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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35> 헬기 추락사고 현장을 자유롭게 드나든 '귀족피자'

최태만

오키나와의 눈물에 답하다
오키나와의 사키마미술관에는 마루키 부부의 작품과 함께 오키나와 출신으로 타마미술대학을 졸업한 테루야 유켄이란 젊은 작가의 '당신과 나'란 아주 흥미로운 소장품이 있다. 삼(麻)을 사용해 기모노를 만든 것인데 옷 위에 오키나와의 전통 자수기법으로 수놓은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면 화려한 패턴의 장식 같지만 그 속에서 헬리콥터, 폭격기, 꽃비처럼 내리는 낙하산, 매화를 물고 있지만 실제로는 융단폭격을 하고 있는 전투기를 볼 수 있다.
테루야 유켄의 작품은 2010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롯폰기 크로싱 2010-예술은 가능한가'란 기획전에서 다시 본 적이 있었다. 벽면에 '히노마루'라 불리는 일장기를 거꾸로 붙여놓고 그 아래 오키나와산 나무로 만든 상자를 갖다놓은 작품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바닥에 깔아놓은 피자상자가 인상적이었다. 피자와 귀족이란 영어를 합성한 '피자토크라시(Pizzatocracy)'란 상표를 지닌 이 가상의 피자상자에 새긴 문구, 즉 '충돌 속의 피자귀족의 향기-오키나와의 분노'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글을 통해서는 그의 의도 일부만 이해할 수 있다. 기모노, 일장기는 물론 이 포장상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오키나와의 근현대사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오키나와는 한때 '류큐'란 독립된 나라였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번성했던 류큐왕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독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1609년 일본의 사쓰마한에 의해 정복된 후 일본에도 조공을 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조공 관계를 맺으며 독립 지위를 유지하던 류큐왕국은 메이지유신 이후인 1872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돼 멸망하고, 메이지정부의 '폐번치현'에 따라 일본에 편입됐다.
태평양전쟁은 오키나와를 비극의 땅으로 만들었다. 태평양전쟁 중 남양군도에서 패전을 거듭한 일본군이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지구전을 펼치면서 군인은 물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미군은 '철의 폭풍'이란 작전명 아래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하기 이전부터 3개월에 걸쳐 공중 폭격은 물론 함포 사격을 통해 섬 전체를 초토화하다시피 했다.
오키나와 함락이 임박하자 일본군은 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비무장의 많은 주민들이 천연동굴인 '가마'에서 집단 자결하거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반타'란 절벽에서 투신하도록 방치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장했다. 또 많은 주민들은 패퇴하는 일본군에 의해 간첩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혐의로 살해당했다.
전후 오키나와에는 미군정이 들어섰고, 1972년에야 일본에 반환됐다. 그러나 미군은 오키나와 반환 후에도 기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특히 후텐마비행장에서는 빈번하게 추락 사고가 발생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2004년에는 이 기지에서 가까운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은 휴일이라 다행스럽게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이 추락 사건은 다시 한 번 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사고 직후 미군과 일본 경찰은 현장을 폐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유독 피자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만 출입할 수 있었다. 대학 구내의 사고 현장에서 조사를 하던 미군에게 배달된 피자만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드는 기막힌 현실이 작가로 하여금 귀족피자 포장상자를 제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분노를 풍자로 표현한 이 귀족피자 포장상자는 오키나와가 언제 평화와 섬이 될지 숙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2.1.30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20130.220201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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