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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33> 굿모닝 미스터 오웰, 글러벌 버라이어티쇼 하다

최태만

백남준, 바보상자를 예술도구로 만들다


'빅 브라더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1984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테크놀로지를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한 전체주의가 지배할 것이라고 오웰이 우울하게 예견했던 1984년이 마침내 왔다.

한국에서는 1984년 1월 2일 새벽 2시가 되자 KBS에서 뉴욕의 WNET 텔레비전 스튜디오와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위성으로 연결

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했다. 백남준이 '글로벌 디스코'라고 부른 이 위성쇼를 시작한 뉴욕은 새해를 맞이하는 1월 1일 자정이었고, 파리는 오후 6시였다.

이 세기의 이벤트는 지구로부터 2만2000마일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궤도를 돌고 있는 브라이트 스타란 인공위성을 통해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로부터 한국, 독일, 일본 등으로 전송되었다. 


프랑스의 인기가수 사포의 공연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그룹사운드 오잉고보잉고의 '깨어나라'란 록큰롤 공연을 실시간 생중계했다. 또 뉴욕 측 진행자인 조지 플림턴이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모래를 씹는 기분일 것'이라고 소개한 존 케이지의 이상한 연주에다 코미디, 아방가르드음악과 무용, 현란한 그래픽으로 구성된 초우주적 버라이어티 쇼도 선보였다.

1983년에 작성한 시나리오 초안에서 백남준은 1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대륙간 위성중계를 함으로써 철의 장막 뒤에 있는 수백만 명과도 접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백남준은 이미 1977년 독일 카셀도쿠멘타에서 위성을 이용한 작업을 구상한 바 있으나 1984년 벽두에 자신의 꿈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남준은 위성쇼를 선보인 그해 11월 도쿄의 DAAD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때 출간한 책에서 '케이지와 보이스는 친구이지만 한 번도 작업을 함께해 본 적이 없다. 보이스와 긴즈버그는 적극적인 정치활동, 강한 퍼포먼스의 취향, 반핵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자, 같은 나이, 낭만주의적 성향 등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이 위성쇼를 통해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엄, 피터 가브리엘, 로리 앤더슨, 알렌 긴스버그 등의 전위예술가들을 출연시켰다. 아베 수야와 함께 발명한 비디오합성기를 이용해 1973년 '지구의 환희(Global Groove)'란 비디오합성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 백남준은 방송장비와 위성을 동원해 전위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를 공간적으로도 연결했다.

사실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한 현재의 관점으로 보자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편집은 거칠고 게다가 1980년부터 컬러TV를 방영한 한국의 텔레비전 해상도 역시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특정한 장소에서 제한된 사람만 볼 수 있던 공연을 대륙을 넘어 실시간으로 전송한 것 자체부터 예술의 발표무대를 지구화한 것이었고 '바보상자' 취급을 받던 텔레비전을 엔터테인먼트로 뿐만 아니라 표현의 도구로 확장시킨 것은 백남준의 업적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을 전자공간 속에 세운 것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초안에서 백남준은 '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적었다. 오웰이 끔찍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는 오지 않았으나 1980년대초가 인류에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다. '강한 미국'의 부활을 주장한 레이건의 취임과 함께 세계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진입했고, 에이즈에 대한 공식보고가 발표되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반핵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21세기를 맞이하기에 아직 이른 시기에 백남준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영상문화를 미리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를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는 증거일 것이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2.1.9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10&key=20120109.2202119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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