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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7) 팝 아트

진중권

ㆍ공장에서 찍은 듯한 이미지… 끔찍함도 반복되면 무뎌진다

1990년대 말에 어느 기자가 평론가 그린버그에게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미술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모더니즘의 주창자에게는 이 질문이 거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60년대라면 추상을 주축으로 한 모더니즘 운동이 종언을 고하고 팝 아트라는 새로운 구상이 부상하던 시기가 아닌가. 아마도 질문자는 ‘앤디 워홀’이라는 답변을 기대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린버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60년대 이후에 미국의 미술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추상표현주의에서 팝 아트로

추상표현주의가 생명력을 다하여 관학적 예술로 전락할 즈음, 거기에 대항하여 두 가지 반발이 일어났다. ‘회화이후 추상’과 ‘팝 아트’가 그것이다. 그린버그에게 이 중 모더니즘의 적자는 당연히 ‘회화이후 추상’이었다. 팝 아트는 “아무리 흥미롭다고 해도 진정으로 신선하지 않으며 그저 피상적 수준에서만 취향에 도전할 뿐이다. 아직까지 그것은 (재스퍼 존스를 제외하면) 취향의 역사에서 새로운 에피소드일지는 모르나 현대예술의 진화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에피소드라 할 수 없다.”

그린버그는 팝 아트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극적 소재로 관객의 흥미나 끄는 ‘진기함(novelty)의 예술’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팝 아트는 다다와 초현실주의가 갖고 있던 부정적 속성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에 대해 거의 목적론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즉 현대회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배제하고 순수회화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협소한 관점에서 볼 때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모더니즘’의 본류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에게 다다의 레디메이드는 예술이 아니라 농담이나 장난이었고, 초현실주의는 제재와 주제를 가진 구상회화라는 점에서 현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퇴행일 뿐이었다. 이 둘을 배제하면 결국 기하학적 추상(칸딘스키, 몬드리안 등)과 표현주의적 추상(키르히너, 에밀 놀데 등)만 남는다. 그린버그가 쓰는 미술사 속에서 이 모더니즘의 본류를 계승한 것은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이었다. 그에게 팝 아트는-전전의 다다나 초현실주의가 그랬던 것처럼-그저 스쳐지나가는 유행일 뿐이었다.
 


■ 아방가르드와 키치

팝 아트를 무시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린버그의 눈에 대중문화를 차용하는 팝 아트의 전략이 그저 ‘키치’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 유명한 에세이 ‘아방가르드와 키치’에서 그는 키치를 아방가르드와 대립시킨다. 몰락하는 부르주아 문화에서 유일하게 보존해야 할 것은 아방가르드일 뿐이며 문화산업의 상품에 불과한 키치는 “진정한 문화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으로, 진정한 문화를 천박하게 복제함으로써 대중의 감성을 무디게 한다는 것이다.

팝 아트는 흔히 미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나 실은 그 명칭과 더불어 1950년대에 영국에서 탄생했다. 1952년에 결성된 ‘인디펜던트 그룹’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 성향에 맞서 광고, 만화, 영화, SF 등 대중문화를 예술에 끌어들였다. 로런스 앨러웨이에 따르면 인디펜던트 그룹의 목표는 “도피주의, 가벼운 오락거리, 기분전환으로 한정되었던 대중문화를 진지한 예술로 다루는 데”에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상업문화에 대한 혐오감이 없었다.”

브리티시 팝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해밀턴의 작품을 보라. 영국의 팝은 마셜 플랜과 더불어 들어온 미국식 생활방식에 대한 예술적 응답이리라. 영국의 팝 아티스트들에게 “할리우드, 디트로이트, 매디슨 가는 최고의 대중문화 산지로 보였다”. 유럽에서 대량소비사회는 막연한 호기심의 ‘대상’이었겠지만 미국은 사정이 달랐다. 미국의 예술가들에게 그런 사회는 이미 ‘환경’이었다. 비록 발생은 영국에서 했지만 팝 아트의 본고장은 역시 미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 평판화면

미국의 팝 아트는 영국의 그것과는 별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했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은 영국 팝 아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팝 아트에는 영국의 팝 아트에는 없었던 또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 당시 미국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던 그린버그의 모더니즘론이다. 미국의 팝 아트는 “구상적 전통보다는 추상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대의 사실주의보다는 엘스워스 켈리나 케니스 놀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회화이후 추상’과 연관되어 있다.”

가령 미국 팝 아트의 선구로 통하는 재스퍼 존스의 ‘깃발’(1954)을 보자. 이 작품에서 우리는 구체적 대상, 말하자면 성조기를 본다. 하지만 거기에는 공간의 ‘깊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면적 물체를 평면에 그렸기 때문이다. 이 교묘한 트릭을 통해 존스는 중요한 힌트를 던진다. 즉 그린버그가 말한 ‘평면성’(flatness)의 원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회화가 굳이 추상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회화가 평면성을 위해 추상이 아닌 구상의 길을 택할 때 팝 아트가 탄생한다.

평론가 레오 스타인벡은 재스퍼 존스의 화면을 ‘평판’(flatbed)이라 불렀다. 이는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한 화면을 가리킨다. 잭슨 폴록은 화폭을 바닥에 깔았지만, 작품은 여전히 벽에 걸린 채로 감상된다는 점에서 아직 완전하지 않다. 온전히 ‘평판화면’이 되려면 화면을 서류, 도면, 신문 따위가 어지럽게 널린 책상으로 여겨야 한다. 가령 팝 아트의 또 다른 시조로 여겨지는 로셴버그의 ‘콤바인’(combine)을 생각해 보라. 그는 뉴욕 시내를 걷다가 주운 물건들을 화면에 통합시켰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1964 ⓒ Estate of Roy Lichtenstein - SACK, Korea, 2012


■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

로셴버그의 ‘콤바인’이나 재스퍼 존스의 ‘깃발’에는 작가의 거친 터치로 인해 여전히 ‘회화적’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여전히 수작업의 흔적, 즉 작가의 개성적 터치가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팝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아직은 네오다다이스트에 가깝다. 원래 ‘평판’(flatbed)은 인쇄에 사용되는 활자판을 의미한다. 완전한 팝 아트가 되려면, 화면이 마치 인쇄물의 표면처럼 매끈해져야 한다. 이 기계적 생산의 익명성이야말로 팝 아트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대량생산품과 같은 느낌을 주는 본격적인 팝 아트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앤디 워홀과 더불어 시작된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연재만화광고 이미지를 복제한 것이다. “내 작품이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비인격적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 모든 예술가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비인격성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첫눈에 그의 작품은 산업적으로 생산된 레디메이드(인쇄된 만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이미지를 복제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먼저 연재만화에서 모티브를 선택해 드로잉한 후, 그것을 실물투영기로 화면에 투사하여 전사한다. 그 이미지를 두꺼운 윤곽선으로 감싸고, 그 테두리의 안과 밖에 원색의 채색이나 벤-데이 망점을 찍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계복제(만화)-수작업(드로잉)-기계복제(투영)-수작업(완성)을 오가며 그는 어디까지 예술가의 수공업이고, 어디까지 공장제 대량생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나는 산업화에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내게 할 일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핸드메이드, 더 정확히 말하면 둘을 합친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다. 이 맥락에서 “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구성하기 위해” 드로잉을 한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재구성’이라 함은 작품 제작에 화가의 개성이 개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인쇄된 이미지를 복제했지만 회화적 이미지로 변형”시켰다. 그의 작품에는 ‘복제’라는 산업적 생산과 ‘변형’이라는 예술적 창작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 워홀의 팩토리

워홀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역시 ‘독창성’이라는 모더니즘의 신화를 파괴하려 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그의 이미지들은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보인다. 워홀은 자신의 아틀리에를 ‘공장’(factory)이라 부르며, 자기 자신이 ‘기계’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독창적이거나 개성적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만든 이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가 내 대신 내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제 작품이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다.

워홀은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먼저 평면에 슬라이드를 비추어 그 윤곽을 딴다. 거기에 채색을 하여 마치 인쇄를 위해 색 분해를 한 네거티브 필름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여 한 장의 사진으로 시뮬라크르의 연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지루한 것을 좋아한다.” 윤전기에서 흘러나온 화폐나 우표의 전지처럼 보이는 워홀의 이미지는 실제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되는 게 아니라 정확히 같은 것이 되는 것을 원한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나는 모든 이들이 똑같이 생각하기를 원한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정부의 힘으로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 마그리트는 모티브의 반복을 통해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반면, 워홀은 그로써 평범한 것을 더 평범하게 만든다. 워홀의 ‘반복’은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균등화’(leveling)에 대한 취향. 이것이 ‘독창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포스트모던 특유의 감정이다.

■ 모더니즘의 종언

“미술은 점점 더 세상과 멀어져 외부 세계가 아닌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팝 아트는 그 세상을 바라본다.” 리히텐슈타인의 말은 팝 아트가 모더니즘과 결별했음을 의미한다. 그린버그 버전의 모더니즘 회화는 자신의 매체성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팝 아트는 세상을 바라본다”. 이는 모더니즘의 추상회화와 달리 팝 아트에는 ‘주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팝 아트, 특히 워홀의 작품에 담긴 주제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이제까지 세 가지 답변이 제시됐다.

먼저 토마스 크로에 따르면, 워홀의 이미지는 바깥 세계를 지시한다. 가령 죽음과 재앙을 제재로 한 이미지들은 무심한 소비사회의 무심함 속에서도 “고통과 죽음이라는 현실”을 강력히 지시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워홀의 전기의자(‘라벤더색의 재앙’ 1963)가 사형제에 대한 항의이며, 인종폭동의 이미지(‘버밍햄 인종폭동’ 1964)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라 주장한다. 크로의 해석에 따르면 언뜻 냉담해 보이는 워홀은 뜨거운 참여예술가가 된다.

한편 롤랑 바르트는 그 이미지들이 세계를 지시할 의무에서 풀려난 의미 없는 기호라고 본다. 워홀 자신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똑같은 것을 보면 볼수록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진다.” “워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가? 그럼 그냥 내 그림과 영화의 표면을 보고 나를 보라. 거기에 내가 있다.” 인간은 그저 복제 이미지들의 표면일 뿐 사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그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할 포스터는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워홀의 반복을 “외상적 리얼리즘”으로 해석한다. “반복은 의미를 빠져나가게 하는 것인 동시에,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 것에 대한 방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워홀은 이렇게 말한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끔찍한 그림들을 보게 되면, 그 그림들은 실제로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반복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충격방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미디어의 반복적 이미지 속에서 둔감해지는 방식으로 세계의 끔찍함을 견뎌오지 않았던가.

-경향신문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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