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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3) 바넷 뉴먼

진중권

ㆍ갈색 바탕에 수직선 하나…“관람자여, 숭고함이 보이지 않는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잭슨 폴록이나 윌렘 드 쿠닝의 뜨거운 표현적 추상, 다른 하나는 바넷 뉴먼과 마르크 로스코의 차가운 색면 추상(color-field painting)이다. 1950년대에 폴록이 구상적 이미지로 돌아가자,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뉴먼과 로스코를 미국 추상회화의 ‘주요한 화가’로 부각시키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 두 화가의 작품은 첫눈에 매우 ‘평면적(flat)’으로 보인다. 


■형식이 아니라 주제 


그린버그에 따르면, 회화가 ‘현대적’이려면 3차원 공간의 환영이기를 포기하고 2차원의 평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화는 공간을 차지하는 조각과 달라서 평면으로 이루어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뉴먼과 로스코의 화면은 아무 것도 재현하지 않는 거대한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언뜻 보기에 그린버그의 평면성 교리를 충실히 실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뉴먼과 로스코는 공동으로 평면성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바 있다. 


“우리는 회화의 표면을 재확인하려 한다. 우리는 평면적 형태들에 찬성한다, 그것들은 환영을 파괴하고 진리를 계시하기 때문이다.” 


그린버그는 뉴먼과 로스코에게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말하자면 이 두 화가의 작품을 순수 형식주의 회화로 간주하는 것이다. 가령 3차원 공간의 환영을 포기하면, 화면에서 대상도 사라지고, 이야기도 사라진다. 즉 주제와 서사(=내용)가 사라지고, 화면에는 오직 형태와 색채의 결합(=형식)만이 남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뉴먼과 로스코의 작품을 그런 형식주의 회화, 즉 아무 내용도 없는 순수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는 뉴먼과 로스코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위의 언급에 덧붙여 두 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좋은 회화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주제가 결정적이며, 비극적이고 영원한 주제만이 타당하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시나 태고의 예술과 영적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이들은 회화에서 형식이 아니라 ‘주제’를 중시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런 물음이다. ‘무슨 주제?’



■무로부터의 창조 


생일이던 1948년 1월29일, 뉴먼은 짙은 카드뮴 레드로 바탕을 칠한 캔버스 위에 수직으로 테이프를 붙인 후, 그 위로 옅은 카드뮴 레드를 칠했다. 그렇게 제작한 그림은 매우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그는 거의 그림을 끼고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8개월을 침잠한 결과, 마침내 그림의 효과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으로써 그는 비로소 자신이 의미 있는 예술적 진술을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뉴먼의 ‘하나임 I (Onement I) 1948’을 보자. 적고동색 화면에 달랑 수직선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뉴먼은 이 수직선을 ‘지퍼’(zip)라 불렀다. 거대한 단색의 색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 이것이 그 후로 뉴먼의 작품에 늘 따라다니는 전형적 특징이 된다. 언뜻 보면, 유럽의 추상회화, 가령 몬드리안의 것과 같은 평범한 기하학적 추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뉴먼이 의도한 것은 추상회화가 아니었다. 그는 더 급진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뉴먼은 이 그림 앞에서 “그림의 제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은 애초에 한 장의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가령 유대교에는 ‘마콤’(makom)이라는 성소(聖所)가 있다. 뉴먼과 같은 유태인들에게 성소는 일상적 공간(space)이 아니라 각별한 장소(place)다. 아울러 성소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바깥의 세속적 공간에서와는 다른 시간성을 체험한다. 그가 창조한 것은 이 각별한 장소와 시간의 체험이다. 


▲로스코와 함께 ‘색면 추상’ 장르 열어 

미의 관점보다 ‘숭고’라는 주제 중시 

작품은 정서적으로 작동하는 사물

“계속 응시하면 울음 터트릴 것이다”


■숭고는 지금 


기묘한 느낌을 주는 그 작품에 8개월 동안이나 침잠한 결과, 그는 드디어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 그림이 내게 깨우쳐 준 것은,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이 행한 것과 맞닥뜨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체험을 창조했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느낀 이 기묘한 감정, 거의 종교적 열광에 가까운 이 신성한 감정을, 당연히 관객들도 느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였다. 그 효과를 뉴먼은 ‘숭고’라 불렀다. 


모든 예술가는 예술사를 요약하는 자기 고유의 방식이 있다. 뉴먼은 서구의 미술사를 ‘미(美)와 숭고(崇高)의 대립’으로 요약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유럽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 이래로 숭고에 대한 열망이 미의 감옥 속에 갇혀 있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유럽 미술의 전범이 된 그리스의 신상을 떠올려 보라. 그것들은 숭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스 신들의 신성은 아름다운 형태 속에 갇혀 있다. 


아름다움은 ‘형태’에 있다. 형태는 윤곽이고, 윤곽은 유한하다. 하지만 신성의 본질은 무한함에 있다. 따라서 신성이 아름다움에, 즉 유한한 형태의 윤곽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신성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왜 유태의 신이 십계명을 통해 인간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했는지 알 수 있다. ‘나 야훼는 무한하다. 너희 인간이 만드는 유한한 형상 따위에 갇힐 존재가 아니다.’ 



■전체성의 효과 


바로 이것이 숭고함이다. 뉴먼은 “유럽 문화의 질곡에서 자유로운” 미국의 화가들만이 이 숭고를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유럽 미술이 숭고에 도달하는 데에 실패한 것은, 감각의 현실 내에 머물면서 순수한 조형성의 프레임 안에서 미술을 구축하려는 맹목적 욕망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먼의 것은 철저한 미국형 회화다. 


유럽의 고전 회화에는 풍경과 인물과 정물의 아름다움이 있다. 추상회화 속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의 작품을 생각해 보라. 거기에는 형태와 형태 사이에, 형태와 배경 사이에 적절한 미적 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관계주의’라 부른다. 반면 뉴먼의 것은 어떤가? 그것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관계’ 없이 그저 하나의 전체적 효과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 그가 자신의 작품에 왜 ‘하나임’(Onement)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규모가 거대하여 관객을 그대로 덮쳐 버린다. 관객은 미를 보는 데에는 익숙해도 숭고를 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리하여 무의식중에 뒷걸음을 쳐 작품에서 떨어지려 한다. 그래야 그것이 적당한 크기로 보이고, 그래야 아름다운 형태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뉴먼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관객에게 제 작품을 1m 앞에서 보라고 명한다. 


사실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숭고를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순이다. 매체는 어쩔 수 없이 유한하나, 숭고의 대상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푸랑수아 료타르는 뉴먼의 방식을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 부른다. 말하자면 ‘뭔가를 표현하기를 포기함으로써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가 자신이 겪은 일을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가 정말로 엄청난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된다. 뉴먼의 텅 빈 캔버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살아 숨 쉰다 


뉴먼의 것과 달리 로스코의 작품에는 색 덩어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중요한 것은 저 색 덩어리들의 미적 관계가 아니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색채와 형태, 혹은 그 밖의 어떤 것과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비극, 엑스터시, 운명 등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당신이 내 작품의 색채 관계에만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요점이 빗나간 것이다.” 


당시의 비평가들이 뉴먼과 로스코의 작품을 얼마나 오해했는지 이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뉴먼과 로스코를 여전히 ‘미’의 관점에서 분석하려 했다. 그들을 오해한 것은 그린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뉴먼과 로스코를 형식주의자로 간주했다. 뉴먼은 비평가들과 악명이 높을 정도로 집요하게 논전을 벌였다. 로스코는 오해에 지친 나머지 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포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침묵이야말로 정확하다.” 숭고는 차라리 침묵을 통해 더 전달되는 법이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상적 거리는 45㎝라고 잘라 말했다. 작품의 바로 앞에 서면 색채들의 관계는 사라지고, 경계가 무너진 채 하나로 뭉개진 색 덩어리가 관객을 엄습하고, 관객은 그 전체적 효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내 회화에는 두 개의 특징이 있다. 표면이 팽창하여 모든 방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가거나, 표면이 수축되어 모든 방면에서 안으로 몰려 들어온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체험을 ‘현상학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로스코는 결코 색채주의자가 아니다. 로스코는 관객이 마치 보석의 영롱한 빛에 몽롱하게 침잠해 들어가듯이,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물건이다. 그것은 미적 지각의 ‘대상(object)’이 아니라 차라리 관객의 감정을 발동시키는 ‘행동주(agent)’다. “내 예술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살아서 숨 쉰다.” 



■열광의 감정 


1940년대의 잭슨 폴록을 이어 뉴먼과 로스코의 회화는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그중에서 뉴먼의 작품은 훗날 그린버그가 ‘회화 이후의 추상(post painterly abstract)’이라 부르게 될 1960년대의 회화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뉴먼과 로스코가 자신들의 작품을 미적으로 지각해야 할 ‘그림’이라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작동하는 ‘사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미니멀리즘 운동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뉴먼과 로스코는 자신들의 작품 앞에서 관객이 숭고를 체험하기를 원했다. 자기들이 작품을 제작할 때 느꼈던 거의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그 열광의 감정(feeling of exaltation)을 관객들도 갖기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적어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문한 대로 그림의 바로 앞에서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봐도 그 차가운 평면에서 뜨거운 열광의 감정은 전혀 솟구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다. 


믿기 어렵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실제로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그들의 주장이 그저 형이상학적 망상에 불과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로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과 맞닥뜨리면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 이는 내가 기본적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 사람들은 내가 그 그림들을 그렸을 때 가졌던 것과 똑같은 종교적 느낌을 받은 것이다.” 


뉴먼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극적이다. 1966년과 1968년 사이에 그는 모두 네 점으로 이루어진 연작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는가’를 제작한다. 그런데 이 중 두 점이 반달리즘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 그의 작품에 덤벼들어 칼질을 해댄 것이다. 그중에서 세 번째 작품이 피해가 가장 컸다. 세 번이나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대체 저 텅 빈 화면에 뭐가 있기에 난도질을 한 것일까? 이 사건에 대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재난이 그저 미친 사람의 소행으로 간과돼서는 안될 것이다. 뉴먼의 그림이 빈번한 반달리즘의 위험을 넘겨왔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노골적인 우상파괴적 행위가 부분적으로는 그 작품 자체에 의해 부추겨진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 경향신문 2012.09.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212042515&code=960202&s_code=ac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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