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장덕호의 보물읽기]심환지 초상(沈煥之 肖像)

장덕호

심환지(沈煥之 1730~1802)는 1798년에 우의정, 1800년에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며 노론 벽파(?派)의 영수로 정국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 초상화는 양손을 소매 속에 감추고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구분면의 전신상으로 바닥에는 화문석 돗자리가 깔려있다. 

화면 상단에는 ‘領議政文忠公晩圃沈先生眞’이라고 쓰여 있고 높은 오사모에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고 가슴에는 쌍학흉배가 붙어있으며 서대(犀帶)를 허리에 두르고 있어 심환지가 영의정이 된 1800년 이후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낮은 족좌대와 원근법으로 처리된 화문석, 의복의 두드러진 명암법 등에서 19세기 초반의 사실적인 초상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생동감 있는 안면의 사실적 묘사와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의복과 기물의 표현, 그리고 심환지의 높은 지위를 고려할 때, 이 초상화는 당시 가장 기량이 뛰어난 초상화를 그렸던 전문 화가인 이명기(李命基 1756~?)가 그렸거나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정도의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상의 요체를 포착한 얼굴 묘사로 인물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질감의 특성을 극대화시킨 기물의 표현으로 박진감 넘치는 시각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조선후기 초상화의 특징인 사실성과 장식성의 조화를 잘 보여주며 기법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그간 역사학계에서는 심환지에 대해 노론 벽파의 영수로 정조의 개혁 정치에 반대하여 정조를 독살한 배후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2009년 공개된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299통의 비밀편지에 의하면 이전의 평가와는 다르게 정조의 개혁정치를 심환지가 막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간 논란이 많았던 심환지의 역사적 평가 -정조 독살설의 배후, 정조의 정치적 정적-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초상화에 보이는 심환지의 온화한 모습과는 달리 당시 혼탁한 정국을 주도하던 노련한 노정객의 내면속 깊이를 떠올리게 하는 문화재이다. 이 초상화는 2004년 청송심씨 안효공파 온양공 종중에서 관련 유물과 함께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 경기일보 2012.9.27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389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