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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2) 앵포르멜

진중권

ㆍ물감에 모래·밀짚을 반죽하듯… 뒤뷔페 “쇠똥도 훌륭하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은 뜨거운 ‘표현적 추상’으로 변한다. 두 유형의 추상은 금방 구별된다. 가령 몬드리안,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화면은 사각형, 삼각형, 십자가 등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면 폴록의 작품은 어떤가? 물감을 흩뿌리는 격렬한 표현적 제스처를 통해 형 자체가 붕괴된다. 유럽에서 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카운터파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앵포르멜’(informel)이라는 흐름이다. 

▲ 형태를 부정하며 촉각적 질감 중시
아이들이 진흙 뒤범벅된 채 놀 듯
재료 그 자체의 ‘날것 예술’로 불려
원초적이고 금지된 것에 대한 취향

■ 아르 브뤼와 타쉬즘 

‘앵포르멜’이라는 이름에는 형(form)을 부정한다는(in) 뜻이 담겨 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장 뒤뷔페, 포트리에르, 볼스의 작품은 두껍게 바른 물감의 무정형한(formless) 이미지를 보여준다. 흙손으로 시멘트를 바르다 만 벽면 같은 느낌이랄까? 뒤뷔페의 경우 두꺼운 물감(impasto)에 모래, 타르, 밀짚 등 이물질을 섞어 넣곤 했다. 여기서 안료는 매끈한 ‘시각적 환영’보다는 거친 ‘촉각적 질감’의 효과를 낸다. 

‘앵포르멜’에 따라다니는 몇 가지 이름들이 있다. ‘아르 브뤼(art brut)’와 ‘타쉬즘(tachism)’이 그것이다. 초기에 뒤뷔페는 제도권 밖의 예술, 특히 정신병자나 어린아이들의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그 어떤 문화적 관습에도 오염되지 않은 이들의 순수한 표현적 예술을 그는 ‘아르 브뤼’, 즉 ‘날것의 예술’이라 불렀다. 실제로 뒤뷔페의 작품들은 종종 아무런 숙련이나 솜씨를 모르는 정신병자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보인다. 

작품 자체의 형식적 측면에서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들은 종종 ‘타쉬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얼룩을 의미하는 ‘타쉬(tach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두꺼운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만든 얼룩과 같은 작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붓질이 자발적이고 즉흥적이라거나, 튜브에서 물감을 짜 그대로 화면에 흘리거나 찍어댄다는 점에서 타쉬즘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는 차이가 있다. 

■ 구강기와 항문기 

언젠가 뒤뷔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재에 매료됐어. 너무 좋아. 고마워. 그건 풍부한 음식이야. 거의 과도하게 풍부해. 너무 풍부해. 종종 릴리한테 그녀의 요리가 너무 풍부하다고 말하곤 해. 크림, 버터 등. 나는 풀을 더 좋아해. 아니면 흙을. 그게 나한테는 훨씬 호화로운 것 같아. 흙을 먹는다면, 풍부한 성찬이 되겠지.” 비린 냄새와 느끼한 맛, 날재료의 질감에 대한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원초적 재료들(matieres primaires)에 대한 취향은 음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는 이런 희망을 표명했다. “쇠똥을 사용하면 아주 좋을 것이다. 사하라 지역에서 아랍인들은 뭔가 접합해야 할 것이 있거나 메워야 할 구멍이 있을 경우, 염소 똥에 약간의 모래를 섞어 주물러 만든 반죽을 사용한다. 그것이 나를 크게 감동시키는 재료이며, 언젠가 내가 사용하게 되기를 고대해 마지않는 재료다.” 

구강기와 항문기의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뒤뷔페의 독특한 재료, 물질 취향이 ‘앵포르멜’이라는 말 속에 함축된 반(反)형태의 충동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가령 ‘재료’와 ‘대변’ 사이에는 특정한 형태를 가진 ‘요리’가 존재할 것이다. 재료는 아직 요리라는 이름의 형태를 만들기 이전의 상태이고, 대변은 소화의 과정에서 요리의 형태가 완전히 붕괴된 이후의 상태다. 

■ 반죽의 예술 

“염소 똥에 약간의 모래를 섞어 주물러 만든 반죽”은 뒤뷔페가 즐겨 사용하던 재료를 닮았다. 1945년부터 뒤뷔페는 장 포트리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물감에 타르, 아스팔트, 시멘트, 석고, 바니시, 모래, 자갈, 풀이나 밀짚을 섞기 시작한다. 이 이물질 섞인 반죽을 화면에 두껍게 발라 올리는 기법을 ‘오트 파트(hautes pates)’라 부른다. ‘높은 반죽’으로 범벅이 된 화면은 거친 텍스처를 가진 부조처럼 보인다. 

1953년에 뒤뷔페는 ‘난타 당한 반죽’이라는 뜻을 가진 ‘파트 바튀(pates battues)’ 연작을 시작한다. 바탕을 미리 어두운 색으로 두껍게 발라놓고, 그 위에 빠른 터치로 흰색에 가까운 반죽을 불균등하게 칠한 후, 물감 개는 나이프로 마치 낙서를 하듯이 난자를 하여, 바탕의 어두운 색들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물감 반죽을 위로 쌓아올리는 오트 파트와 달리, 파트 바튀는 물감의 반죽을 아래로 파 나가는 셈이다. 

여기서 뒤뷔페는 “날카로운 만족감”을 얻는다. 그는 이 만족감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자유의 “신체적 쾌감”에서 나온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행위의 ‘결과’ 역시 그를 만족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는 거칠고 덜 된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뒤뷔페는 종종 질감학(texturology), 재료학(materiology)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곤 했다. 이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재료 상태에 대한 그의 취향을 보여준다. 

■ 기저 유물론 

아기들은 온통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채 놀이를 한다. 부모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 사이에 잉크든, 물감이든, 간장이든, 된장이든, 그 밖의 사물로 방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때로는 아예 자기가 싼 똥을 여기저기 덕지덕지 발라놓는 경우도 있다. 그 통제받지 않은 행동에는 물론 커다란 만족감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당장 그 행위를 제지하고 나선다. 문명은 이 ‘금기’에서 시작된다. 

뒤뷔페가 ‘아르 브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정신병자나 어린아이들의 예술에 문명 이전의 원초적 성격이 남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금지된 것과 허용된 것’ 혹은 ‘고상한 것과 저급한 것’의 구별. 뒤뷔페의 작품에는 이 구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의 충동이 존재한다. 이 퇴행의 욕망은 꽤 일반적인 것이다. 가령 누구나 한 번은 제 성기나 항문에 손을 갖다 대고 은밀히 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조르주 바타유의 이른바 ‘기저 유물론(base materialism)’이다. “대부분의 유물론들은, 비록 그것들이 영적 실체를 없애기를 바랐더라도, 종국에는 사물의 질서를 세우고 말았다. 그 질서의 위계적 관계가 그것을 결국 관념론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위계를 없애기 위해 바타유는 기저 물질(base material)에 주목한다. 앵포르멜의 화면에서 우리는 위계 없는 이 기저 물질로 돌아가려는 충동을 볼 수 있다. 

■ 창조적 물질 

우리는 흔히 사물을 형태(form)와 재료(matter)로 나누곤 한다. 가령 도자기가 있다면, 재료는 물론 무정형의 진흙일 것이고, 형태는 도공의 머릿속에 든 관념적 이미지일 것이다. 이런 식의 추상을 통해 우리는 형태의 극점에서 신(정신, 이데아, 로고스)이라는 관념에, 그리고 재료의 극점에서 물질이라는 관념에 도달한다. 둘의 위계 속에서 물질은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뭔가 비천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이가 대변을 만지는 것을 제지하는 데서 문명과 자연이 갈라지듯이, 아마도 허용과 금지, 형태와 재료, 정신과 물질, 고급과 저급을 가르는 것이 문명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을 통째로 볼 경우에 이런 구별은 매우 “자의적이고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타유는 이 자의적 구별들을 없애고, 그 구별을 통해 세워진 위계들을 무너뜨리고 원래 하나였던 물질의 상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여기서 바타유가 말하는 물질은 “어떤 우월한 원리의 강등”, 말하자면 정신에 비해 비천하다는 그 물질이 아니다. 바타유는 처음부터 물질을 “제 자신의 영원한 자율적 존재를 갖는 능동적 원리”로 본다. 즉 물질은 정신으로부터 형태를 빌려 입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형태를 산출할 가능성을 내재한 적극적인 힘이다. 앵포르멜의 화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이 창조적 힘으로서 ‘물질’이 아닐까? 

■ 거름자리 위의 꽃잎 

앵포르멜의 또 다른 대표자 포트리에는 실제로 바타유를 읽었고, 그와 친교하며 공동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포트리에의 작품은 1943년 게슈타포를 피해 파리 외곽의 어느 정신병원에 숨어 지내던 시절에 겪었던 무서운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병원 옆의 숲에서는 독일군이 파리의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이 청각적 공포를 ‘인질’이라는 섬뜩한 제목의 연작 속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는 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물질의 상태로 돌아간 역겨운 신체가 있다. 하지만 그 신체는 피를 연상시키는 잔혹한 색이 아니라 분홍색, 자주색 등 키치에서나 볼 법한 촌스럽게 예쁜 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시인 프랑시스 퐁주는 이 모순을 “환희와 공포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에는 수백 조각으로 살을 발라내는 형을 받아 죽어가며 오르가슴에 빠진 중국 사형수의 사진이 등장한다.

평론가들을 당혹시킨 그 모순, 즉 반죽의 거친 질감과 매혹적인 색채의 대립은 혹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바타유에 따르면, 마르키 드 사드는 누군가 아름다운 장미꽃을 가져 오자, 그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 거름으로 가득 찬 도랑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로써 아름다운 꽃잎과 똥 거름자리는 하나의 물질이 된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의 구별도 무너진다. 여기서 포트리에는 ‘기저 유물론’에 합류한다.

‘꽃들의 언어’라는 에세이에서 바타유는 꽃이 고상하다는 관념에 도전한다. 화려한 화관 아래에는 더러운 꽃가루의 흔적과 악마처럼 우아한 수술이 있다. 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를 유혹하여 자신이 결국 “털이 난 성기”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앵포르멜의 또 다른 대표자 볼스의 작품(‘새’·1949)은 고상한 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속한 음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 형태를 향하여 

물론 바타유로 앵포르멜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앵포르멜’에는 이제까지 얘기한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도 담겨 있다. 즉 ‘형태(form)를 집어넣는다(in)’는 뜻이다. 앵포르멜 운동이 바타유가 강조하는 ‘죽음 충동’의 산물이었다면, 형태 없는 물질은 그 운동의 종착지일 게다. 반면 앵포르멜이 그저 새로 출발하기 위해 무전제의 상태로 되돌아간 데에 불과하다면, 형태 없는 물질은 조형의 출발점일 것이다. 

뒤뷔페는 결코 무정형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는 “무정형에서 출발하여” 늘 이미지에서 멈추었다. 작품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순간에도 그는 결코 물질 그 자체에 주목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무정형을 도입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내가 사물을 불확실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의 상상력이 더 강력하게 기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는 앵포르멜의 다른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평론가 이브 알랭 부아에 따르면, 앵포르멜을 제대로 설명한 것은 차라리 사르트르다. 사르트르는 먼저 그림의 이미지가 미리 화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상상한 것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이행이 일어났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실재하는 것은 붓질의 결과, 캔버스의 끈적거림, 알갱이, 색깔들 위의 윤기다.” 이어서 덧붙이기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미적 감상의 대상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형태 없는 물질 그 자체가 예술(=‘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앵포르멜은 형의 해체를 위해 물질로 돌아간 게 아니다. 그저 창작의 한 국면에서 새로운 조형의 출발점으로 무정형을 기용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훗날 등장할 무정형의 역겨운 재료를 사용하는 혐오예술(abject art)과는 구별된다.

- 경향신문 2012.9.1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4220310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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