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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호의 보물읽기]24.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장덕호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있는 용암사(龍岩寺) 경내에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석불입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미륵 석불입상으로 천연바위벽을 이용해 제작했다.

전체 높이가 17.4m로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그 위에 목, 얼굴,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아 위압감이 느껴진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불상(원립불)은 목은 원통형으로 당당한 가슴을 드러냈으며 몸체는 법의(法衣)로 감싸고 있는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비록 바위의 제약으로 목과 가슴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못하나 사각형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안동마애석불과 비슷하다. 오른쪽의 네모난 갓을 쓴 불상(방립불)은 합장한 손모양만 다를 뿐 조각된 수법은 왼쪽의 불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조각했다.

원립불은 남상(男像), 방립불은 여상(女像)으로 전하는데 고려 선종(宣宗)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왕자를 낳지 못했다. 어느날 밤 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하고 사라져 버렸다 한다. 

꿈에서 깬 궁주가 왕께 고하자 왕은 바로 장지산으로 사람을 보내니 다녀온 사람이 왕께 고하기를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있습니다”하였다. 왕은 바로 장지산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원신궁주와 불공을 드리니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995년에 발견된 명문에 의해 이 석불입상이 고려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1465년(세조 11년)에 왕과 왕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이라는 학설도 있으나, 이 쌍석불은 웅장한 크기에 비해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투른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경기일보 2012.8.23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0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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