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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호의 보물읽기] 25. 조영복 초상(趙榮福 肖像)

장덕호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조영복(趙榮福 1672∼1728)은 숙종 31년(1705)에 과거에 합격하여 동래부사·개성유수·한성부윤 등의 벼슬을 지냈다. 

이 초상화는 동생인 관아재 조영석이 그린 것으로 다른 초상화와 달리 주인공이 바닥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조선 초상화에서는 드물게 양손이 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영복 54세때 유배지인 영춘에서 그려진 것으로 하얀 사방건(四方巾)에 무색 도포를 입고 양손을 노출시킨 채 앉아있는 모습이다. 유풍(儒風)이 짙게 배어있는 사대부의 모습을 생생하고 실감있게 담아냈던 17~18세기 전반으로 이어지는 사대부상(士大夫像)의 한 유형으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그림이다. 

특히 조영복의 영정은 시복본(時服本)과 유복본(儒服本)의 두 가지 본이 전해지는데 시복본은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전문화가인 진재해(秦再奚)가 그린 것이며, 유복본은 조영석이 그린 것으로 동일 인물을 같은 시기에 전문화가가 그린 것과 사대부가 그린 것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 그림을 그린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 1686∼176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문인화가로 그림을 매우 잘 그려 조선후기 문인화의 최고봉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과 더불어 문인화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또한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풍속화의 시조로서 일상생활속에서 포착한 소재들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조선후기 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나타내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세조와 광해군의 어진 모사를 하라는 영조의 명에 불응하여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숙종어진 모사에 감독관으로 참여하였으나 실제 그림을 그리라는 영조의 명에 ‘사대부가 어진을 그리는 것은 선비의 도가 아니다’라 하여 사양할 만큼 굳은 심지와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어진을 그리라는 왕명을 거부한 인물이 그린 초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94년 함안조씨 참판공파 종중에서 보관해 오던 많은 유물과 함께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됐다.


 -경기일보 2012.8.30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0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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