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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김선정 전시기획자 종합적 풍경을 제시할 수 있는 에너지

김인선

 
필자가 대림미술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김선정 기획자는 협업 큐레이터로 2005~6년 사이 대림미술관의 새로운 방향과 조직개편, 그리고 전시 기획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1년여 동안은 김선정 기획자의 활동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김선정 기획자에게는 독특한 에너지가 있다.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기획은 단순하게 특정 전시에 대한 개념과 작가 선정만이 아니었다. 적절한 환경과 그것이 전시되었을 때 그 전시 자체가 만들어내는 미술계 혹은 해당 장소가 가지게 될 새로운 효과, 그리고 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참여자와 주최자들이 얼마나 즐기면서 전시를 할 수 있을지 등 언제나 새롭고 기발하며, 종합적일 풍경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보적인 국제적 활동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획자 모델로서의 김선정 기획자를 만나 지금까지 작업해 온 경력, 철학, 작업 스타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의 독창성을 발휘시키는 기획자

한국의 여성 기획자로서 국제적인 활약이 대단하다. 처음 기획자로서 입문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궁금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친분이 있었던 백남준 작가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인턴직으로 추천해주셨다. 당시에는 기획자로서의 목표가 뚜렷하지도 않았고 별로 아는 것도 없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우연히 그런 기회가 주어진 데다가 1991년부터 92년까지 일 년 이상, 인턴으로서는 꽤 오랜 기간 일을 했다. 그 때 미술관 내 모든 부서를 돌면서 미술관 시스템과 업무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전시의 재미 또한 알게 되었다. 특히 시니어 큐레이터들과도 직접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들의 활동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 1993년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휘트니비엔날레 전시를 유치하였는데, 미국에서의 경력 덕에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으로 코디네이터 업무를 맡았다. 이후 경주에 있는 선재미술관 전시기획 등을 하면서 본격적인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오랫동안 부관장을 지냈는데, 설립 시기부터 참여하였나.

아트선재센터는 1995년에 설계 작업과 공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그 지역은 지금과 달리 옛 건물, 특히 한옥이 많았다. 옛것이 있는 자리를 다시 정비하는 작업이기도 했기 때문에, 새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그 역사성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건물이 들어서기 전 한옥에서 아트선재센터의 전초전으로서 《싹》전을 기획하였다. 이 전시에는 박이소, 최정화, 이불, 이동기, 홍성민, 오형근, 고낙범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싹》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지금은 모두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 군이다. 당시는 무명이었을 이 작가들과의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였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최대한 지원하고 싶었다. 기획자가 원하는 개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독창성이 있는 작가들이라고 판단하였고, 그 독창성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고 박이소 작가는 미국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 나에게 작가 지원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일깨워주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장소특정적 작업(site-specific work)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하였기 때문에 작업의 진행 과정이나 작가들의 요구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본다. 전시진행 자체가 작가들과 함께 작업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식이어서 즐겁고 의미도 컸던 전시였다.
전시환경도 프로덕션 지원의 일부

그러고 보니 김선정 기획자는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남다른 기획자로도 평판이 높다.

아트선재센터가 만들어진 후에도 언제나 작가가 원하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던 편이다. 한 번은 정서영 작가의 작품 때문에 전시장 조명기를 모두 바꿔버린 적이 있다.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원래의 조명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의 요구가 있었다. 비단 작품 자체에 대한 비용만이 프로덕션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에 전시 조명은 건물 시설의 개념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안 좋은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프로덕션에 대한 지원에는 전시환경까지 포함되어야 하고, 그러한 지원 자체가 작가와 함께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내게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외국의 여러 기관에서 전시기획에 참여해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야말로 일하면서 배운 부분이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국내에 프로덕션 지원 개념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도 그렇지만 해외 큐레이터들과의 협업 작업이 활발한 편이다. 이에 대한 본인의 기획적인 특성이나 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협업은 처음부터 고려했던 기획방식이다. 아트선재센터가 처음 개관한 해에는 제이슨 스미스(Jason Smith,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함께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그 이전에 호주의 전시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해외 기획자들과의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일로서 만난 관계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다른 큐레이터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서로 모르는 부분을 계속 배워나갈 수 있어 탄탄하고 재미있는 활동이 가능한 것 같다.



독립기획자로서의 방향 전환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갑자기 '사무소'라는 기획사를 만들었다. 이는 독립기획자로서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가.

내 나름대로의 기획 스타일이 있었지만 사실 그런 종류의 전시들이 관장님 세대와 완전히 공감을 이루기는 힘들었다. 고민 끝에 아트선재센터를 나와서 아이들이 있는 스위스에 일 년 동안 가 있었다. 기획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접고 휴식을 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스위스에 머무르는 동안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고 본격적인 베니스비엔날레 준비를 위한 실무 스태프들을 꾸리면서 만든 것이 바로 사무소이다. 사무소는 다양한 기획 활동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력이 작업하는 기획본부인 셈이다. 대림미술관, 몽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의 미술 기관과 협력 기획 및 컨설팅 작업도 이곳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독립기획자로서 활동을 해 나가는 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독립기획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바로 경제적인 부분이다. 《투모로우》(Tomorrow)나 《플랫폼》(Platform) 등 규모가 큰 국제전시를 많이 기획하고 있는데, 이런 기획전은 후원만으로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전시 후원처를 모으는 일 자체가 힘들다. 후원없이 《플랫폼》전시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매년 개최되는 행사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후원이 없으면 하지 못할 듯하다. 그리고 민간기관이든 공공기관이든 기획이나 컨설팅에 대해 정당한 금액 지급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2010년 해인아트프로젝트 총감독이었던 김선정 기획자는 작업 진행 후 5개월 간 기획비를 전혀 지급받지 못해 공식사퇴한 바 있다). 또한 기관과 기획자 간에 전시에 대한 생각이 맞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더 이상 협력관계를 지속하기 힘들고 일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시도

기획자로서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나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있고 역사가 있는 장소에 관심이 많다. 오랫동안 그 장소성을 유지하였으나 지금은 버려져 사용하지 않는 장소에 작품이 개입되어 그곳을 다시 보여주는 작업을 좋아한다. 기무사 자리나 폐쇄한 서울역사를 전시 장소로 선택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 중인 2012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제9회 광주비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은 나를 포함, 마미 카타오카(Mami Kataoka, 도쿄 모리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캐롤 잉화 루(Carol Yinghua Lu, 중국 독립큐레이터, [Frieze] 매거진 객원편집위원), 낸시 아다자냐(Nancy Adajania, 인도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와싼 알-쿠다이리(Wassan Al-Khudhairi, 카타르 아랍현대미술관 관장), 알리아 스와스티카(31세, Alia Swastika, 인도네시아 독립큐레이터, 비평가) 등 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여성기획자 6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이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사람들, 시대적으로 서로 다른 순간들, 그리고 예술 생산에 있어서의 서로 다른 역할들은 물론이고 어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구조에나 존재하는 권력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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