 추상에서 앵포르멜을 비롯해 모노크롬 회화에 이르기까지 행위 자체에 의미가 부여되는 작품들과 변별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행위에 의미를 두는 작가들은 자신이 몰입한 순간 물감이 만들어내는 두터운 마티에르에, 혹은 무심결에 반복적으로 만들어낸 흔적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정창섭은 자신의 흔적을 되도록 덜어내거나 지워내고자 한다. 인위성을 소거한 빈 화면에서 자연적 물성은 필연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화폭은 대상을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공간이라기보다 물질의 순수성이 생동하는 장으로 구축된다.
물론 외형적인 형상과 빈 공간의 비율을 계량하는 것은 단지 물리적 차원의 해석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존재의 드러냄을 핵심과제로 삼는 추상 여정에서 여백은 단순히 화면 공간의 운용에 따라 비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창섭은 왜 그토록 화면을 비워내기를 원했던 것일까?
비록 서구 추상의 형식적 방법론과 기법을 수입했지만 그것에 함축되어 있는 정신성은 흉내 낼 수 없듯이, 한지라는 전통적 매제를 채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신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여백에 곁점을 찍는 정창섭의 조형성은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동양화에서 규범으로 삼는 여백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여백은 비어 있는 무(無) 혹은 공(空)의 상태이지만 대상 표현과 주제전달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려진 것 이상의 조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형상 외에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하는 암묵적인 장치이다. 막연히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바늘구멍조차 허용하지 않는 꽉 찬 공간, ‘보이지 않는 것’의 깊이와 심오함을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귀>, <닥>, 그리고 <묵고> 후기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배려된 빈 공간은 의미를 품고 있는 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형상은 여백을 거느리도록 의도되고, 이에 따라 형상만이 의미의 담지자가 되지만 정창섭에게 여백은 가능적 의미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인위적인 흔적을 몰각시킨 공간, 그 공허에서 닥의 미세한 섬유질만이 고요하게 파장을 일으킬 때 그곳은 미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공간이 된다. 일상적인 눈으로 볼 때 간과하기 쉬운 여백은 사실상 추상이 결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정신을 수반해야 하는 예술 형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추상회화는 외부 세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 그 자체만을 지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은 미술가의 내적인 세계 혹은 관념을 내포해야 하는 것이다.
여백을 통해 정창섭은 정신성이 가시적이 아니라 비가시적으로 표현될 때 더욱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도약한다. 초기 추상에서 원 형태가 전통적인 상징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면, <귀> 이후부터 확연히 강조되는 빈 공간은 ‘비가시적’ 층위의 정신성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여백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소극적 차원의 공백이 아니라 회화적 언어 너머 무언의 세계를 암시하는 적극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서양 미술 유입 이래 근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공방에서 유독 추상미술의 정신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이유는 한국적 추상이 함축하고 있는 정신의 연원을 우리 고유의 전통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추상의 존립은 정신의 문제와 불가불 관계 맺는다 할 때 추상에 우리의 정신성이 얼마만큼 투여되어 자리매김했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백의 운용에서 보여주듯이 정창섭에게 정신적 차원이 배제된 추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정신이 부정되고 단순히 물질의 외연만을 형식적으로 담아낸다면 그것은 예술의 존재 의미를 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시적인 세계의 실재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비어있음으로 드러낸 것이다. 텅 빈 공간은 절대적으로 비어있는 부재로서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공간은 사물을 사물로서 물화시키는 장, 개별적 존재가 현출하기 위한 생성의 지평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 공간은 세계를 향한 정창섭의 관조적 태도의 메타포이다.
4. 절제미, 그리고 추상의 절정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정창섭이 여백의 형식 구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추상의 조형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것이다. 정창섭은 <닥>에서 일상적인 사물을 해체하여 그것의 본래적인 성질에 충실히 부응함으로써 존재의 의미가 변이되는 바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물성에 주안점을 두기 위해 형상을 포기해야만 했던 정창섭의 시도는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한 듯하다. 태생학적인 탐구를 시도했던 그에게 물성의 탐구라는 미시적 접근은 하나의 족쇄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물성의 탐구에 온 몸을 던져 가담한 그가 굳이 고유의 물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는 형태와 색으로 되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창섭이 깨닫게 된 공허감의 내적 근거는 어쩌면 우주 질서의 응축이 추상으로 귀결된다는 추상미술의 기본 원리에 대한 자각일 수도 있다. 동양화 역시 음양의 철학이 없으면 동양화의 진의가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미 초기 기하추상 작업에서 원 형태만을 고수했다는 점은, 특히 <교감>에서 원 형태를 적색과 청색 배경으로 한 점은 정창섭이 동양화의 음양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주 만물의 초월적 진리가 음양이라는 두 축을 기준 삼아 서로 왕복 순환하는 운동이라는 음양사상을 따른다면 회화는 마땅히 서로 대립하고 있는 요소들을 합일시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텅 빈 공간은 진정한 의미의 여백이 될 수 없다. 여백은 완전하게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인가 채워지고 난 나머지를 의미한다. 무는 유가 없으면 무로 존재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가 <닥>에서는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조형적인 발전 단계의 측면에서 볼 때 더욱 타당성 있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형성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묵고>에서 형태와 색이 도입되어 변모되는 발자취는 보다 선명히 드러나게 된다. 정창섭 앞에 놓인 걸림돌은 물질의 본성을 위해 예술의 미적 지위를 희생시켰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닥>은 조형적 완결성에 이르지 못했다. 비록 물질이 객관적 존재로서 일상의 존재 의미를 벗고 예술작품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해도 그것이 미적 경험을 유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창섭은 단지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체로서 존재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순수한 미적 대상을 원했다.
정창섭에게는 닥의 직물을 드러냄에 있어 보다 가시적으로 미적 효과에 기여할 수 표현 요소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사각 형태와 단색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본래 기하 추상은 은폐된 자연의 근원적 에너지와 형태들을 질서 있게 가시화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카오스 속에서 질서를 추구하려는 기하 추상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정창섭이 기하 형태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 대상과의 연관성을 최소화한 사각 형태만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창섭에게 추상회화는 고도의 순화된 정신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사각의 기하 형태가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묵고>에서 좌우 혹은 상하로 화면을 분할하는 사각 형태는 대칭 구조를 이루거나, 규칙적으로 면을 세분하는 격자 형태는 질서 있게 화면을 구획한다. (도5) 규칙적인 화면 분할에 따른 고른 화면 구성은 각 형태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면서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주지만 반면에 질서가 지닌 그 성격상 경직적이고 긴장감을 준다. 이러한 형식 구조는 선과 면의 굵기나 크기를 조절한다고 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이 거의 반복적으로 보인다. 마치 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변함없는 규칙성을 대변하듯 일정한 원칙에 따라 배열된 행태는 절도 있게 공간적인 위치를 점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간결하고 비개성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사각 형태에 의한 단순한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정창섭의 작업 성향에 비추어 볼 때 <묵고> 시기 전체에 일관되게 쓰인 단색은 시류보다 오히려 조형적 완결을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단색은 색상의 상호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거나 미적 경험을 강조하는 고정 관념에 저항한다. 색이 둘 이상일 때 어쩔 수 없이 색들은 관계를 맺고 그에 따라 의미가 파생되지만 단색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회화적 요소를 지시하고 다만 배경으로 물러앉을 뿐이다. 그러나 형상이 배제되고, 이에 따라 배경과 대상의 구별이 없어지는 단색 화면은 하나의 평면으로 간주된다는 한계를 갖게 된다. 그것은 일견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말하자면 평면성을 고수하는 순수추상의 형식 논리에 고착되어 있다는 오해를 불러 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창섭의 회화에는 입체가 도입됨으로써 그러한 오해를 비껴간다.
<묵고>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보다 입체는 조형적 완성을 위한 지형도 위에 구축된다.(도6) 극히 단순한 패턴의 기하 구조는 차갑고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만 입체적 형태가 부가됨으로써 기하 형태의 반복적인 단순함에 생기를 더해 주게 된다. 매끈하게 정제된 면과 굴곡진 면의 촉각적 대비는 기하 구조가 수반하고 있는 엄격함을 순화시킨다. 모더니즘 회화가 3차원적인 환영을 화면에서 제거하여 회화 고유의 평면성을 추구했지만 정창섭은 조각의 영역에 속하는 촉각성을 평면에 부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평편하게 롤러로 정제되어 섬세한 섬유질의 결을 드러내는 평면과 굴곡진 닥의 입체가 만들어내는 이중주가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도7) 그러나 이러한 조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정창섭은 또 다시 형태를 지워나가는 변신을 시도한다.
<묵고>의 마지막 몇몇 작품들은 그 동안 정창섭이 추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 축적해 온 조형성이 집약되어 나타난다. 그는 마침내 추상의 정점에 도달하여 ‘절제의 미학’을 완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묵고> 초기에 시도했던 기하학적 형태, 즉 화면을 가르는 사각형태도 격자형태도 없다. 부드러운 색조를 잉태한 닥이 우주처럼 펼쳐진 화면, 거기서 형태는 더 이상 질서를 따르지 않고 아스라이 사라질 듯 화면 끝에 가까스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도8) 역설적으로 극도로 절제된 형태는 통제됨으로써 더욱 존재감을 갖게 되고, 물성은 시선에 즉각적으로 포착되기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시선을 집중시킨다. 닥의 미세한 소립자들은 오직 인내심 있는 시선에만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들을 비워내고 유일한 하나의 색으로 말하는 화면은 밀도와 무게를 갖고 고요한 정적 속으로 침잠한다. 관람자는 작품에 구현된 침묵과 같은 고요함 속에서 존재의 빛을 다만 어렴풋이 감지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정창섭이 추상의 본질을 향한 긴 여정의 끝자락에서 발견해 낸 존재의 참모습이었다. 어렴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것, 그것이 존재의 본질인 것이다. 존재의 본질은 결코 우리에게 전부 드러나지 않는다. 존재를 존재토록 하는 그것, 우리가 표상할 수 없는 그것은 현상적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에 머물지 않기에 어떤 사유로도, 어떤 조형 방식으로도 완전하게 구현되지 않는다. 정창섭이 철학적 물음의 끄트머리에서 붙잡은 진리는, 인간은 다만 존재의 희미한 빛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최후의 작품들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이의 존재의 미끄러짐을 다만 암시할 뿐이다. 존재의 참모습은 가시적 현상 뒤에 은폐되어 이따금 희미하게 발현될 뿐이기에 우리는 존재의 빛남 그 자체보다는 실오리처럼 피어오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스라한 광경만을 목격할 따름이다.
 

-조선일보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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