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현장+人] 박성태 [마가진] 편집장

류동현

문화예술계의 ‘폭스 멀더’
류동현 _ 미술칼럼니스트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에서 진행중인
'코너 오피스' 프로젝트
아마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겨울이라서 그랬을 거다. 트렌치 코트(이른바 '버버리')를 멋지게 입은 그가 '미드' 의 주인공 멀더처럼 보였던 것은. 그러나 그는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미드의 주연배우가 아니었다. 그와 나눈 예술과 저널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그는 당시 월간 [공간]의 편집장이었다), 외모도 비슷했지만, 그 열정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멀더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당시 내가 드라마 속 '진실은 저 너머에'라는 대사나 '엑스파일-나는 믿고 싶다' 영화포스터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박성태 [마가진] 편집장이자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에 관한 에피소드다.


카페가 사무실?지난 해 월간 [공간]을 떠나 '다양한 일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소식은 멀리서 슬쩍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번 인터뷰가 좋은 기회 같았다. 그에게 연락을 했더니, 때마침 한남동의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에서 자그마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여름 날 그를 만나기 위해 한남동으로 향했다.

'오래간만이다. 약 3년 전 공간사옥에서 열렸던 망년회 행사 이후 처음 본다. 잘 지냈는지?(잠시 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마가진]에서 자그마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코너(노마드) 오피스'라 명명된 프로젝트다. 특정한 장소에 고정된 사무실이 아니고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사무실로 이용한다. 첫 장소로 이곳을 섭외했다. 다행히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측에서 흔쾌히 3개월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 '코너 오피스'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앞으로 병원, 기차역, 공항, 백화점 등에서도 오피스를 잡아볼 예정이다.

이번 전시 《드러나지 않는 사물들》(7.26~8.25)은 [마가진]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들이 제작한 완성품 이전의 원초적인 것들을 모은 것이다. 작가들의 진솔한 면모를 보는 흔치않은 기회라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결국, 잡지쟁이 그는 지난 해 월간 [공간]을 떠났다. 최근 잡지계와 출판계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문화건축 잡지인 월간 [공간]도 그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올해 2월 스스로 [마가진]을 인터넷을 통해 창간하고 다시 잡지계로 돌아왔다.

'결국, 잡지쟁이(잡지 에디터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니까.(웃음)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월간 [미술]에서 3년간 일했다. 그 후 중앙일보 미디어연구소에서 2년을 보냈다. 미디어연구소는 월간 [미술]이 중앙일보에서 분사를 하면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게 되었다. 월간 [미술]에서 잡지일을 배웠다면, 미디어연구소에서는 미디어란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후 [인서울매거진]으로 옮기게 되었다. [인서울매거진]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기에 외부에서 보기엔 '이런 잡지가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랬기에 옮기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고민할 시간이 길진 않았다. 1주일 안에 결정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가서 그 새로운 시도를 직접 해보니까 신선했다. 엣지 있고 날선 정보들이 살아있었다고 할까. 당시로서는 전위적이었다. 지금 그만한 목소리를 내는 잡지가 우리에게 있는지 자문할 정도다. 그러나 이후 과도한 투자와 내분이 잡지 안에 생겼다. 이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 정도면 영락없이 '뼈디터'(뼈 속까지 에디터)라 할만하다. 영국 학교에서 출판과 저널을 공부하면서 몇 군데 잡지사에서 실습도 병행했다. 상아탑 속 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충격을 받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니 영국의 전문잡지와 그 업계는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끈끈하게 연계되어 있어, 잡지의 매체성이 존중되고 있었다. 건전한 비판이 먹히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배우고 느낀 여러 가지를 귀국 후 입사한 월간 [공간]에서 펼쳐 보이게 되었다.

'2003년 봄에 월간 [공간]에 들어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잡지를 내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문화 관련은 더 힘들다. 과거 [이매진]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문화 전반에 대한 이슈를 다루었다. 내용은 좋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간될 수밖에 없었다. 광고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포인트 없이 두루뭉술하면 생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 예다. 여기에 또 하나 전문지가 힘든 이유는 광고와 매체가 영합을 하게 되면 건전한 비판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험적이었지만 월간 [공간]에서는 지면 광고를 없앴다. 매체의 독립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상황은 매우 악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월간 [공간]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로이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마가진]을 창간하게 되었다.'


아홉 개의 봉인[마가진]은 종이잡지는 아니다. '잡(雜)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장 메인 토픽은 바로 인터뷰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인터뷰 전문잡지는 금기에 가깝다. 잡지뿐만 아니라 단행본도 인터뷰 형식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출판계의 불문율이다. 이를 과감히 깬 것이다. 약 20년 된 '잡지쟁이'로서의 노하우가 쌓인 걸까?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있겠나(웃음). '마가진'(Magazyn)이라는 단어는 폴란드어로 '잡지', 러시아어로는 '구멍가게', 프랑스어로는 '창고'라는 뜻이다. 우리가 필요할 때 창고를 뒤적이는 것처럼 [마가진] 안에 예술가를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적 생각과 작업을 축적시켜 놓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의 보물창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올해 2월 28일에 창간했다. 내가 편집장이고 이경희, 백율리 에디터, 송용근 엔지니어가 현재 [마가진]의 멤버다. 잡지의 부제가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질문'(inquiry into art & design)인 것처럼 창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작업을 축적시키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택한 것이다.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를 좀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 인터뷰 형식이 편했다. 총 9개의 질문이 주어진다. [마가진] 인터뷰에서 지킬 것은 이것 하나다. 9개의 질문. 사실 10개의 질문으로 하려 했는데, [뉴욕 타임스]에서 이미 하고 있었다. (웃음) 질문의 내용은 인터뷰어([마가진]에서는 '인콰이어러'(Inquirer)라 칭함) 자유다. [마가진] 편집부에서는 이 내용을 실을 수 있을지 없을지만 결정한다. 현재까지 20여 명의 인콰이어러가 활동 중이다.'

사실 그는 저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일을 통해 예술계에 공헌해왔다. '페차쿠차 나잇 서울'과 '테드X서울'도 그 중 하나다. '페차쿠차 나잇'은 일본의 건축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미니 컨퍼런스가 발전된 형태로 20개의 이미지를 1개당 20초 동안 프리젠테이션하는 형태로 6분 40초 동안 이루어진다.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이 컨퍼런스를 2007년부터 2년간 오거나이징 했다. 이와 함께 최근 정규 교육과정에서 접하기 어려운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대중들에게 18분 동안 설파하는 릴레이 지식나눔 테드(TED)가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2009년부터 2년간 테드X서울의 초대 오거나이저로 활동했다.

'저널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공평하지 않은, 날선 의견을 개진해보고 싶었다. 편견을 주장하면 이에 반격할 반론도 있는 의견들 말이다. 그래서 '페차쿠차 나잇'이나 '테드X서울'을 오거나이징했다. 다양한 주장을 들을 수 있으니까. 이러한 좀더 '까칠'하고 생생한 내용을 담아보려는 아이디어가 [마가진]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정림건축이 지난 6월 설립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10여 년간 몸담았던 월간 [공간] 탓이리라.

'사실 일이 많아서 거절했는데, 정림건축 측에서 계속 부탁해 와서 맡게 되었다. '건축의 대중화' '젊은 건축가 지원' '소외계층 건축지원'이 문화재단의 주요 사업이다. 여기에서도 젊은 건축가를 지원하는 판단의 근거를 위해 인터뷰가 이용된다. [마가진]의 내용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건축가들은 모두 국내 건축가라는 데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 사업들을 통해 국내 건축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건축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론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계간지도 발행할 계획이다. 정말 할 일이 많다.'

아티스트의 '고갱이'를 추적하는 멀리서 슬쩍 들었지만 '다양한 일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소식은 정확했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의 앞날은 어찌될까 궁금했다.

'[마가진]의 인터뷰 기사를 계속 축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콰이어러 100명의 풀(pool)을 운영해 그들이 그들만의 특성을 가진 창고를 꾸밀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인간의 이야기, 작업 이야기가 녹아있는 인터뷰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한 달에 15건 정도의 인터뷰 기사가 업데이트 되도록 조율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일년 간은 콘텐츠의 축적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다면 나중에 자연스레 활용방향이 생길 것이다. 상황이 된다면 오프라인 잡지로도 만들 계획도 있다. 역시나 자금이 문제인데….(웃음) 광고뿐만 아니라 '일상의 지속을 위한 디자인 액션'이라는 제목으로 디자이너 아이템 판매를 통한 수익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 예술가나 디자이너, 건축가를 좀더 가까이 지켜보고 그들의 본질을 알아가고픈 마음이다. 꽤 오랫동안 예술, 디자인, 건축계에서 활동했는데, 이러한 마음가짐이 없다는 것에 반성했다. 월간 [디자인]의 김신 전 편집장의 인터뷰를 [마가진]에 실었는데, 그의 부인이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였다고 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건져내고, 작가에게 숨겨져 있던 '고갱이'를 천천히, 조금이라도 드러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이야기와 생각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한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은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다양한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 예술사회의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세상 온갖 오컬트occult초자연적인 힘와 외계인을 향했던 멀더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역시 그는 국내 문화예술계의 폭스 멀더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믿고 있다. 'I want to believe.'

필자소개
류동현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10여년 간 월간 [미술]의 기자로 일했다. 현재 마로니에북스 편집부의 기획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만지작만지작 DSLR카메라로 사진찍기』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공저)『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등의 저서가 있고 공역서 『고고학의 모든 것』이 있다. 전시 《Sculpture spoken here展》과 《Retro展》을 공동 기획했으며,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展》을 열었다.
indyyu81@gmail.com

- 위클리@예술경영
http://webzine.gokams.or.kr/01_issue/01_01_veiw.asp?idx=793&page=1&c_idx=&searchString=박성태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