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경기도박물관 소장·국보 제256호) |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때 거란의 침입을 받자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판각되었으며 ‘처음 새겼다’하여 초조(初雕) 대장경이라 부른다. 송나라 대장경의 내용과 체재를 토대로 하였으나 고려 독자적으로 판각 인쇄술과 송 대장경에 탈락된 내용을 보충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중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 따르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2년(1011)에 시작하여 선종 4년(1087)까지 70여 년 동안 6천여 권을 판각하였다고 한다. 고려수도인 개경의 현화사 등지에서 판각하여 흥왕사 대장전에 두었다가 대구 부인사로 옮겨 보관하던 중 고종 19년(1232)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초조대장경판은 지금 전해지지 않지만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은 국내에 약 300여권과 일본의 난전지(南禪寺)와 쓰시마 등에 약 2천500여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불경은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1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223.5㎝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중 하나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 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인쇄본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 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에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 제1로, 1천년전인 11세기경에 인쇄되었음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 경기일보 20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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