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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34> 사키마미술관과 마루키 부부의 '오키나와전쟁도'

최태만

日 미군기지 옆 미술관서 생각하는 평화
동중국해와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기지의 75%, 주일 미 해병대 병력의 3분의 1이 배치돼 있다. 그 가운데 기노완시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후텐마(普天間) 미 해병대 비행장은 이 시 면적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기지의 외곽으로 난 국도 330호선이 지나는 한적한 주택가에 사키마(佐喜眞)미술관이 있다.

이 사립미술관은 그 입지 조건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치 미군기지의 한 부분을 파고 들어간 듯한 부지도 그렇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면 숲에 둘러싸인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관이 미군기지의 일부를 차지하며 건축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원래 이 땅은 설립자이자 관장인 사키마 미치오의 조상이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 직후 후텐마기지를 건설하면서 이 땅이 수용돼 기지가 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토지 반환을 요구한 결과, 조상의 땅을 일부만이라도 되찾게 되자 사키마 미치오는 그곳에 평화를 생각하는 공간인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결심했고, 오키나와 출신의 건축가 마키시 요시카츠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건축가는 오키나와전쟁 중 주민들의 피난처였던 천연동굴 '가마'로부터 착안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미술관의 내부 구조를 설계했고, 옥상에는 오키나와전쟁 종전일인 6월 23일을 상징해 각각 6개와 23개의 계단이 있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여기로 올라가면 후텐마기지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끝부분에 뚫린 사각형의 프레임을 통해 매년 6월 23일 일몰 때 일직선으로 햇빛이 비치도록 했다.

미술 애호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80년대부터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케테 콜비츠, 조르주 루오, 우에노 마코토, 쿠사마 야요이 등의 작품을 수집하던 사키마 관장은 마루키 이리와 토시 부부가 1984년에 그린 '오키나와전쟁도'를 상설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키나와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삶과 죽음, 비통과 구원, 인간과 전쟁을 주제로 1994년에 개관한 사키마미술관의 핵심은 역시 마루키 부부가 그린 '오키나와전쟁도'이다.

히로시마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마루키 이리는 1922년 도쿄로 가서 일본 화가인 타나카 라이쇼에게 사사했다. 1912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토시는 1929년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이들은 초현실주의를 지향했던 미술단체인 미술문화협회에서 활동하며 만나 1941년 결혼했다. 원폭이 투하된 사흘 후 이리는 고향인 히로시마로 갔고 토시도 곧 뒤따라가서 구호활동에 참가했다. 1947년부터 '원폭도'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 마루키 부부는 '난징대학살도' 등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제작하였고, 1983년부터 '오키나와전쟁도'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1982년 한 달간 오키나와에 머무르며 생존자로부터 증언을 듣고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현장을 방문해 취재를 한 이들 부부는 1983년 다시 오키나와에 들러 2개월간 다수의 스케치를 그렸다. 가로 8.5m, 세로 4m에 이르는 대작인 '오키나와전쟁도'는 태평양전쟁 중 가장 치열했고 잔인했던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것으로 붉은색과 청색의 강렬한 색채 속에 주민들이 집단 자결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다.


마루키 부부는 미군을 피해 동굴에 숨어있다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비극의 현장인 '치비치리 가마'도 그렸다.
이 그림들을 통해 오키나와전쟁의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하기에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전쟁의 고통을 되돌아보고 평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2.1.16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10&key=20120116.2202019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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